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근로기준법 확대 논의 급물살
외식업계, 인건비·구인난·물가 상승에 우려↑
전문가 “유연성 갖춘 노동정책 필요” 조언
외식업계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잠잠하던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논의가 최근 급물살을 타면서다. 관계자들은 최저임금 인상과 물가 부담 속 법 적용까지 확대되면, 근로자 보호보다 영세 자영업자를 범법자로 내모는 역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 사회1분과는 지난 8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간담회를 열고 고용·노동 분야 국정과제를 집중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양측은 상시 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문제를 지적하며, 이를 국정과제로 추진할 필요성에 공감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상시 근로자 수 5인 미만 사업장은 해고 제한과 부당해고 구제신청, 연장근로 제한을 비롯해 연장·휴일·야간 가산수당 적용과 연차유급휴가 등이 적용되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노동계가 오랫동안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를 주장해온 배경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16일과 19일 총파업을 예고하면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과 현장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보장 등을 요구했다. 민주당도 21대 대선에서 "상시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하겠다"며 이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외식업계는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이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다수 외식 매장은 직원 수 5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으로, 인건비 여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주휴수당·연장근로수당 등 법적 의무가 추가되면 운영 자체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서대문구 창천동에서 실내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A씨는 “5인 미만 사업장까지 전면적으로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자는 일부의 주장과 논의는 하루하루 살아가기조차 힘든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절박함과 어려움을 외면하는 재앙과 같은 소식”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자는 주장은 시기상조의 담론이자, 악법으로의 개악에 불과하다”며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는 우리 경제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이 실업자 양산 등 사회적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영세한 사업장이 가산수당, 유급휴가 등 경제적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면 직원을 유지하는 대신 자동화기기 도입 등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어서다.
특히 주말·공휴일 중심의 근무 구조와 잦은 인력 교체 등 업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 법 적용은 오히려 고용 축소와 같은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칫 복잡한 법 규정으로 인해 자영업자가 범법자로 내몰릴 수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강서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B씨도 “근로자 보호 취지는 이해한다”면서도 “하지만 영세 자영업자가 이 모든 걸 감당하라는 건 너무 가혹하다. 주말 장사가 핵심인데 공휴일 수당까지 다 챙기라면 결국 가족이 더 나와 일하거나 키오스크 같은 기계를 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외식업계는 인건비 부담과 구인난, 지속되는 물가 상승으로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소비 위축이 이어지는 가운데, 매출은 줄고 고정비는 늘어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사장 본인 수입도 최저임금에 못 미친다. 자영업자 3명 중 1명은 월 평균 소득이 최저임금에도 못 벌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자영업자 500명을 조사한 결과, 30.4%가 최저임금(월 209만6270원) 수준에도 못 미친다고 답했다.
더 큰 문제는 외식업계를 둘러싼 여건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과 이재명 정부의 주 4.5일제 추진으로 근무일이 단축되면 인력 충원이 불가피해지고, 이로 인한 인건비 부담과 단기 아르바이트 의존도 증가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프랜차이즈협회 관계자는 “관련 비용이 지나치게 늘고 있어 단순한 최저임금 인상과는 차원이 다른 상황”이라며 “최근 3개월 미만 퇴직금 논의까지 더해 줄폐업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소상공인을 따로 구분하고 보호하는 이유 자체가 무색해지는 듯 하다”고 우려했다.
다만 일각에선 외식업계를 향한 따가운 시선도 존재한다. 대승적으로 보면 근로자 보호라는 방향성에 큰 공감대가 형성되면서다. 오랜 시간 같은 쟁점을 반복하면서도 외식업계서는 여전히 ‘현실이 어렵다’는 호소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이다.
폐업률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외식업계의 어려움도 이해하지만, 이제는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응책을 제시할 때라는 지적이다.
예컨대 영세 사업자 고용 시 인건비를 보조하거나, 중소기업의 신입 채용에 급여를 지원하는 방식 등을 적극 요구할 때라는 것이다.
강성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환경을 지키는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외식업처럼 유연성이 중요한 업종은 현실을 감안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근로시간제도나 주52시간 같은 부분도 좀 더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한국도 이제는 선진국이니 기준을 맞춰가는 건 맞지만, 자영업자들 목소리도 함께 들어주고, 지금처럼 무조건 강화만 하는 식으로 가선 안 된다”며 “외식업계도 무조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자영업자가 원하는 조건을 명확히 제시하고 정부와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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