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가 9월 30일을 끝으로 웨이브에서 실시간 방송과 VOD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이미 지난해 넷플릭스와 6년간 콘텐츠 공급 파트너십을 맺으면서 예견된 수순이었지만, 지상파 3사가 합작해 만든 대표 연합 OTT의 연합 구조의 흔들림을 공식화한 셈이다.
웨이브는 지난 2012년 KBS·MBC·SBS가 공동 출자해 만든 ‘푹(POOQ)’에서 출발했다. 2015년 ‘푹 2.0’을 선언하며 외부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회수해 독점 체제를 강화했고, 2019년 SK텔레콤의 ‘옥수수’와 합병해 지금의 웨이브로 재탄생했다. 이후 웨이브는 지상파 실시간 중계와 다시보기를 독점적으로 제공해왔다.
출범 당시에는 ‘국내 OTT를 키운다’는 공동 목표를 내세웠지만, 2018년 MBC가 ‘피지컬: 100’, ‘나는 신이다’ 등 오리지널 콘텐츠를 넷플릭스에 공급하며 균열 조짐이 드러났다. 이어 지난해 8월에는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 전편의 방송을 확정해 또 다른 글로벌 플랫폼과 손을 잡았다. KBS 역시 일부 드라마를 해외 플랫폼과 별도로 계약하며 개별 생존을 모색했다.
SBS 입장에서는 넷플릭스와의 제휴를 통해 제작비 부담을 덜고, 글로벌 시장을 향한 창구를 넓힐 수 있는 현실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넷플릭스 또한 SBS 콘텐츠 확보를 한국형 스토리텔링 확장의 기회로 내세우며, 경쟁 플랫폼의 주력 자산을 흡수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한편 웨이브는 티빙과의 합병을 앞두고 양사 협력을 강화해 왔다. 지난 6월에는 국내 OTT 업계 최초로 두 플랫폼을 동시에 시청할 수 있는 더블 이용권을 출시하며 CJ ENM 계열 콘텐츠와 KBS·MBC 프로그램을 함께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SBS의 이탈이 현실화되면서, 지상파 연합의 상징성은 사실상 힘을 잃게 됐다.
업계에서는 국내 제작 생태계 전반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다. 최소한 넷플릭스를 견제할 수 있는 국내 OTT 플랫폼이 남아야 제작사들이 가격 협상력과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글로벌 자본이 ‘부르는 게 값’이 되는 구조가 고착화될 수 있다. 이는 IP 독점,불리한 수익 배분, 창작 환경의 제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단기적으로 SBS는 글로벌 유통망이라는 확실한 이점을 확보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내 미디어 산업의 자생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초기의 공동의 목표가 깨진 각자의 선택은 한국 콘텐츠 산업의 균형을 또다시 시험대 위에 올려놓았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