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아침, 전철역 입구는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그 흐름을 거슬러 조용히 쪼그려 앉아 있는 사람이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마음 한구석이 묘한 울림으로 젖는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우리의 삶이 바뀌었듯 구걸의 형상도 변화되었지만, 그 안에 담긴 사연과 사람 냄새는 여전한 듯하다.
동냥하는 청년의 겉모습은 스무 해를 갓 넘긴 듯 보인다. 추운 겨울에는 모자와 목도리, 마스크와 장갑으로 얼굴과 몸을 단단히 감춘다. 고개는 늘 숙여 바닥만 보고 있어 그의 표정을 알 수 없다. 발 앞에는 박카스 상자나 스티로폼 통이 놓여있다. 전철 출구 앞에 대학교가 있어 아침 등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적선을 호소하기 위한 듯 내부 계단 중간쯤에 앉아 있다. 추위가 누그러지거나 따스한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바깥으로 나와 앉아 있기도 한다. 원하는 것이 이것이라고 표현하고자 하는 통에는 천 원권 지폐 한 장과 동전 몇 개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몸 어디가 아픈가. 젊은 사람이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걸까. 혼자 별별 생각을 다 해 본다. 출근 시간이 지나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다.
구차해 보이는 모습이 몇 해 이어지자 주민들은 이제 무심하다. 하지만 매년 3월 새롭게 등교하는 신입생 주머니는 동냥 통 앞에서 가볍게 열리곤 한다. 낯선 풍경은 점점 굳어져 시간이 지나면 그들도 그냥 지나치기만 한다. 그런데도 몇 년째 고개를 숙인 채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 보면 어느 정도 벌이가 되는가 보다. 주위에 목발이나 이동 보조도구 같은 장애의 징표는 보이지 않는데 앰한 모습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한다. 떳떳하게 땀 흘리며 일할 수는 없는 걸까. 어쩌면 짐작할 수 없는 사연이 있을지 모르지만 육신이 멀쩡해 보이는 모습은 답답하기만 하다. 이제는 구걸이 직업이 된 것인가. 힘들게 돈 버는 것보다 수입이 나은가. 저렇게 밖에 할 방도가 없는 것인가 하는 온갖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문득 어린 시절 시골 마을이 떠오른다. 전쟁의 상흔이 생생하던 시절, 목발을 짚거나 손에 갈고리를 낀 걸인들이 집집이 돌아다녔다. 그들의 등장은 아이들에게는 공포였지만 어머니는 조용히 쌀 한 됫박, 혹은 몇 푼의 돈을 내놓으셨다. 아직 국가의 원호나 복지 정책이 미비하여 가족의 생계를 위해 구걸은 어쩔 수 없는 생존의 방식일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시골의 장날이나 재래시장의 길바닥을 기어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긴 장화를 신고 엎드려 밀고 다니는 수레에는 껌이나 수세미와 같은 자질구레한 물품이 실려 있었고 카세트에서는 언제나 성가가 흘러나왔다. 그들에게 얼마 정도 쥐여주는 것이 인간의 도리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이제 그런 광경은 좀처럼 볼 수가 없다. 복지의 손길이 곳곳에 닿은 덕분일까. 홀몸노인이나 가족이 있더라도 수입이 없는 분들을 파악하여 기초수급대상자로 선정되면 병원비는 거의 무료이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매월 칠팔 십만 원의 생계비도 지원해 주기도 한다. 또 노령연금이나 장애인연금 같은 사회보장시스템이 구축되어 최소한의 생활은 할 수 있게 되어있다. 정부의 제도 뿐 아니라, 종교기관이나 각종 사회단체에서도 어려운 분들을 대상으로 무료급식이나 반찬 지원도 꾸준하다. 나 역시 성당 봉사자로서 매달 어려운 이웃을 찾아 작은 정을 나눈다.
오래전 지하철에서 만났던 아이들의 모습도 이제는 아득하다. 때 묻은 옷을 입고 조용히 다가와 손수 적은 종이 한 장을 무릎 위에 놓고 사라진다. 종이에는 항상 비슷한 문구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안 계시고 어린 동생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작은 정성이라도 저희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글씨는 삐뚤삐뚤하고 간혹 철자가 틀리기도 한다. 글과 손과 얼굴에는 간절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람들은 뻔한 글귀라 그 종이를 보지도 않고 돌려주거나, 무릎 위에 가만히 두기도 한다. 고개를 돌리는 사람, 눈을 감고 자는 척하는 사람,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털어내려는 사람도 있다. 이따금 조용히 지갑을 열어 지폐를 종이 위에 얻어 아이에게 건네주는 모습을 보면 천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이의 사정이 진짜일까. 혹시 나쁜 어른들의 꾐에 빠져 앵벌이 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 때마다 마음이 묵직해졌다. 도움을 줄 때는 마음이 가볍지만, 그렇지 못한 날은 아이의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온종일 마음이 무겁고 애처롭다. 어린 나이에 전철에서 고개 숙이고 종이를 내밀기까지 얼마나 많은 망설임이 있었을까. 요즈음 구걸하는 아이들이 사라졌다. 각박해진 세상 인심 때문일까, 복지 정책으로 사회가 바뀌었다고 위안을 삼아도 될는지.
삶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여정이 아닐까. 누군가는 두 어깨로 짊어지고 어떤 이는 무릎을 꿇은 채 세상의 자비를 기다린다. 어느 쪽도 쉬운 길은 아니지 싶다.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길 위의 나그네다. 구걸은 타인의 시선을 견디는 일이고, 적선은 자기 연민과 싸움일지도 모른다. 힐끗 바라보며 지나쳤던 그들의 하루도 우리와 다르지 않게 소중했을 것이다. 한없이 작고 초라해 보이는 그들 앞에서 흔쾌히 동전 한 닢 내놓지 못한 나는 오늘도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조남대 작가 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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