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효섭 "원작 있으면 아쉬운 점 있을 수 밖에"
데뷔 10년 차에 접어든 안효섭은 2025년, 커리어의 정점을 찍고 있다. 영어 더빙에 참여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며 주목받았고, 올해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히는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의 개봉도 앞두고 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이하 '전독시')은 10년 이상 연재된 소설이 완결된 날 소설 속 세계가 현실이 되어 버리고, 유일한 독자였던 김독자가 소설의 주인공 유중혁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판타지 액션이다. 이 작품은 작가 싱숑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연재한 웹소설이 원작이다.
안효섭에게는 데뷔 10년 만의 스크린 데뷔작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스크린 데뷔작으로 '전독시'를 선택한 이유를 묻자, 안효섭은 망설임 없이 "끌림"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또한 배우로서 자신의 고민과 감정의 진폭이 김독자에게 겹쳐진 까닭이었다.
"먼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작품이 어떻게 실사화되고 어떤식으로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했어요. 두번째는 김독자라는 인물에 너무 끌렸어요. 당시 작품을 연속으로 하던 시기였어요. 그러다보니 지금 내가 뭘하고 있는지 회의감이 들기도 했고요. 이리저리 치이면서 생각이 많아진 시기에 대본을 혼자 카페에서 읽는데 김독자가 딱 그때의 저 같은 인물이더라고요. 세상에 치이고 마음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는 상황 속에 놓여져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했던 인물들은 특색이 있는데 김독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런 점도 흥미로웠죠."
드라마와는 다른 호흡의 영화 작업은 그에게도 새로운 방식의 접근을 가능하게 했고, 김병우 감독과의 협업은 그 과정에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드라마와 다르게 영화는 조금 더 작품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있더라고요. 김병우 감독님이 굉장히 집요한 성격인데 그런 점도 저와 잘 맞았어요. 서로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려고 대화를 많이 했어요. 현장에서 질문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 감독님도 제가 물어보면 '옳거니!' 하는 무드로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셨어요. 그렇게 김독자를 만들어 나갔죠."
'전독시'는 워낙 팬덤이 탄탄해, 제작 단계부터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다. 캐스팅은 물론 원작과 달리 각색된 설정이 공개될 때마다 원작 팬들의 지적이 따라왔다.
"원작이 있으면 아쉬운 점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저도 제가 좋아하는 작품이 리메이크 된다고 하면 의심을 하기도 해요. 이미 각자 머릿 속에 구현된 수치화된 생각들을 깨부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요. 많은 이야기가 있을 거라 당연히 예상도 갔어요. 하지만 그런 생각들에 발목 잡히기엔 영양가 없는 걱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대본 안에 있는 독자를 최대한 잘 만드는 일 뿐이었어요. 최대한 작품과 캐릭터에 몰입해 할 수 있는 연기를 했어요."
안효섭은 허구의 세계를 설득력 있게 만들기 위해선 오히려 인물의 감정과 선택이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어야 한다고 봤다.
"영화가 판타지 장르지만, 전 판타지일 수록 더욱 이야기가 땅에 붙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고민했던 지점이 독자의 의외적인 선택을 했을 때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였죠. 워낙 말도 안되는 상황들이 펼쳐지니까 중심에 있는 독자가 중심을 잡지 않으면 이야기가 날아가버리겠떠라고요."
안효섭이 특히 많은 공을 들인 장면 중 하나는 '그린존'에서 김독자가 중요한 결단을 내리는 순간이다.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는 인물로서, 그는 자신이 살 수 있는 방법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이 동료들의 생명을 외면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영웅 서사를 넘어 윤리적 갈등이 깊게 작동한다. 안효섭은 이 장면을 연기하며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했다고 전했다.
"독자는 여기 서면 살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죠. 진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내 목숨을 희생할 수 있을까, 이 때가 현실적인 고민이 많았던 순간이었어요. 이 장면 찍을 때 온몸이 엄청 젖어있었어요. 실제로 연기하면서 수치스럽고 답답한 감정들이 가득했었죠."
낯선 공간, 실체 없는 대상과 마주하는 CG 기반 촬영은 배우에게 특별한 상상력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안효섭 역시 처음에는 실체 없는 공간 앞에서 스스로도 당황했다고 고백했지만 이내 징중력을 끌어올렸다.
"블루스크린 앞에서 현타가 오기도 했어요. 하지만 현타온 순간들이 너무 창피하더라고요. 내가 이걸 믿지 못하면 관객을 어떻게 설득시키겠어요. 그런 생각이 든 이후부터는 몰입도가 확 높아졌습니다."
기존 히어로물과 차별화되는 지점 중 하나는 김독자의 액션이다. 화려한 기술이나 과장된 몸놀림보다, 인물의 내면과 성장 곡선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독자가 히어로 같지 않아야 했어요. 김독자는 누구나 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인물이 어떻게 완벼한 액션을 할 수 있겠어요. 옷도 세벌 준비했어요. 처음에는 옷이 조금 큰 느낌에서 시간이 갈 수록 점점 타이트해져요. 옷핏을 통해 구색을 맞춰간다는 디테일을 살리려고 했어요. 독자가 점점 성장하고 정갈한 액션을 보여주고 싶어서 계산적으로 찍었죠."
속편에 대한 언급도 조심스럽게 이어졌다. 결정 권한은 본인에게 있지 않지만, 이야기의 흐름과 캐릭터의 확장이 가능하다면 참여할 의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1편에서 구축한 인물의 기반 위로, 이후 더 분명한 얼굴을 가진 김독자가 그려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엿보였다.
"속편이 저의 선택으로 되는 게 아니지만 모든 상황이 도와준다면 참여하고 싶어요. 1편에서 독자가 허둥지둥 자신의 신념을 찾아가며 어느 정도 기준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속편에서는 그 기준을 통해서 조금 더 뚜렷하게 자신을 표출할 수 있는 카리스마 있는 독자가 될 것 같아요."
강렬한 비주얼과 압도적인 스케일, 장르적 쾌감을 모두 품은 '전독시'는 무엇보다 관객이 이 세계에 얼마나 몰입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저희 작품은 시각적, 음향적으로도 완벽한 경험을 하기 위해 극장 관람을 추천드려요. '롤러코스터' 타는 경험을 할 수 있으실 겁니다. 오랜만에 한국에서 나온 큰 스케일의 작품이니 우리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해요. 짧은 시간 안에 이 세계 주인공을 느껴봐 주세요."
안효섭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스스로에게 솔직한 선택을 이어왔다는 점에서, 안효섭은 지금의 자신을 조금은 다독일 수 있게 됐다. 앞으로도 안효섭은 변하지 않고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묵묵히 하루를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결과를 바라고 작품에 임한 적은 없습니다. 그냥 제가 하고 싶어서 선택했고,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할 수 있어요. 10년 동안 묵묵하게 잘 걸어온 것에 대해 스스로 토닥여주고 싶어요. 앞으로도 똑같을 것 같아요. 심장이 끓는 한 최대한 열심히 살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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