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티리얼리스트, 8일 개봉
첫 장편 데뷔작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오르고, 전 세계 영화제에서 60여 개 트로피를 휩쓴 감독이 있다. 바로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이다. 셀린 송 감독의 '패스트 라이브즈'는 사랑이란 감정을 이민자 정체성과 선택의 문제로 확장해 전 세계 관객과 평단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셀린 송이라는 이름을 단숨에 영화계에 각인시켰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한국에서 함께 자란 두 남녀가 20여 년 만에 뉴욕에서 재회하며, 엇갈린 삶 속에서 인연과 운명의 의미를 되짚어가는 이야기다. 한국계 이민자이자 극작가 출신인 셀린 송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선택하지 않은 삶을 마주했을 때 밀려오는 감정의 복잡성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런 만큼 셀린 송의 차기작에 쏠리는 기대도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신작 '머티리얼리스'트는 전작의 감성을 그대로 잇기보다는, 결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현대의 사랑을 다시 바라보는 작품이다.
영화는 유능한 커플 매니저 루시(다코다 존슨 분)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완벽한 이상형과, 과거 구질구질하지만 뜨겁게 사랑했던 전 연인 사이에서 고민하는 상황을 그린다. 감정보다 조건이 앞서고, 현실보다 사랑에 기대고 싶은 관계를 통해, '머티리얼리스트'는 사랑마저 계산의 대상이 되는 자본주의 시대의 연애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커플 매니저라는 직업 설정은 진정한 사랑을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상대를 고를 때는 수치화된 조건을 따지는 현대인의 모순된 태도를 유머러스하게 비틀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주목할 점은 전작과 결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셀린 송이 일관되게 여성 주체의 내면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패스트 라이브즈'의 나영은 이민을 떠나는 순간에도 "한국에선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없으니까"라고 말하며, 자신의 선택임을 분명히 한다. '머티리얼리스트'의 루시 역시 사랑 앞에서 재고 따지는 스스로를 합리적으로 계산한다.
두 작품 모두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쓴 오리지널 영화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현재 극장가에서는 속편과 세계관 확장 중심의 안전한 IP에 대한 의존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으며, 멜로 장르는 그 구조 속에서 가장 먼저 배제되는 장르 중 하나다.
그런 흐름 속에서 셀린 송 감독이 내놓은 두 편의 오리지널 멜로는 단비처럼 반가울 수 밖에 없다. 기획보다 리스크 관리가 우선이 된 오늘날의 영화 산업에서, 감각과 확신으로 만들어낸 셀린 송 감독의 행보는 새 활력과 더불어 앞으로를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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