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넘어 ‘공감’으로…인식의 지평 넓히는, 북한 소재 뮤지컬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5.07.12 09:51  수정 2025.07.12 09:51

한반도 분단 80년을 앞둔 2025년, 단순한 정보 전달과 교육의 틀을 넘어 북한 주민들의 보편적인 일상과 감정을 담아낸 뮤지컬들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공감’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인식 확장을 이끌어내고 있다.


지난 9일 서울 중구 CKL스테이지에서 개막한 뮤지컬 ‘은경’은 이러한 흐름의 중심에 있다. 작품은 북한판 ‘안네의 일기’로 불리는 원작 에세이 ‘은경이 일기’를 토대로 제작됐다. 지난 2024년 통일인식 및 북한 이해 제고를 위해 제작돼 쇼케이스로 처음 선보이면서 낯설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청춘의 고민과 성장을 담아내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하며 호평을 받았다.


ⓒ(사)문화예술교육협회

당시 ‘은경’은 북한 청년의 현실을 문학적 감성으로 재해석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며 남북 청소년 간의 이해를 증진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평범한 북한 10대 소녀 은경이 겪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친구들과의 우정, 가족과의 사랑, 그리고 꿈을 향한 열정 등 보편적인 감정들을 북한이라는 배경 속에서 그려냈다. 관객들은 주인공 은경의 소소한 행복과 고민, 좌절과 희망을 함께 느끼며 ‘우리와 다르지 않은’ 북한 주민들의 삶에 깊이 공감한다.


‘은경’의 손아선 연출은 “북한 청년 역시 우리와 같이 사랑, 우정, 꿈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임을 그린 작품”이라며 “나아가 북한 청년뿐 아니라 자신의 미래, 꿈을 향한 길 위에 서 있는 현대 사회의 청년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작품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은경’에 앞서 지난 5월 서울 종로구 파랑새극장에서는 또 다른 북한 소재 뮤지컬 ‘언틸 더 데이’가 공연되면서 북한 문화 콘텐츠에 대한 관심을 이끌었다. 이 작품은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지하교회 성도들의 목숨을 건 신앙생활과 굶주림으로 인해 기본 행복권까지 말살당한 주민들의 인권유린 실태를 고발한다.


공연 관계자는 “북한의 암울하고 처절한 현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도와야만 한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뮤지컬 ‘언틸 더 데이’를 제작했다”며 “배우들의 땀과 열정이 한국과 전 세계에 북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 두 작품은 물론, 지난해 공개된 ‘엄마라 부르고 여자라 쓴다’ ‘냉면’ 등 최근 잇따라 선보이는 북한 소재 뮤지컬들은 대부분 통일부의 ‘북한 인권 증진 활동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과거 북한 관련 콘텐츠는 대부분 ‘이념’이나 ‘체제’를 중심으로 한 정보 전달형, 혹은 북한 체제의 비극성을 강조하는 계몽적인 성격이 강했다. 통일 교육의 연장선상에서 북한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거나, 탈북민의 삶을 통해 북한 인권 문제를 고발하는 방식이 주를 이룬 셈이다. 물론 이러한 시도들 역시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알아야 할 대상’으로서의 북한을 강조했을 뿐, 정서적인 연결이나 보편적인 인간애를 통한 깊이 있는 이해로 나아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등장하는 북한 소재 뮤지컬들은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어 ‘정서적 공감’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북한의 현실을 무겁고 심각하게 다루기보다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과 고민, 그리고 희로애락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물론, 북한의 현실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자칫하면 현실을 미화하거나 왜곡할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작품들이 지향하는 바는 ‘이상적인 북한’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북한’을 보여주는 데 있다. 북한 주민들 역시 우리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같은 희로애락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환기시키며, 분단으로 인해 가려졌던 인간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한 공연 관계자는 “‘교육’에서 ‘공감’으로, 북한을 이해하는 방식의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 뮤지컬이라는 문화 예술 장르가 이 변화의 최전선에 서서, 관객들의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새로운 문화적 자산을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며 “앞으로도 이러한 시도들이 더욱 다양하고 깊이 있는 형태로 발전해 남과 북이 서로를 이해하고 다가가는 데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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