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2주 만에 '조지아주 사태'…'불확실성' 고조
'온건파' 이시바 가고 '강경파' 총리 온다…대일외교도 '난관'
외교 과제 산적한 李…'균형 외교' 발휘가 관건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 외교'가 취임 100일 만에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모양새다. '한미·한일정상회담'을 계기로 3각 공조 기반을 구축하는 성과를 냈지만, 현재 변화된 정세는 녹록지 않다. '조지아주 한국인 구금' 사태를 계기로 동맹 관계인 미국에 대한 불신이 커졌고, 온건파였던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후임으론 강경파 인사들이 거론된다.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새로운 '한미일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회견을 통해 정국 구상을 밝힐 예정이다. △민생경제 △정치·외교·안보 △사회·문화 분야를 순으로 정부 방향성을 설명하고 취재진과의 질의응답도 진행한다. 모든 분야에서 이 대통령이 풀어야 할 과제는 많지만, 당면한 현안은 '외교'다.
취임 직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한미·한일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결과, '조국 사면'으로 흔들렸던 지지율은 반등했다. 외교 성과가 내부 악재를 덮을 정도로 국민적 관심이 높다는 의미인데, 대통령실도 이 성과를 내세웠고 '실용 외교'는 이재명 정부의 기조로 안착했다. 다만 한미일 관계 재편을 앞둔 상황에서 실용 외교가 이번에도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일본을 방문해 이시바 전 총리와 '한미일 3각 협력'에 방점을 찍었다. 미국이 중시하는 '한미일 협력'을 지렛대 삼아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을 성공적으로 끌어내기 위한 전략이었지만, 사실상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다. 미국과는 경제·안보 협력을 기반으로 한 한미동맹 강화 공감대가 형성됐고, 일본과는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하며 미래지향적인 협력을 약속했다.
다만 이번 한미일 협력 강화에 단초가 된 한일 정상회담은 이시바 전 총리의 성향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그는 한일 관계에 있어 온건한 성향으로 분류된다. 지난달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했지만, 참배하진 않았다. 공물 봉납은 우리 정부 입장에선 아쉬운 부분이지만, 이시바 전 총리가 13년 만에 패전일 추도식에서 '반성'을 언급한 것은 향후 한일 문제에 물꼬가 트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잇따른 선거 패배로 당내 퇴진 압박을 못 이겨 결국 사임했다. 문제는 차기 총리로 거론되는 인사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거나 총리가 되더라도 참배를 이어가겠다고 밝힌 강경파라는 점이다.
차기 총리로 거론되는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한일관계에 있어 강경파로 분류된다. 이 둘은 모두 이번 패전일에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 특히 타카이치 전 장관은 과거 "한국이 기어오른다"는 망언을 내놓은 인물로 아베 전 총리의 극우적 성향을 계승한 '여자 아베'로 평가된다. 그는 총리로 선출돼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겠다고 시사한 바 있다. 이 대통령으로선 대일외교가 난관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시바 전 총리와의 두 차례 회담에선 강제징용·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가 직접적으로 거론되진 않았다. '셔틀 외교' 복원에 주안점을 준 탓에 과거사 문제 논의보단 방향성에 대한 '철학적 인식'을 나눴다는 것이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양국에서 민감한 반응이 나올 만한 사안에 대한 논의는 피한 것인데, 한미 회담을 겨냥한 전략적 방문이었던 만큼 이 대통령의 실용 외교가 엿보인 지점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첫술에 배부르려 하면 체할 수 있다. 조금만 시간을 주면 과거사·영토 문제에서 가시적 성과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한일 관계에 강경 노선을 펼칠 가능성이 있는 차기 일본 총리를 상대로 과거사 문제를 덮은 채 '경제·안보·기후·국민교류' 등 협력만 기댈 경우, 국민 반감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의 유연성이 얼마나 발휘될지 주목하고 있다.
순풍이 불던 미국과의 관계도 갑작스런 '조지아주 한국인 구금' 사태로 전환기를 맞고 있다. 돌발 행동으로 협상 상대방을 압박해 이득을 얻어내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 대통령을 몰아세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한일 정상회담을 통한 '한미일 공조' 기조와 이 대통령의 소위 '칭찬의 기술'이 통하면서 우호 관계는 강화됐다. 그러나 정상회담과 대규모 투자 약속이 끝난 지 2주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이민 단속 작전으로 350여명의 한국인 노동자가 구금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매번 바뀌는 입장은 우리 정부를 당혹스럽게 했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현지시간) "이민세관단속국이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7일에는 "우리는 한국과 매우 좋은 관계"라면서 비자 문제 해결 의지를 드러냈다. 예측하기 어려운 행보에 이 대통령은 우선 미국을 향한 항의보단 '재발 방지' 요청 수준에 머물렀다. 다만 정치권에선 이번 사태가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은 한미 관세협상에서 미국이 우위를 점하기 위한 물밑 신경전으로 보고 있다.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구금 사태가 관세 협상의 연장선에 있는 무언의 압박이란 분석이 있다"며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았고 향후 후속 협상을 앞두고도 국민 안전이 인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국 측의 약속이 있기 전까지 공장 건설을 잠정 중단하고 비자 쿼터 E4 신설 등 해법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권 관계자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실리 외교 측면에서 한미 동맹은 우선해야 하고 여전히 한미일 동맹도 유효한 만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사감에도 불구하고 한미 동맹은 거부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며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미일 협력을 통해 어떻게 푸는지가 국익과 맞아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 불편함이 있어도 적절한 균형감을 가지고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는 '불확실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당장 이날 미국 이민당국에 구금된 우리 국민을 전세기로 데려오는 것으로 이번 사태가 일단락될 줄 알았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출발이 취소되면서 외교부가 협의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이외에도 국방비(국방 예산) 증액과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어느 수준으로 미국이 요구할지다. 구체적인 한미 협상은 진행되고 있지 않지만, 미국이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조지아주 사태'와 비슷한 압박에 나설 가능성도 현재로선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이 불확실성을 해소할 방안으로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를 통한 새로운 '한미일 공조'가 꼽히고 있다. 다만 근본적인 문제점인 '트럼프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은 한 우선 '균형 외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창환 장안대 특임교수는 "이민자 단속 문제는 한국의 투자 여부를 떠나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른 감당 안 되는 불이다"라면서 "특별 비자를 내주더라도 그만큼 원하는 바가 있을 수 있기때문에 우리도 일본처럼 끌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한미일 관계에 정답은 없고,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쓸 수 있는 지렛대를 최대한 활용해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한미 관계 문제의 시작점은 트럼프 대통령이기 때문에 현재 추세가 지속되는 한 근본적인 불안정성은 유지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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