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오르면 유류세 인하”…20년 넘게 반복된 정책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입력 2025.06.24 10:17  수정 2025.06.24 10:17

두번의 오일쇼크에 한국경제 ‘와르르'

반복되는 단기처방 남발로 효과 반감

에너지 정책 재설계 등 구조적 대응 필요


정부가 오는 30일 종료 예정이었던 유류세 인하 조치를 2개월 더 연장하기로 했다. 현재 적용 중인 휘발유 인하율은 10%, 경유 및 액화석유가스(LPG)부탄 인하율은 15%다. ⓒ뉴시스

고유가가 다시 한국경제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는 상황이 급박해지자 중동 위기만 터지면 어김없이 꺼내는 카드인 ‘유류세 인하’를 또 내밀었다.


문제는 이런 처방이 20년 넘게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간 별다른 구조개선 없이 위기를 ‘견디는’ 방식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정부 조치에도 국민 체감효과는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우리 정부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움직임과 알우데이드 미군기지 공격 등에 따른 유가 상승 압력에 대응해 유류세 인하 조치를 2개월 추가 연장했다. 국제유가가 80달러 선을 위협하면서 국내 물가 상승과 물류비 부담 확대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조치에 대해 2000년 이후 고유가 국면마다 반복된 대응이라는 점에서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에너지 정책을 재설계 해 더 확실한 중장기 대책이 나와야 하는 시기다.


세 번째 오일쇼크? 중동 불안과 한국경제의 과거


지난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는 한국경제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1973년 1차 오일쇼크 당시 국제유가는 배럴당 3달러에서 12달러로 급등하며 전 세계를 흔들었다. 한국은 수입물가 급등과 외환 부족에 시달렸다. 1974년 국내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24.3%나 뛰었다.


1979년 이란혁명 이후 발생한 2차 오일쇼크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국내 물가는 28.7% 상승했다. 무역수지는 큰 폭으로 악화됐다. 당시 한국의 원유 수입 의존도는 90%를 넘었다. 경제는 에너지 수급 불안에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이후에도 국제 정세는 반복적으로 원유 시장을 뒤흔들었다. 1990년 걸프전 발발과 2003년 이라크 전쟁, 2019년 미국과 이란 간 긴장 고조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까지 매번 유가가 상승하면 국내 정유·운송·물류업계는 비용 압박을 호소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그때마다 물가안정을 위한 대책을 쏟아냈다. 특히 제조업 비중이 큰 한국 산업구조는 고유가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환율·경상수지·소비지표 전반에도 연쇄적 충격을 줬다.


이번 2025년 중동발 위기는 과거보다 내성은 다소 강화됐지만 구조적 취약성은 여전하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다.


유류세 인하, 고유가 방파제였나 땜질이었나


한국 정부는 고유가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유류세 인하 조치를 반복해 왔다. 유류세 인하가 정책 수단으로 처음 활용된 것은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이다.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정부는 휘발유·경유에 부과되는 세율을 한시적으로 낮추며 유가 안정에 나섰다.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도 이명박 정부는 유류세를 10% 인하하고 약 22개월간 이 조치를 유지했다.


2018년부터 2019년까지는 문재인 정부가 고유가에 대응해 최대 15%의 인하율을 적용했다. 이후 일부 축소해 7% 수준에서 종료했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겹친 2021년부터 2023년까지는 윤석열 정부가 역대 최대폭인 37% 인하를 단행했다.


한국 유류세 인하 정책 연혁.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이 조치는 1년 9개월간 이어졌다. 그리고 이번 올해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중동 사태의 긴박한 전개에 따라 다시 유류세 인하 연장을 발표했다.


문제는 이 같은 조치가 반복적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유류세 인하가 체감 물가에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에 대한 분석은 엇갈린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 자료에 따르면 유류세 인하 후에도 휘발유 가격 하락폭은 2~3% 내외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유가 자체의 국제 시세 반영 속도가 느린 데다, 정유사 마진이나 유통단계 비용 구조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수 감소로 인한 재정 손실도 무시할 수 없다. 2022년에는 유류세 인하로 인해 교통세·교육세 등 관련 세입이 전년보다 4조4000억원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결국 유류세 인하는 단기적으로 유가 충격을 흡수하는 ‘방파제’ 역할은 했을지 몰라도, 고유가 시대를 구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은 되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한 셈이다.


취약한 공급망, 구조적 대응은 가능한가


한국의 에너지 수급 구조는 중동 의존도가 매우 높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원유 수입 중 72.3%가 중동 지역에서 들어왔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가 상위 3대 수입국이다.


정유공장 대부분은 중동산 유종에 최적화된 설비를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원유 수급이 차질을 빚을 경우 설비 전환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공급선 다변화가 쉽지 않다.


정부는 비상 시 활용할 수 있는 전략비축유를 100일 분량 이상 확보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와 공동 대응 시스템도 가동 중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상 대응책’일 뿐 구조적인 해법은 아니다.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원유 수입선 다변화, 국산 에너지 비중 확대, 장기적 전력 믹스 조정이 요구되는 배경이다.


에너지 전환 속도는 아직 더딘 편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한국 전력생산 중 재생에너지 비중은 9.5%에 불과하다. OECD 평균(약 30%)과 비교하면 한참 뒤처진 수준이다.


원자력이나 LNG 등 중간에너지 확대 정책도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기 쉬운 구조다. 이 때문에 고유가 시대가 장기화될 경우 한국경제는 다시 에너지 가격발 인플레이션 압력과 소비 위축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한 에너지분야 경제 전문가는 “이번 사태는 단순히 유류세 인하로 대응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정부와 국회는 이제야말로 에너지 안보를 재설계할 시점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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