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얼마나 더 망가지고 말려는가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07.09 07:07  수정 2025.07.09 07:07

당의 정체성 선언부터 분명히 하라

‘혁신 시늉’이 위원회의 미션이었나

자기희생 통한 당 재건에 힘 모아야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사퇴 후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국민의힘이 어떤 이념과 가치의 바탕 위에 서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애매모호하다는 뜻이다. 그 때문에 이 당이 추구하는 나라의 모습도 명확히 그려지지 않는다. 역사와 전통이 오래인 보수정당이라고 하는데 다른 정당과의 차이가 뚜렷하지 않다. 물론 좌파정당, 특히 더불어민주당과 구별되는 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규정하지도 선언하지도 않음으로써(아마도 못 하는 것이겠지만) 차별성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제약하고 있다.


자코뱅 적 구호와 행태를 서슴없이 드러내는 민주당에 비해 국민의힘은 ‘자유민주주의’를 최우선적 가치로 제시한다. “아무리 비싸고 더러운 평화라도 이긴 전쟁보다 낫다”라는, 대단히 허황하고 무책임한 이재명식 평화론·안보관에 대해서는 아주 비판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 김정은 집단의 군사적 위협에 단호히 맞서는 자세를 취한다. 당연히 국민의힘 안보정책의 중심축은 한·미 동맹체제다. 이를 기반으로 자유진영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를 안보정책의 틀로 삼는다. 미국 및 중국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우선은 미국에 둔다.

당의 정체성 선언부터 분명히 하라

그러니 우파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 아니냐고 할 것인가? 어림없는 소리다. 어쩌다 몇몇 소속 의원들의 주장이 그렇다는 것이다. ‘한목소리’라고 할 만한 게 없다. 대부분은 은근슬쩍 시세와 여론에 묻어간다. 따라서 경쟁 논리로서 내세울 만한 안보·외교 정책도 없다는 게 진실에 가깝다.


그래도 따지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당의 강령과 당헌을 살펴볼 일이다. “우리는 믿는다” 형식의 16개 조가 강령으로 제시되어 있지만 이는 정당의 강령이라기보다는 사회 구성원의 다짐이라고 하는 게 어울려 보인다. 문투로 미루어 2004년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에 광고로 게재된 마이클 하워드 영국 보수당 당수의 ‘보수주의자의 신념’을 흉내 낸 인상이다. 그렇지만 차이는 뚜렷하다. 국민의힘 강령은 하워드의 신조에서 정치색을 빼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하워드는 존 D. 록펠러의 1남 4녀 중 막내아들 존 D. 록펠러 주니어가 1941년 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발표했던 호소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자선재단 설립을 독려하고자 했던 이 호소문은 “나는 믿는다(I believe)”로 시작되는 10개 조로 구성됐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록펠러보다 더 정치색이 탈색된 내용의 문장을 정당의 강령으로 내 걸었다. 당헌 전문(前文)의 기조도 다를 바 없다. 보수정당의, 대단히 점잖은 이웃 아저씨 행세다.


하워드의 16개 가운데 11, 12, 13조는 “믿지 않는다” 형식으로 이뤄졌다.


“11. 어떤 사람이 부자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가난해졌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12. 어떤 사람이 지식이 있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무식해졌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13. 어떤 사람이 건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병이 더 악화됐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이 부분이 오히려 더 두드러져 보이는 보수적 가치 선언이다. 국민의힘은 이렇게 똑 부러지게 선언할 용기를 보여주지 못한다. 좌파 정치세력들의 집요하고 언어 파괴적인 공격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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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시늉’이 위원회의 미션이었나

다시 하는 말이지만 국민의힘, 그리고 그 전신들은 게으르고 비겁하고 회피적이고 기회주의적이면서 욕심만 많은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어 온 이익집단의 모습을 보여 왔다. 그 때문에 다 태워버리고 그 잿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키워내야 할(피닉스처럼) 절체절명의 시점에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엉거주춤 시간을 허비하곤 했다(2004년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달랐지만). 그러다 개탄·비난·실망의 분위기가 숙지근해지면 얼기설기 고치는 시늉을 하다가 기존 체제를 되살리는 수리공의 잔재주로 끝내고 말았다.


안철수 혁신위원장 사퇴소동이 보여준 것도 ‘국민의힘다움’이다. 예상치 못한 사태가 아니라 예정된 코스였다고 할 수 있다. 송언석 원내대표가 이끄는 비상대책위원회가 혁신위원회를 자기들의 상위기구로 둘 생각을 했을 리 만무하다. 비대위 하위기구의 지위와 위상을 명심하고 처신해야 한다는 게 무언의 조건이었을 터이다.


안 의원이 그런 조건에서라도 위원장직을 수행할 것으로 생각했다면 비대위가 제대로 착각한 셈이 된다. 기회 있을 때마다 야망을 드러내 보여 온 그가 쓰러져가는 가문의 간부들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이미지 훼손을 감내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그로서는 이른바 ‘쌍권(雙權: 권성동·권영세)’을 당에서 내보냄으로써 과감한 개혁 리더라는 국민적 평판을 얻을 기회로 여겼을 법하다. 그런데 결정은 비대위와 실세들이 하고 자기더러는 마네킹 노릇이나 하라는 분위기로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사퇴하지 않을 방법이 있었을까?


송 비대위원장은 쌍권의 퇴진은 물론이려니와 혁신위 구성과 관련해서도 안 의원의 의사를 전적으로 수용할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게다가 권 전 원내대표와 권 전 비대위원장은 불쾌감을 있는 대로 드러냈다. 비대위 측은 안 위원장을 설득할 의지가 없었고, 쌍권은 당내 위상과 영향력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안 의원은 ‘거대한 벽’에 부닥쳤다고 했지만 애초에 그걸 감안하지 않았다면 자기 앞을 가로막은 ‘벽’이 아니라 자신의 무딘 정치 감각을 탓할 일이었다.

자기희생 통한 당 재건에 힘 모아야

은감불원(殷鑑不遠: 은나라의 거울이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앞 왕조였던 하나라를 거울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2대 총선을 앞두고 구성됐던 인요한 혁신위원회를 돌아보면 답은 진작 나와 있었다. 인 위원장은 ‘전권을 부여한다’라던 김기현 당시 당 대표의 립 서비스를 믿고 혁신위원장을 수락했다가 이렇다 할 성과도 없이 이미지 손상만 겪어야 했었다. 안철수 혁신위는 그만큼도 가지 못한 채 제풀에 주저앉아 버렸고….


국민의힘 실세라는 사람들은 애초부터 물러나기는커녕 자신의 몫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생각 같은 것은 해본 적이 없다고 봐야 한다. 그게 보수정당의 체질이 되었으니까. 당의 실세, 유력자라는 사람들이 정말로 보수정당의 재건을 바랐다면 작년 22대 총선 참패 때, 적어도 지난 6월의 대선 참패 때는 즉시 당 해체를 선언할 일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아주 제한적이던 당 해체→재건 가능 시간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기득권 세력이 요지부동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작은 양보조차 거부한다. ‘TK 정당’이라는 국민적 조롱 속에서도 TK 출신을 원내대표로 뽑은 정당이 ‘변화와 쇄신’(송언석 원내대표가 당선 소감으로 강조)을 정말 이뤄낼 것이라고 믿는 국민들이 과연 있을까? “내 의원 배지만 무사하다면 대홍수야 나든 말든”이라는 사람들의 집단이 국민의힘이라는 인식을 떨쳐낼 수가 없다.


자유우파 및 중도층 국민들을 더 얼마나 괴롭히고서야 정신 차리려는 것인가? 지지 국민들은 당 소속 국회의원 개개인의 이‧불리에 관심이 없다. 압도적 거대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과 맞설 수 있는 당당하고 단합된 자유우파 정치세력의 등장을 기대하는 것이다. 쓰러져가는 집안에서 썩은 기둥 붙잡고 용을 쓰기보다는 자기희생을 통한 당 재건에 힘을 모으는 것이 정치적 대도(大道)의 실천임을 명심하시라. 늦었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이 재기를 향한 첫걸음의 적기임을 믿으면서….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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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란 외환수괴 방탄하며 계엄 해제 고의 방해할 때부터 이미 이적단체의 길로 가고 있음을 진짜 몰라서 이런 사설을 쓰는건지?  그들은 북한과의 전쟁도발을 목적으로 수백차례 드론을 날렸던 내란 외환수괴와 한몸인 자들이다.
    2025.07.11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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