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 분류되지 않아 책무구조도 적용 대상 제외
당국도 제도 정비 필요성 강조…제도적 움직임은 아직
"책무구조·준법감시인 제도, 독립성·실효성 떨어져"
"실정 맞춘 책임 분배 필요…시범운영·인센티브 도입"
상호금융기관의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MG새마을금고, 신협, 농협, 수협, 산림조합 등 5개 주요 상호금융사에서 최근 5년간 발생한 횡령·사기·배임 사건은 263건, 누적 피해액만 1789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 기관은 각각 다른 주무부처의 관할 아래 있어 금융당국의 일원화된 관리·감독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따라 허술한 관리감독 체계를 뜯어고쳐 상호금융기관의 정확한 실태부터 파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데일리안은 현황과 문제점, 제도적 허점, 개선 방향 등을 4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상호금융기관에서 매년 수십 건의 금융사고가 발생하고 있지만, 사고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물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여전히 부실하다. 특히 '책무구조도'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어, 사고 발생 시 책임자조차 불분명하게 처리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구조로 인해 상호금융기관 내부통제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책무구조도 도입과 함께 시범 운영, 인센티브 제공 등 제도 안착을 위한 유인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책무구조도' 부재…상호금융, 내부통제 사각지대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책무구조도는 금융당국이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도입한 제도로, 금융회사 임원이 담당하는 직책에 따라 책무를 배분하고 사고 발생 시 이를 기준으로 책임소재를 따질 수 있게 만든 일종의 '책임 지도'다.
금융지주와 은행(18개사)은 올해 1월부터 책무구조도 제도를 시행 중이며, 이달부터는 자산 5조원 이상 대형 증권사·보험사(53개사)도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 내년 7월부터는 중소 규모의 금투·보험사, 여신전문금융사, 저축은행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그러나 상호금융기관은 이 제도에서 빠져 있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지법)에 따라 상호금융기관은 '금융회사'로 분류되지 않아 책무구조도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새마을금고, 신협, 농협, 수협, 산림조합 등 각 중앙회별로 내부통제 관련 규정이 별도로 존재해 중앙회 차원에서는 일정 수준의 내부통제가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개별 단위조합까지는 내부통제 범위가 미치지 못해 허점이 있다
이로 인해 매년 수십 건의 횡령·사기 등 금융사고가 반복되지만, 내부 통제 책임이 누락되거나 분산돼 사고에 대한 '책임자 찾기'는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있다.
실제 지난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간 상호금융권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는 총 263건, 피해액은 1789억원에 달했지만, 대부분 임직원 개인의 책임에 그쳤고 조직 차원의 구조적 책임이 명확히 규명된 사례는 드물었다.
금융당국도 문제 인식…제도화는 아직
이에 업계 일각에서는 상호금융기관이 시중은행과 견줄 만한 자산 규모와 조직망을 갖추고 있음에도, 내부통제 기준은 비금융권에 머물러 있어 책무구조도 적용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도 그간 꾸준히 제도 정비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앞서 김병환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해 9월 상호금융 중앙회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타 금융기관에 준하는 수준으로 내부통제와 책임체계를 정비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아직까지 제도적 움직임은 사실상 없는 상태다.
감독 부처가 분산돼 있어 금융당국 차원의 제도 정비 역시 쉽지 않다. 금융당국은 행안부, 농식품부, 해수부 등 주무부처와의 협업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 제도 도입 논의는 각 기관의 이해관계에 막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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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책임 명확화…유인책 병행해야"
전문가들은 상호금융권의 책무구조 부재가 반복되는 사고의 핵심 원인이라며, 제도적 공백을 메우려면 책임 구조에 대한 전면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상호금융기관의 책무구조는 CEO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게 설계돼 직원교육, 직원들에 대한 경각심 제고에도 한계가 있다"며 "아울러 외국계 금융사는 준법감시인을 외부 전문가로 채용하지만, 국내는 내부 인사가 겸직해 통제의 독립성과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CEO가 내부통제 전반에 책임을 지도록 하고, 준법감시인도 외부 인력으로 구성해야 한다. 실제 미국은 엔론·월드컴 사태 이후 책임구조를 강화했고, 이후 유사 사고가 크게 줄었다"며 "상호금융은 업권별 사업 구조와 전문성이 다른 만큼, 실정에 맞는 책임 분배가 필요하다. 자율에만 맡기기보단 책무구조도 의무화하고, 시범 운영·인센티브 제공 같은 유인책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사고 발생 시 개별 책임소재가 명확히 드러날 수 있도록 전산기록과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구조화할 필요가 있다"며 "감독당국은 상호금융중앙회 차원에서 책무구조도 이행 매뉴얼을 표준화하고 이행 실태에 대한 평가와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제도 안착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호금융은 조합 중심의 구조로, 이사장·전무·조합원 간 책임 불명확성과 이해 충돌이 반복되는 특성이 있다"며 "이사회·집행부·내부통제 점검으로 이어지는 단순하고 명확한 삼단 책무 구조를 설계하고, 조합원 대상 회계·리스크 교육을 병행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상호금융 사고③] 감독은 허술, 주무부처는 제각각…뒷북 반성만>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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