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가전이 저가공세라고 하지만 사실상 이미 기술력도 넘어선 것으로 내부에선 보죠. 오죽하면 중국 회사 출신 임원을 모셔와야 되느냐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세트 산업이 어려우니 부품 산업은 일어서기가 어렵죠.",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 줄 아세요? 우린 주52시간으로 인해 사실상 경쟁이 어려운 상태에요"
업계 안팎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이다. 산업 현장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수치보다도 생생하다. 가전, 디스플레이, 반도체, 자동차 등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주력 산업이 글로벌 수요 둔화와 AI·친환경 전환 투자 압박으로 흔들리는 와중에, 주52시간제와 노란봉투법 같은 제도적 부담까지 겹쳤다.
‘혁신’을 외치지만 정작 현장은 규제의 족쇄에 묶여 제 속도를 내지 못하는 형국이다. 메모리 업황 부진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노조와 성과급을 두고 줄다리기를 벌이고, LG전자는 TV 부문 적자에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온다. 현대차 노조는 7년 만에 파업을 선언했다. 이 상황에서 기업을 둘러싼 제도적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경쟁을 포기하란 말이냐”는 푸념이 현장에서 흘러나온다.
비교는 늘 중국이다. 현지 업체들은 자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내수를 키우고, 이를 발판 삼아 글로벌 시장을 파고든다. 인건비는 절반 수준, 노동 유연성도 한국과 비교할 수 없다. "밤 10시에 장비 미팅을 해도 엔지니어들이 대기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 사이 한국 기업들은 규제에 묶여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투자 부담과 관세 장벽에까지 시달린다. 시장은 좁을 수 있지만, 기업 역량만큼은 세계 정상급이었던 한국이 스스로를 소국으로 만드는 꼴이다.
주52시간제 개편 논란과 노란봉투법 통과는 현장에 직접적인 파장을 낳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파업에 들어갔고, 삼성·SK 노조도 성과급 제도 개편을 요구하며 경영진을 압박하고 있다. 기업은 투자와 고용 확대 대신 눈앞의 방어전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내몰리고 있다.
기업을 옥죄는 제도와 갈수록 거세지는 글로벌 경쟁, 이 사이에서 한국 산업은 거대한 몸집을 가졌음에도 발이 묶인 거인처럼 위태롭다. ‘혁신’이라는 구호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지금 필요한 건 선언이 아니라, 산업 현장의 속도와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현실적 대책이다.
물론 노동권 보장은 시대적 요구다. 하지만 균형이 무너진 제도는 산업의 체력을 갉아먹는다. 법과 제도가 현장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혁신’이라는 구호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것이다. 한국 산업의 경쟁력이 무너진 뒤 후회해선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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