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가 맺기까지의 과정은 기다림을 키우는 일이다. 블루베리 묘목을 심어 정성을 다해 돌보자 해가 갈수록 수확의 기쁨은 더 커졌다. 하지만 자연은 즐거움을 혼자만 누리게 두지 않았다. 뜻하지 않게 찾아온 날개 달린 손님과 다툼은 미처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길지 않은 승부였는데 올해는 그 싸움마저 멈췄다. 마냥 좋을 수만 없어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본다.
매년 칠월 초순쯤이면 농원의 블루베리 밭은 작은 보석들이 박힌 듯 반짝인다. 햇살을 머금은 푸른 열매들이 가지마다 익어가고,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절로 흐뭇해진다. 블루베리를 심은 지 어느덧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십여 그루를 정성 들여 거름 주고 가지를 쳤다. 봄마다 꽃을 지켜보며 어느덧 수확의 기쁨도 맛보게 되었다. 흑진주처럼 까만 열매가 입안에서 톡 터졌을 때의 새콤달콤한 맛을 잊지 못해 땀 흘리며 일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몇 해 동안은 수확량이 괜찮아 지인들에게 나누기도 했다. 어린 손주들이 입안을 남보랏빛으로 물들이며 맛있게 먹는 모습은 큰 기쁨이었기에 나는 크고 잘 익은 열매는 남겨두고 못생기고 덜 익은 결실만 겨우 맛볼 뿐이다. 자식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이 제일 보기 좋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자식을 넘어 손주까지 생각이 나서 제대로 된 과실을 먹지 못하니 부모 된 심정이 다 그런다 보다. 갓 따온 열매를 맛본 지인들은 "이렇게 신선하고 상큼한 블루베리는 처음이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뿌듯한 자부심을 느낀다. 내년에는 땀을 좀 더 흘리더라도 신이 내린 선물을 여러 사람이 맛볼 수 있게 하리라.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새들이 제일 먼저 시샘을 냈다. 어느 해부터 인가 하나둘씩 날아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몇 마리 정도였고, 큰 피해는 아니었다. 수확하는 재미가 한창일 때 상황이 달라졌다. 날마다 새떼가 몰려들더니, 나보다 먼저 맛보기 시작했다. 주말 농사꾼이기에 일주일에 한 번씩 들리곤 하지만, 수시로 들락거리는 새들을 당할 수가 없다. 첫 번째 수확한 후 잔뜩 기대하고 다음 주에 가면 가지마다 까맣게 익었을 블루베리는 온데간데없다. 새들의 부리 자국만 남아 있었다. 야속하여 이마가 절로 찌푸려진다. 애써 농사 지은 주인의 몫은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고 잘 익은 열매만 정확히 골라 먹는 것 보면 놀라웠다. 그들의 눈과 부리, 후각은 나보다 한 수 위였다.
몇 해를 허탕 치고 나서야 블루베리를 키우는 이웃집에 자문해 ‘새 그물’을 생각하게 되었다. 블루베리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촘촘한 새 방지용 그물을 설치하자 효과는 확실했다. 열매는 온전히 내 손에 들어왔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장면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새 한 마리가 그물에 걸려 날갯짓도 하지 못한 채 숨져 있었다. 다음 주에도 한 마리, 그 다음엔 두 마리가 그물에 머리를 축 늘어뜨린 채 며칠을 지난 모습으로 걸려있었다. 블루베리를 지켜낸 대신, 새들의 생명을 빼앗은 꼴이었다.
먹먹한 마음으로 수확의 기쁨보다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 하는 죄책감이 앞섰다. 어릴 때 집에서 키우던 병아리가 먹이를 찾아 나다니다 덫에 걸린 것 같아 마음 한 켠에 핏빛 멍이 들었다.
며칠 전 농원을 찾으니 블루베리 나무가 까맣게 익은 열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축 늘어뜨린 채 나를 맞이한다. 환희와 함께 손놀림이 빨라진다. 아직 새들이 열매가 익은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일주일이 지난 다음 반신반의하며 찾았는데도 눈치채지 못했는지 새까만 열매가 주렁주렁하였다. 수확을 시작한 지 몇 주가 지났는데 새가 다녀간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젠 이들이 내 밭의 열매를 포기했나’, 아니면 ‘자기들 사이에 위험한 곳이니 가지 말라는 알림장이 돌았나’, ‘더 맛난 먹이감이 있는 곳을 찾아갔나’ 하는 생각이 들쑥날쑥하다. 지난해 까지만 해도 수확하는 도중에 저쪽에는 새들이 날아들어 흑진주를 낚아채서 큰소리로 야단을 쳤었다. 열매는 풍성한데, 예전처럼 이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하늘은 잔잔하고 숲도 조용하다. 낯선 적막감으로 쓸쓸하기까지 하니 수확이 신명 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친다. 온난화 등 기후 변화 때문일까. 병해충 증가와 개회 시기 변화로 꿀벌의 집단 폐사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하지 않던가. 철새도 도래 시기가 변화하고 북방계 조류는 남하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나의 밭에 들리던 새들도 날씨가 너무 더워 오지 않았거나 시원한 곳으로 옮겨 간 건 아닐까. 평년보다 빠르게 피어난 꽃, 강수량의 변화 등이 새들의 이동 경로에 영향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태어나서 제일 뜨거운 여름을 겪는 듯한 요즈음 지구 온난화에 대한 심각성이 내 곁에 와 있음이 느껴진다. 어떤 연유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새의 피해 없이 얻은 풍성한 수확을 앞에 두고도 께름칙한 마음에 웃을 수만은 없다.
올해도 블루베리는 어김없이 익었지만, 가지 사이로 날아들며 제 몫을 챙겨가던 생명의 움직임은 사라졌다. 열매를 지키려 애쓴 손길과 생존을 위해 날아든 이들과의 갈등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적막한 분위기만 감돈다. 내년에는 새들의 날갯짓을 기다려봐도 될까. 그땐 조금 덜 가지더라도 그들을 막지 않으리. 반갑게 다시 마주칠 날을 기다리며 방금 따낸 새까만 열매 한 줌을 입안에 넣는다. 새콤달콤함 너머로 그리움 한 점이 툭 터진다.
조남대 작가 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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