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탕감 이어 ‘전세사기’도 배드뱅크…“또 은행 돈으로?”

원나래 기자 (wiing1@dailian.co.kr)

입력 2025.07.31 07:18  수정 2025.07.31 07:18

여당, 전세사기 배드뱅크 사업 규모 1조원 추산

금융위, 국토부와 선순위 채권 현황 파악 사전조사

“4000억 재원 분담도 협의 안됐는데...과도한 부담 반복적 전가”

금융위원회가 국토교통부와 협업해 전세사기 피해 주택의 선순위 채권 현황을 파악하는 사전조사에 착수할 것으로 전해졌다.ⓒ데일리안

정부가 서민 피해 구제를 위한 ‘전세사기 배드뱅크’ 설립을 공식 검토하면서, 재원 마련을 둘러싼 논란이 금융권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미 8000억원 규모의 빚 탕감 배드뱅크를 추진 중인 가운데, 소상공인과 서민 등을 위한 공적 금액이 잇달아 등장하면서 재원 마련을 위해 금융권이 또 다시 ‘팔 비틀기식’ 부담에 직면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국토교통부와 협업해 전세사기 피해 주택의 선순위 채권 현황을 파악하는 사전조사에 착수할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국토부가 조사 대상이 될 피해주택 명단을 추리는 작업을 진행 중이며, 금융위는 자료가 확보되는 즉시 현황 분석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이 조사를 통해 전세사기 배드뱅크 설립의 타당성과 실현 가능성을 가늠할 예정이다. 특히 경·공매가 이미 끝나 실익이 없는 물건을 제외한 주택을 중심으로 매입·정리 가능성을 점검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원회는 다음달 4일 전세사기 피해 대응을 위한 간담회를 소집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금융감독원, 업권별 협회, 5대 시중은행,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정부가 인정한 누적 피해자는 3만1437명에 달하며, 이 중 상당수가 집주인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금융사의 선순위 담보권 행사에 직면한 상태다.


이로 인해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강제 퇴거 위기에 놓인 사례가 빈번하다.


정부는 배드뱅크가 선순위 채권을 일괄 매입하면 세입자들이 명도소송 등으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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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자금 조달이다. 여당은 전세사기 배드뱅크의 규모를 약 1조원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운영 주체로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검토하고 있다. 이 중에서는 부실채권 정리 경험이 풍부한 캠코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캠코는 이미 금융취약계층 채무조정을 위한 8000억원 규모의 '빚 탕감’ 배드뱅크를 추진 중인 상황이다. 여기에 전세사기 구제까지 맡을 경우, 이중으로 ‘배드뱅크 운영’ 체계가 가동된다.


캠코 내부 재원을 활용한다고 해도 결국 그 재원은 금융사 출연금 또는 정부 재정 지원으로 구성되는 만큼, 실질적 부담은 은행권에 전가될 공산이 크다.


금융권 관계자는 “공적 책무를 내세운 재정 동원이지만, 실상은 금융권에 다시 한 번 손을 벌리는 구조”라며 “은행들은 이미 서민금융진흥원 출연 확대, 이차보전 정책 등으로 충분히 기여했다는 피로감이 누적돼 있다”고 토로했다.


더욱이 앞서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도 정부는 “금융권의 자발적 기여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실제 4000억원 규모의 재원 분담에 대한 금융권 내부 협의조차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은행의 공적 기능 수행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며 “사회안전망의 일부로서 일정 수준의 기여는 필요하지만, 민간 금융사에 과도한 부담을 반복적으로 전가하는 것은 시장 기능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표면적으로는 ‘자율적 참여’를 강조하고 있으나, 이미 구체적인 금액까지 거론되며 사실상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는 점에서, 당국이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고 있다”고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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