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418년 2월 4일, 태종의 넷째 아들인 성녕대군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이때 나이가 14살이었다. 남의 자식은 곧잘 죽여서 아버지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태종이었지만 자기 자식의 죽음 앞에서는 무너지고 말았다. 성녕대군의 장례를 치른 직후, 신하들에게 한양을 떠나 개성으로 가겠다고 얘기한다. 아마 성녕대군이 흔적이 있는 곳을 잠시 벗어나려고 한 거 같다. 2월 15일, 태종은 개성의 경덕궁에 도착한다. 그리고 개성에 머무르다가 측근인 조말생에게 양녕대군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는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이상한 놈들과 어울리면서 자신의 속을 썩인다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러면서 명나라 사신들도 성녕대군을 칭찬했다며 넷째 아들의 자랑 겸 아쉬움을 털어놓는다.
조말생은 세자가 공부를 안 하고 나쁜 무리와 어울리는 것은 장인인 김한로가 잘못한 것이라며 그를 처벌하자고 고한다. 사고를 친 학생의 부모님이 선생님에게 우리 애는 착한데 나쁜 친구들이 문제라고 변명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다. 이럴 때 선생님은 그 나쁜 친구가 바로 어머니 아들이라고 따끔하게 일러주지만 태종에게 그런 말을 할 신하는 존재하지 않았다.
마음 여린(?) 아버지가 신하에게 울면서 자식 걱정을 하는 와중에 문제의 자식인 세자 양녕대군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버지가 슬픔에 못 이겨 도성을 떠나 개성으로 가 있을 때 활쏘기를 하면서 마음껏 즐겼다. 아버지 태종이 개경에 머물면서 넷째 아들을 잃은 슬픔을 겨우 지워가려는 찰나,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세자가 예전에 곽선의 첩인 어리를 취한 적이 있었다. 세자라고 해도 엄연히 남의 첩을 빼앗은 것은 큰 문제라서 태종은 크게 꾸짓고 어리를 돌려보내라고 했다. 하지만 양녕대군은 몰래 어리를 만났다. 그것도 장인인 김한로의 어머니가 양녕대군의 아내이자 손녀인 숙빈을 만날 때 몰래 데리고 들어온 것이다. 그렇게 세자에게 돌아온 어리가 임신하자 밖으로 내보내서 아이를 낳게 하고 다시 궁으로 불러들였다.
어떻게 보면 어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무리수를 둔 것이지만 태종에게는 자식이 반항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특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성녕대군이 죽었을 때 활쏘기를 한 것까지 들통난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태종은 세자를 개경으로 호출하고, 스승이었던 변계량을 불러서 화를 낸다. 그리고 이전에 세자를 옹호한 황희를 다시 처벌하도록 지시하는 뒤끝을 보여준다. 그리고 세자의 아내이자 며느리인 숙빈을 사가로 쫓아내고 장인이자 사돈인 김한로를 불러서 어리에 관한 일을 왜 고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했다.
마지막으로 태종은 개성으로 불러들인 세자를 따끔하게 훈계하고 한양으로 돌려보낸다. 근신을 명한 태종은 아들이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런 태종의 믿음이 모래성처럼 금방 허물어졌다. 한양으로 돌아간 양녕대군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병을 핑계로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다. 거기다 아버지에게 반성문을 써서 보냈는데 제목만 반성문일 뿐 실제 내용은 거리가 멀었다.
요약하자면 아버지도 마음껏 첩을 들여서 어머니 속을 썩이고서 왜 나한테만 그러느냐는 내용이었다. 쇼크를 받은 태종은 측근들을 불러서 세자의 반성문 아닌 반성문을 보여주면서 신세 한탄을 했다. 결국 태종이 양녕대군을 세자 자리에서 쫓아내기로 결정한다. 후대의 우리들은 비어있는 세자의 자리를 셋째인 충녕대군이 차지하고 그가 세종대왕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시 조정의 신하들은 큰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후계자를 얘기하는데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척들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종은 예전에 세자에게 양위를 한다고 했다가 처가인 민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더 몸을 사렸을 것이다. 그래서 다음 번 세자로 누구를 심을지에 대한 논의는 정말로 살얼음판을 걷는 상황에서 이뤄졌을 것이다. 태종 18년인 서기 1418년 6월 3일자 실록을 보면 태종은 애초부터 충녕대군을 세자로 삼을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조가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이고 손자인 정조를 왕세손으로 삼은 것과 비슷한 사례다. 태종의 이런 얘기에 많은 신하들이 옳다고 호응하지만 임금의 속내를 조금 더 잘 아는 유정현과 박은 같은 신하들은 어진 사람을 후계자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점을 쳐서 결정하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보고를 받은 태종은 아내에게 물었는데 아내는 형을 폐하고 동생을 세자로 삼으면 문제가 벌어질 것이라고 반대한다. 한참 고민하던 태종은 결국 신하들이 얘기한 어진 사람이 곧 충녕대군이라는 해석을 한다. 아마 애초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결국 태종의 결정으로 인해 충녕대군이 새로운 세자의 자리에 오른다. 양녕대군의 잘못 쓴 반성문은 당사자는 물론 여러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버린다.
정명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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