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정외과 교수, 데일리안 인터뷰
"尹, 생의 궤적서 '보수 가치' 발견 안된다"
"'안철수·한동훈' 상식적 보수가 명맥 이어"
"중국 관계 등에 현실적 대안 제시가 중요"
미국 보수의 상징적 인물 배리 골드워터는 저서 '보수주의자의 양심'에서 진정한 보수란 자유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양심적 보수주의자는 국가 권력이 비대해져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상황을 경계하고, 집단주의와 권위주의에 맞선다. 인간의 존엄과 개별성, 책임을 지키는 것이 보수의 본령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지난해 12월 3일 과연 그의 안에 보수주의자의 양심이 있었던가.
계엄령과 그로 인한 탄핵, 이어진 조기대선에서의 패배까지. 우리나라 보수는 철저히 길을 잃었다. '보수'라는 단어조차 꺼내기 조심스러운 시대가 왔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보수는 마치 죄인이 된 듯 위축돼 있다. 이제 보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다시 설 수는 있을까. 우리나라 보수 정치가 예전처럼 제 길을 찾을 수 있는 희망은 남아 있는 걸까.
이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한국국제정치학회·세계지역학회 부회장,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지낸 후 각종 언론에서 날카로운 정치 평론을 이어가고 있는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만났다.
신율 교수는 윤 전 대통령이 '보수가 아니다'라는 명쾌하고도 간결한 평가를 내렸다. 그리고 윤 전 대통령 생의 궤적에서부터 '보수의 가치'를 발견할 수 없다는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다.
다음은 신율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 그리고 조기 대선까지 거치게 됐다. 지금 우리 사회의 '보수 대 진보' 구도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는가.
"보수 대 진보의 구도는 유효하다. 그런데 그것은 이념에 관한 부분다. 우리가 다른 (윤석열 전 대통령과 같은) 부분을 관련 지어서 얘기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지금 이 구도가 여전히 유효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보수와 진보라는 가치에 관한 문제다. 지금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지지하고 이런 것들이 과연 가치에 관한 문제인지를 얘기 했을 때 그건 아니라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의 생의 궤적에서 보수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느냐. 그건 아니라고 본다.
윤석열 전 대통령 경우 보수를 주장한 지 얼마 안 됐다. 갑자기 주위에서 추대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바로 이런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을 이용해서 (그를 추대한 인사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한 부분이 있지 않았느냐. 보수에서 영입한 인물인 건 확실하지만 보수 이념을 따졌을 때 그 사람은 적통이 집어넣어진 사람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그리고 이명박 전 대통령도 적통이라고 할 순 없지만 최소한 보수 진영에서 무언가를 했다. 서울시장을 지내거나 국회의원을 하거나…… 윤 전 대통령보다 훨씬 낫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이 보수 진영 사람들을 감옥에 집어넣은 사람이지 않느냐."
현재 한국의 보수의 상태를 어떻게 진단하시나. 단순한 지지율 하락을 넘어 구조적 위기로 보는 지 궁금하다. 위기에 봉착해 있다면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나라 이념 지형은 원래 보수 우위의 이념 지형이다. 그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이후에 진보 우위로 됐다가 2021년 11월 정도부터 다시 보수 우위 진영이 돼서 쭉 유지가 됐다. 그러다 어떻게 됐느냐. 다시 진보 우위 진영으로 바뀌었다. 한국 갤럽을 기준으로 보면 되는데, 보수층의 응답률이 많이 떨어졌다. 우리가 과소 표집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이 자체가 보수가 대답을 안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답을 하지 않는) 그것도 여론이다. 보수 상태가 어떻나. 분명 과거처럼 보수가 우위인 진영이 유지가 되고 있지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런 상황이라 볼 수 있다. 그게 한 3~4년은 갈 것이다. 과거 사례를 봤을 때. 딱 잘라 말하자면 쪽팔린 상태다.
다만 구조적 위기라고 보지는 않는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모습이 곧 보수의 구조를 의미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의원들 자체는 자신의 정치생명을 중시하는 사람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보수라는 가치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자신의 정치생명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번 국민의힘 8·22 전당대회가 한국 보수의 어떤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단순한 당권 경쟁 이상의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아니다. 전혀 그렇게 안될 것이다. 한국 보수의 전환점이 전혀 될 수 없다. 당대표가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전당대회가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찬탄(탄핵찬성)과 반탄(탄핵반대)인데 이건 보수의 가치가 아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은 절대 보수 자체를 상징할 수 없는 사람이다. 찬탄·반탄 그게 왜 중요한지 이해를 못한다는 것은 이게 보수의 가치를 갖고 싸우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예를 들면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지 않느냐. 우리나라에서 진보와 보수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대북 문제다. 한쪽에서는 북한에게 인도주의적 지원을 해야한다거나 이런 문제를 두고 싸우면 모를까, 지금 찬탄과 반탄 갖고 싸우지 않느냐. 재밌는 게 한국사 강사인 전한길 씨라는 분이 나타나 '(당대표 후보) 면접'이라는 표현을 썼다. 뭐 당원의 물음에 대해 답을 하는 건 좋다. 그럼 다른 당원에게도 답을 해줘야 하지 않느냐. 그러니까 뒤죽박죽인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전당대회가 무슨 보수의 전환점이 되겠느냐. 당권 경쟁 그 이상 그 이하도 의미가 없다."
최근 극우 논란 중심에 있는 전한길 씨에 대한 견해는 어떠신가. 당대표 후보들마저 의견이 갈리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 갈등이 보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아직도 왜 그 분이 기준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 극우다 아니다 이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극우의 성격이 가장 중요한 게 민족주의인데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가 없지 않느냐. 그러니 가타부타 판단할 수는 없다. 단,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그리고 탄핵을 화두로 던지는 게 문제라고 본다. 그냥 국민의힘 당원 중 한 명이고 게다가 6월초 입당한 당원이 왜 그렇게 됐는지 이해를 못하겠고 과한 측면이 많다. 그런 부분에서 보수에서 절대로 긍정적인 역할이 될 수 없다.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확실하다.
지금 전 씨를 생각하면 사람들은 윤 전 대통령을 생각한다. 윤 전 대통령이 자꾸 앞에서 알짱거리면 좋을 게 없다. 예를 들어 '(윤 전 대통령이) 특검 수사를 피하기 위해 속옷만 입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이런 것들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을 점점 나락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보수 정치가 다시 일어설 가능성이 있나. 희망이 있다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한국 보수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 가장 핵심적으로 갖춰야 할 조건은 무엇인가.
"내년 지방선거는 지나봐야 된다. 그리고 지방선거에서 참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 있는데 패배하는 건 맞다. 참패냐 패배냐 둘 중 하나인데 만약 그렇게 된다고 하면 그때는 조금 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다음 총선이 있으니 초조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초조함을 갖고 있으면 뭔가 바뀌려는 노력을 보일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내란에 철저히 반대했고 비상계엄 당시부터 철저히 반대했고 탄핵에는 철저하게 찬성했고 이런 국민적 상식에 부합하는 행동을 한 사람이 당의 얼굴로 등장하게 된다면 그때는 비로소 민주당도 국민의힘을 향해 '내란 정당' 이런 얘기는 못할 것이다. '정당 해산' 이런 얘기 나오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당대표 후보중 가장 적합한 후보는 안철수 후보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상식적 보수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한동훈 전 대표다. 한 전 대표 같은 경우 비상계엄 당시 목숨을 걸었다. 그 사람은 국회에 가서 계엄 해제에 굉장한 공을 세웠다. 그가 직접 투표하지는 않았지만, 계엄군들이 한 전 대표를 봤을 때 '뭐야 이거 (당시) 여당 대표도 왔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들의 행동을 자제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 위험 요소에도 불구하고 국회로 간 게 상징성이 크다. 그리고 탄핵 표결 당시 끝까지 자리를 지킨 안철수 후보 같은 사람, 친한(한동훈)계 의원들 등 (상식적인 사람들이) 다 있다. 그런 분들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보수라고 할 수 있다. 그 사람들이 우리나라 보수의 명맥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시대가 보수에게 요구하는 정신은 무엇이라 보나. 이 시대에 맞는 보수의 언어와 태도, 나아가 새롭게 정립돼야 할 패러다임이 있다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보수의 정신은 시대가 요구하는 것도 있지만 항상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세계 최빈국에서 지금 이 정도의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건 보수 덕분이다. 진보 덕분이 아니다. 그거 하나만 갖고도 충분하게 지금 이 상황 속에서 보수의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번째는 북한 문제다. 우리가 핵을 안고 살지 않느냐. 그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중은 무엇이냐. 동맹국 필요 없다. 기준 딱 하나다. 친중(親중국)이냐 반중(反중국)이냐 딱 두 그룹에서 나눠진 상태에서 보수라면 서슴없이 하나를 택해 나름대로의 갈 길을 찾아가려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수가 중요하겠다.
세 번째. 또 북한 문제에 있어서도 '핵 문제를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부분에 있어 현실적인 고민을 할 수 있는 것도 보수다. 예를 들어보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한미연합훈련을 축소나 조정하자고 하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된 북한군은 특수부대다. 그 부대의 임무는 뭐냐. 한반도 유사시 후방에 침투해서 교란을 하는 부대다. 그 부대가 실전 경험을 쌓고 있다는 것이다. 실전경험은 어떤 훈련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 특수부대가 실전 훈련을 받고 있는데 우리는 한미 연합훈련을 축소 혹은 조정하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야외 기동 훈련은 혹서기니 너무 더워 폭염이니 한 달 뒤에 하자? 폭염이나 혹한기 이런 때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냐. 옛날 군대 갔다 온 사람이나 군대를 아는 사람들은 이해가 가지 않는 얘기다. 보수 정권이라면 과연 그랬을까. 그렇지 않다.
보수의 패러다임, 우리나라 보수 유권자들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안보다. 안보를 어떻게 더 안심시키는 방향으로 갔느냐. 20년 전 색안경을 끼고 지금을 바라보는 게 아닌 얼마큼 현실적인 대안으로 우리 국민들을 안심시킬지가 제일 중요하다.
그 다음은 중국과의 관계다. 중국은 여태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해 무언가를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우리나라 경제가, 중국 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아무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데 자꾸 중국이 중요하다고 그러면 설명을 해줘야 한다. 중국은 이제 점점 지렛대조차 없다. 북한과 러시아는 딱 붙었고 미국도 (중국이) 필요 없다는 세상인데, 중국이 과연 (우리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보수라면 합리적으로,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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