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장 무죄선고는 경영실력으로 자신을 입증해야 함을 의미
삼성을 공격하는 세력에 맞서는 비결은 탁월한 경영실적
할아버지·아버지와 차별화된 경영 비전 제시를 기대
대법원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19개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현실적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삼성이 “오너가 아직 재판 중이어서”라는 핑계를 더 이상 댈 수 없고 오직 경영실적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함을 뜻한다.
2015년 7월 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주총 이후 온갖 악재가 삼성에 들이닥쳤다. 삼성은 2016년 국정농단 수사부터 범죄기업처럼 매도되었다. 2016년 11월 13일에는 이 회장이 참고인 신분으로 첫 검찰 조사를 받았고 이후 두 번이나 감옥을 다녀왔다. 삼성은 그런 우여곡절을 겪고 거의 10년 만에 사법리스크를 완전히 털어 냈다.
사실 삼성은 대한민국의 간판 기업으로서 내부의 문제점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외부의 공격이나 견제를 다양하게 받아 왔다. 삼성을 공격하거나 견제하는 세력은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첫째, 극소수이지만 “한국의 자본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려면 가장 강력한 자본집단인 삼성부터 쳐야 한다”라는 극좌 세력이 있다. 레닌과 트로츠키가 러시아혁명을 추진하면서 서로 속삭였던 전략은 바로 “가장 강한 놈만 집중적으로 두들겨 패자. 그래서 사회 곳곳에 갈등과 긴장이 끊이지 않도록 하자”였다. 이들은 숫자로는 미미하지만 다양한 채널을 통해 반(反)자본주의·기업·삼성 메시지를 한국 사회 곳곳에 침투시키고 있다.
둘째, 강자의 불법을 막고 약자의 고통을 대변하는 경제 정의를 실현한다고 자처하는 세력이 있다. 몇몇 시민단체와 일부 교수들이다. 이들은 삼성의 지배구조나 회계처리의 부당함과 불법성을 밝혀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지금까지 에버랜드나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을 문제 삼았고, 앞으로는 계약자 배당금 이슈를 둘러싸고 삼성생명을 다시 도마 위에 올릴 조짐이 보인다. 보통 이들이 고발하면 수사, 기소, 재판이 수년 동안 진행되니 삼성으로선 괴로울 수밖에 없다.
일부 검사들이 이런 작업을 맡아 왔다. 검사 출신인 홍준표 전(前) 대구시장은 페이스북에 “오늘 삼성 이재용 회장에 대해 19개 혐의가 모두 무죄로 확정되었다. 정치 검사들의 만행이었다. 재벌을 무조건 잡아야 뜬다는 못된 명예심에 들떠 문재인 정권과 좌파 시민단체들의 사주로 막무가내로 수사한 윤석열, 한동훈의 합작품이었다. 그 사이 삼성전자의 위축으로 한국 경제에 미친 부정적 영향이 얼마나 지대했나?”라고 비판했다. 사람에 따라 의견이 다르겠지만 부분적으로 공감 가는 발언이다. 당시 ‘경제 공동체’나 ‘묵시적 청탁’ 같은 창의적인(?) 개념의 등장부터 코미디 같았다. 검찰 수사는 초기부터 무리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분식회계 수사에서 증거를 찾지 못하자 증거인멸이나 횡령 등 다른 의혹을 제기해 별건 수사나 과잉 수사를 벌이기도 했다.
셋째, 삼성이 국내에서 가장 크고 세계적으로 잘 나가자 여러 가지 이유로 질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사안에 따라 삼성에 손뼉을 쳐주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삼성에 비판적이다. 과거 ‘삼성 공화국’이란 용어가 등장한 것도 얄밉게 보이는 삼성에 대한 질시의 표현이었다. 삼성은 예전부터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들과 끈끈한 네트워크를 맺는 대관(對官) 업무로 유명했지만, 회사를 위기로 몰아넣은 주범으로 몰리면서 대관 업무가 예전 같지는 않다.
그러면 삼성은 이런 공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정답은 분명하다. 무슨 대관 업무를 빈틈없이 하는 게 아니라, 오직 최고의 경영 실적을 올려 국민에게 신뢰를 주고 나라 경제에 힘이 되는 일이다.
이재용 회장이 10년 동안 사법 문제로 골치를 앓으면서 삼성의 경쟁력은 초라하게 몰락했다. 그동안 이 회장은 총 185회나 재판에 출석했다. 일부 좌파 매체에서는 “재판 출석이 경영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강변하지만, 입장을 바꿔 보라. 며칠에 한 번씩 법원에 출두하려면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고 법원에서 보내는 시간도 만만찮다. 정치인들이야 그래도 시간 낭비가 아니지만, 분초를 다투는 글로벌 기업 총수로서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조동근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의 설명처럼, 최고경영자에게는 ‘자기 시간’이 경영자원인데 재판에 불려 다니면서 이 회장과 삼성그룹은 ‘회복 불가, 측정 불가’의 피해를 봤다.
삼성은 그 기간 경영 실책과 투자 실기(失機)를 반복해왔다. 2019년 AI 시대의 핵심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 조직을 축소하는 패착을 두는가 하면, 파운드리와 비메모리 반도체에서 수조 원의 적자를 거듭하다가 급기야 올 1분기에는 주력인 D램마저 SK하이닉스에 뒤지는 굴욕을 당했다. 재무통들이 기술 인력들을 고압적으로 다루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삼성을 떠나는 고급 엔지니어들이 늘어났다.
원래 삼성은 조직 충성도가 강해 퇴임한 임원들이 좀처럼 회사를 비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근래 들어 달라졌다. 퇴임 임원들 서너 명만 만나면 회사를 성토하기 바쁘다. 이 회장이 사법리스크에 시달리는 동안 측근 경영진들이 회사를 망쳐 놓았다고 한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우리가 일궈 놓은 삼성을 이렇게 망치다니”라면서 흥분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이해해 줄 수 있다. 회장의 사법리스크 때문에 경영 실적이든 조직 커뮤니케이션이든 일정 부분 저하되고 왜곡될 수 있다. 그래서 변명도 통할 수 있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비즈니스 현장과 주식시장에는 “삼성전자의 시간이 왔다”라고 흥분한다. 변명과 핑계가 통하지 않는 시간이 시작되었고, 공은 온전히 이재용 회장의 손으로 넘어왔다.
그래서 이 회장의 등기임원 복귀도 필요하고 첨단기술 개발도 중요하며 과감한 사장단 인사도 시급하다. 하지만 이 회장 자신이 실무적으로 열심히 뛸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회사의 전체 기둥과 비전을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 중심을 잡아 줘야 한다. 원래 이 회장은 작위적으로 남에게 보여주려는 쇼잉(showing)을 싫어하는 성격이다. 하지만 지금은 쇼잉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선대부터 내려온 강력한 삼성 정신을 되찾아야 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경영 정신을 그대로 반복할 필요는 없으나 “손자이자 아들인 제가 이런 걸 했습니다”라고 말할 무언가를 내놓아야 한다. 지금 삼성에서 유행한다는 ‘위기에 강하고 역전에 능하며 승부에 독한 삼성인’같은 구호는 프로세스 메시지에 불과하다. 이건희 회장이 즐겨 말했던 “그래서 왜? 그래서 어떻게?” 같은 콘텐츠 메시지가 필요하다. 일본의 3대 상인이라는 오미상인들의 좌우명은 산포요시(三方よし)인데, 이것은 ‘파는 사람도 이롭고 사는 사람도 이로우며 세상도 이로워야 한다’라는 뜻이다. 산포요시를 능가하는 비전과 아이디어를 이재용 회장이 내놓아 주기를 세상은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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