농진청 원예특작과학원, 전국 7곳 현장형 연구소
기후변화·노동력 위기 극복 마중물 역할
다양한 품종과 기술 개발로 미래농업 선도
미래 농업의 희망을 싹 틔우는 현장. 농촌진흥청 연구소의 혁신적인 발자취를 따라간다. 농촌진흥청 연구소 곳곳에 숨겨진 혁신의 씨앗들을 찾아, 대한민국 농업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기획 시리즈 '혁신의 씨앗'을 시작한다. 신농사직썰 시즌4인 혁신의 씨앗은 기초 연구부터 실용화 단계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연구자들의 열정과 숨겨진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농업 발전을 위한 주요 사업들을 심층적으로 소개한다. 데일리안에서는 ‘혁신의 씨앗’ 시리즈를 통해 우리 농업의 밝은 미래를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마늘밭 위로 드론이 날고, 사과나무 옆에서는 기계가 꽃을 솎는다. 무더운 여름, 제주 실험온실 안에서는 파파야가 자라고, 열대작물 생육 데이터가 정리된다.
이 모든 실험과 기술은 하나의 목표를 향한다. 기후위기와 고령화 시대에 맞서는 농업의 새로운 표준을 만드는 일.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지역기관들이 오늘도 현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미래를 설계 중이다.
김명수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은 “기후변화와 농촌 고령화 등으로 중대한 전환기에 처한 농업, 농촌을 위해 디지털, 자동화 기반의 스마트 농업기술 개발과 고부가가치 미래 성장동력 연구, 수출농업 육성에 더욱 매진하겠다”며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높은 R&D기술 개발과 산업화로 국격을 높여 나가고, 현장에서 농업인과 함께 고민하며, 끊임없는 기술혁신으로 원예특작산업의 지속 가능한 추진 동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밭에서 품종을 기르다…전국 7곳의 현장 실험실
연구소는 왜 도심이 아닌 논밭 옆에 있을까. 답은 현장에 있다. 대구 군위군 사과연구센터는 1991년 개소 이래 지금까지 31개의 생식용 품종을 개발했다. 대표 품종인 ‘홍로’는 추석 전 수확 가능한 조생종이다. 소비자와 시장 모두에게 사랑받는다.
또 ‘감홍’은 고당도로 문경 지역 특산으로 자리 잡았다. 이밖에 ‘아리수’와 ‘이지플’은 병에 강하고 착색이 잘 돼 빠르게 확산 중이다. 지난 2024년 기준 이들 품종은 전국 사과 재배면적의 22.7%, 약 7567ha에서 재배되고 있다.
더불어 사과연구센터는 기계화와 자동화를 위한 초방추형 수형과 오믹스 기반 재배시스템을 연구 중이다. 이 기술은 기존 3차원 수형을 단순화해 밀식과 기계적 관리가 가능하도록 돕는다.
여기에 병해충 종합관리(IPM), 착색 저감형 품종, 고온 적응 품종 개발도 병행하고 있다. 연구직 10명을 포함한 총 63명의 인력이 현장과 실험실을 넘나든다.
전남 나주 배연구센터는 지금까지 배 40품종, 단감 14품종을 개발했다. ‘신화’는 추석용 배다. ‘그린시스’는 초록 과피와 저장성이 뛰어난 신품종이다. 절단해도 갈변이 거의 없는 ‘설원’은 신선편이 시장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 2023년 기준 이들 품종은 배 전체 재배면적의 14.9%, 약 1433ha에 보급돼 있다.
여기에 무봉지 재배 기술, 무인 방제 시스템, 기계화 수형 설계 등 노동력 절감형 기술도 확대되고 있다. ‘감풍’ 품종은 창원, 고흥, 영암 등에서 전문 재배단지를 통해 집중 관리되며, 신품종 확산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전남 무안 파속채소연구센터는 2022년 독립기관으로 출범해 마늘 15품종, 양파 35품종을 육성했다. ‘홍산’은 한지·난지 겸용 품종으로 전국에서 재배되고 있다. ‘화산’은 기능성 강화 품종으로 주목받는다. 양파는 고당도 생식용 ‘문파이브’, 저장성 강화형 ‘엄지나라’ 등 소비 트렌드를 반영한 품종들이 속속 보급되고 있다.
기계화 파종, 정식, 수확을 위한 전 과정별 기술 개발과 더불어 드론 방제, 자동 관수, 무멀칭 재배 등 스마트농업 요소도 빠르게 확산 중이다. 센터는 연구직 9명을 포함한 총 39명의 인력으로 구성돼 있다. 재배 메뉴얼화, 유전자원 보존 등 기초연구도 함께 수행 중이다.
▲ 기후를 넘다…아열대 작물·병해충·전자기후지도
기후가 바뀌면 농업도 달라진다. 이를 가장 먼저 체감하는 곳이 바로 농촌 현장이다. 제주와 남해에 시험지를 두고 있는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는 키위, 차나무, 파파야, 열대감자 등 17개 아열대 작물을 시험 재배하고 있다.
단순히 새로운 작물을 들여오는 데 그치지 않고 국내 적응성 평가, 생육 패턴 분석, 병해충 반응 관찰까지 종합 연구가 이뤄진다.
이 연구소는 SSP 기반 기후 시나리오를 적용해 고해상도 전자기후도와 미래 적지 변동 지도를 제작했다. SSP(Shared Socioeconomic Pathways)는 인구, 경제, 도시화 등 사회경제적 변수에 따른 미래 시나리오다. 단순 온실가스 농도만 고려한 기존 모델보다 정밀한 기후 예측이 가능하다.
현재까지 여름배추, 키위 등 14개 작물에 대한 적응성 분석이 완료됐다. 과실파리류와 같은 외래 검역 해충 유입에 대비해 대만 농업연구소와 국제공조도 강화되고 있다.
모두 100명의 인력이 기후·작물·병해충의 상관관계를 다층적으로 분석하며, 미래 작물 다양성과 재배 전략 수립에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제주 서귀포 감귤연구센터는 1991년 설립 이후 27종의 품종을 개발했다. 그중 ‘하례조생’은 600ha 이상 보급됐다. 신품종 ‘윈터프린스’와 ‘미래향’은 연내 수확이 가능하고 껍질이 얇고 향이 진해 소비자 선호도가 높다.
감귤병해충 예찰은 무인예찰트랩 793대를 통해 진행된다. 성페르몬 기반 교미교란 방제기술도 농가 현장에 적용 중이다. 감귤껍질을 활용한 미생물 악취 저감제는 양돈농가에서 90% 이상 탈취 성과를 보이며 친환경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 기술로 농업을 다시 짓다…스마트온실과 자동화 재배
기계화 없이는 지속가능한 농업이 어렵다는 것이 이제는 상식이 됐다. 경남 함안 시설원예연구소는 스마트팜 기술의 본산이라 할 수 있다. ICT 기반 정밀 환경제어, 생체신호 기반 양액 급액 시스템, 순환식 수경재배 시스템 등 개발이 한창이다. 작물 생육 단계별 맞춤형 관리를 실현 중이다.
내재해형 온실 모델, 고기능성 장기성 피복재 개발도 병행하며, 탄소중립 농업 기반 구축에 필요한 에너지 절감형 온실 구조 설계를 주도하고 있다. 80명의 연구진이 온실 설계부터 작물 생리까지 통합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이러한 스마트 기술은 실제 농가에도 확산되고 있다. 사과연구센터는 초방추형 수형과 스마트사과원 체계를 도입해 밀식 재배 및 자동화를 실현했고, 배연구센터는 정밀 자동화 재배시스템, 기계화 수형 설계, 무인 방제 기술을 고령화 시대 대응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난 2월 강원 철원에 신설된 북부원예시험장은 한반도 고위도 기후대응 작물의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는 연구직 5명을 포함한 34명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채소·과수·화훼 전반에 대한 적응성 실험과 품종 선발이 예정돼 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지역기관들은 '연구소'라는 말보다 '현장 연구팀'에 가깝다. 그들의 실험실은 온실 한편, 배 밭 한가운데, 마늘밭 옆 비닐하우스 속에 있다.
기후변화, 고령화, 시장의 변화. 이 세 가지 축은 농업 지속가능성을 흔들고 있다. 그러나 그 해답은 현장에 있다는 믿음으로, 이들은 오늘도 묵묵히 작물과 기술을 길러낸다.
김 원장은 “품종 하나에 10년이 걸리고, 병해충 하나를 예측하기 위해 사계절을 견뎌야 한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노력은 농가의 생계와 국가의 식량안보를 함께 지킨다. 미래농업은 먼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8곳 밭 옆 연구소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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