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 중심 양곡법 개정으로 쌀값 잡힐까...외식업계선 ‘실효성’ 지적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입력 2025.07.31 06:51  수정 2025.07.31 06:51

쌀값 상승에 자영업자 ‘비상’…공깃밥도 2000원 시대

기상이변에 쌀 생산 차질…공급 감소가 가격 밀어올려

외식·급식·HMR까지 전방위 영향…“도미노 인상 불가피”

기업들도 쌀 소비 확대 총력…“가공식품 수출 등 노력”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쌀이 진열돼 있다. ⓒ뉴시스

쌀값 안정을 위한 양곡법 개정이 시행됐지만, 외식업계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실질적 가격 인하로 이어지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쌀 소매가 급등으로 김밥·덮밥 등 쌀 중심 메뉴의 원가 부담이 커지자, 일부 자영업자들은 밥 리필 제한이나 메뉴 가격 조정에 나섰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쌀 가격은 3월부터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20kg 기준 쌀 소매 가격은 ▲3월 5만5237원 ▲4월 5만4831원 ▲5월 5만6178원 ▲6월 5만9059원 등이다. 이 기간 전년 대비 평균 가격 상승률은 6.7%에 달한다.


국내 쌀 생산량 감소가 가격을 밀어 올린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KREI)에 따르면, 지난 1~4월 산지 유통업체의 벼 매입량은 15만7000톤(t)으로 전년 대비 1만6000톤 가량 줄었다. 쌀 공급이 줄면서 이와 비례해 재고도 감소했다.


쌀 생산 감소의 배경에는 최근 심화된 기상 이변이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7월 중순 기준 전체 벼 재배면적의 3.6%에 해당하는 2만5065헥타르가 호우로 침수 피해를 입었다. 평년보다 높은 기온과 갑작스러운 폭우로 경작 단계부터 벼농사를 망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부는 지금까지 양곡관리법(양곡법)을 통해 곡물 수급 계획을 수립해 왔다. 지난 26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소위원회에선 여야 합의로 양곡법 개정안이 통과됐는데, 해당 법안은 ▲과잉 생산 쌀 매입 ▲타작물 재배 보상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외식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생산자 중심 처방에 그칠 뿐” 이라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쌀값 상승의 원인이 기상이변과 작황 부진 등 복합적인 데다, 타작물 보상이나 정부 매입은 단기적인 가격 안정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서울 시내를 중심으로 공깃밥 가격 인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최근 2년간 식자재 물가 상승으로, 수년간 1000원대에 묶여 있던 공깃밥 가격을 2000원까지 올린 식당이 눈에 띄게 늘었다. 외식업계에선 장기간 가격 동결과 전반적인 식자재값 상승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강서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50대)씨는 “쌀값이 오르면 단순히 한 공기의 문제가 아니라, 원재료 수급부터 소비자 가격까지 전방위로 영향을 준다”며 “외식업 전체의 가격 구조를 흔들 수 있는 핵심 변수”라고 설명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쌀이 진열돼 있다.ⓒ뉴시스

문제는 쌀값 상승이 단순히 밥 한 공기의 가격 만을 끌어올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외식업계 전반에 걸쳐 연쇄적인 ‘도미노 인상’을 유발한다. 김밥, 비빔밥, 덮밥, 백반, 도시락류 등 저가 전략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분식집이나 소형 식당일수록 타격이 더 크다.


급식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학교, 군대, 병원 등 대규모 단체급식을 운영하는 급식업체들은 쌀을 대량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단가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는 학생·군 장병·환자 등 취약 계층의 식생활 비용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식자재업계 관계자는 “쌀은 대체재가 거의 없는 주식이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면 급식 원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며 “올해는 쌀 생산량이 감소했으나, 정부가 공공비축 물량을 확대하면서 시중에 풀리는 쌀이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쌀 값이 상승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쌀 생산량과 도정수율이 평년보다 낮은 상황에서 정부 매입 정책까지 더해지며, 쌀값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에 즉석밥, 도시락, 김밥 등 쌀 사용량이 많은 제품의 제조 원가도 함께 오르고, 단체급식 기업은 식재료 단가 부담이 커지고 있는 상황”고 귀띔했다.


가정간편식(HMR)과 배달 식품 시장 역시 영향을 받고 있다. 즉석밥, 컵밥, 볶음밥, 레토르트 덮밥 등 쌀을 기반으로 한 제품군은 제조원가 상승으로 편의점·대형마트 판매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편의점업계 관계자는 “매년 비딩을 통해 최선의 가격으로 쌀을 대량 수매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쌀값 오름세가 장기화될 경우 다른 원재료 인하를 통해 가격 유지하려는 노력과 함께 제조사 변경, 원재료 비딩, 레시피 변경, 직수입 원재료 서칭 등을 병행한다”고 설명했다.


서울 서초구 푸드페스에서 한 관계자가 시식용 떡볶이를 컵에 담고 있다.ⓒ뉴시스

국내 기업들은 남아도는 쌀을 활용해 다양한 식품을 개발하고, 소비자들이 자연스럽게 쌀을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국민 식습관 변화로 단순히 밥 소비만 늘리자는 구호가 현실성이 떨어지자, 자구책 마련에 적극 동참하는 모습이다.


제품에 밀가루 대신 국산 쌀을 넣어 만든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일례로 술을 빚을 때 100% 국산 쌀을 활용해 빚거나, 쌀로 만든 음료를 개발하는 등 쌀 소비 촉진을 위한 제품 생산을 확대하고 추가 쌀 제품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밖에 계약재배를 통한 농가 상생 역시 꾸준히 이어 오고 있다. 기업들은 농가가 연간 쌀 사용량 및 수매 단가를 함께 설정해, 연중 쌀값이 떨어지더라도 당초 함께 설정한 적정 공급가를 기준 삼아 ‘농가 수익 보전’에 기여해 오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수출용 가공식품을 만들어 재미를 보고 있다. 관계자에 따르면 코로나19의 확산 등 여러 대외 악재로 수출 경기에 먹구름이 드리웠지만 농식품 만은 예외다. ‘K-푸드’의 약진은 거침이 없다. 쌀가공식품 역시 고른 상승세를 보이며 농수산식품 수출 확대를 이끌었다.


다만, 식품업계 전반적으로 갈수록 제품 개발에 대한 원가 부담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공통적인 고민거리고 통한다. 최근 과자 뿐 아니라 즉석밥 등 다양한 제품 개발에 있어서 외국산쌀 사용이 늘고 있다. 민간 기업이 정부미를 꼭 사용해야 할 의무나 강제성이 없기도 하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현재 제품의 특성이나 가격 등에 맞춰서 외국쌀 등을 섞어서 사용하고 있지만 기업들이 사들이는 정부미 양은 해마다 늘고 있다”며 “소비자들의 식습관이 변했기 때문에 기업 차원의 노력과 함께 정부 차원의 근본책이 나와줘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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