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달아오르는 中 증시의 ‘불편한 진실’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입력 2025.09.21 07:07  수정 2025.09.22 05:45

中 증시, 1년 동안 무려 1172포인트(43%) 이상 치솟아

美 관세완화·부동산 침체에 따른 ‘자금이동’ 등이 호재

산업 생산·소비·투자 등 실물 경제지표 쇼크 수준 하락

지표 쇼크로 상승 지속에 의심 생겨 ‘증시 위기’ 올 수도


스콧 베선트(오른쪽) 미국 재무부 장관과 허리펑 중국 부총리가 지난 14일 스페인 마드리드 외무부 청사에서 4차 고위급 무역협상을 벌이기에 앞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 신화/연합뉴스

중국 증시가 연일 불타오르고 있다. 실물 경제지표가 줄줄이 ‘쇼크’ 수준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데도 중국 증시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강한 오름세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는 모양새다.


상하이(上海) 종합지수가 1년 동안 무려 1172(43.35%) 이상 급등하는 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19조 달러(약 2경 6000조원) 규모의 중국 증시가 외국인 투자자들을 유혹하고 있다고 영국 로이터통신 등이 지난 17일 보도했다. 지난해 9월 2700선에 머물렀던 상하이 종합지수는 줄곧 강력한 상승세를 타며 3500선을 위협하는 등 오름세에 탄력이 붙었다가 4월7일 미국의 ‘관세폭탄’을 맞는 바람에 3000선까지 맥없이 고꾸라졌다.


이후 미·중 간 4차례에 걸친 고위급 무역협상이 진전함에 따라 대미 관세 리스크가 대폭 완화된 덕분에 이날 3876.34로 거래를 마치며 2015년 8월7일(3744.20) 이후 10년여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선전(深圳)종합지수도 이날 2510.52까지 올라 52주 신고가를 기록하는 등 꾸준히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중국 증시의 급등세는 대미(對美) 관세 리스크 완화가 가장 큰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이 4월 초 상호관세를 발표할 당시만 해도 중국이 고율관세 표적이었지만 관세부과가 두 차례 유예되면서 부담이 대폭 감소됐다는 것이다. 미·중은 미국이 지난 2월 처음으로 대중 추가 관세를 부과한 뒤 서로 보복에 보복을 주고받으며 버티는 바람에 중국의 대미 관세율은 한때 145%까지 치솟았다.


이후 두 나라는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1차 고위급 무역협상을 갖고 각각 관세율을 115%포인트씩 인하하기로 합의했다. 115%포인트 중 4월에 매겨진 91%포인트는 취소하고 24%포인트는 적용을 90일 유예하면서 관세 리스크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2019년 6월13일 중국 베이징의 한 증권사 객장에서 투자자들이 시황판 앞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 EPA/연합뉴스

여기에다 중국 정부가 소비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로 풍부해진 ‘돈줄’도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중국에서는 부동산 시장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갈 곳을 잃은 투자자금이 주식시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부동산과 예금에서 주식시장으로 이동하는 ‘머니무브’(자금이동) 현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 금융정보 제공업체 둥팡차이푸(東方財富)에 따르면 8월 가계예금은 1100억 위안(약 21조 4500억원) 증가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00억 위안 감소했다. 8월 비은행 예금은 1조 1800억 위안 증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500억 위안 더 늘었다.


앞서 7월에도 가계예금은 1조 1100억 위안 감소했으며 비은행 예금은 2조 1400억 위안 증가했다. 7~8월 두 달간 중국 가계예금은 1조 위안 줄어든 반면 비은행 예금은 무려 3조 3200억 위안 늘어난 것이다. 비은행 예금은 투자자 예탁금과 은행 재테크상품 매수금액을 포함해 투자자들의 주식 투자자금으로 해석된다.


중국 정부가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에 대응해 인공지능(AI) 반도체 자립을 선언하며 대규모 지원책을 내놓은 데다 첨단산업의 과잉생산 및 출혈경쟁 완화를 위해 대규모 감산과 구조조정 정책(공급측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상승 요인에서 빼놓을 수 있다.


이 덕분에 중국 증시는 추가 상승할 여력도 충분하다고 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내다봤다. ‘개미’(개인투자자)들이 증시로 눈을 돌리고 있는 데다 ‘부추’(중국판 개미)들이 정기예·적금을 모조리 깨서 ‘불나방’처럼 주식시장에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가계 저축액은 무려 23조 달러에 달한다. 이같이 막대한 자금이 증시에 밀물처럼 밀려들면 중국 증시는 더욱 뜨거워질 것이라고 골드만삭스는 전망했다.


2020년 4월8일 중국 중부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둥펑혼다 자동차 생산공장의 자동차 조립 라인에서 근로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 AP/뉴시스

케빈 스니더 골드만삭스 아시아·태평양 지역 담당 사장은 블룸버그통신에 “중국 경제는 여전히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중국 주식시장은 분명히 깨어나고 있다”며 “추가 랠리에 대비해 홍콩의 인력을 충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증시의 경제 펀더멘털(기초 경제여건) 개선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주가의 상승이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어렵다는 회의론도 고개를 든다. 7월 이후 미국의 관세 영향이 본격화하면서 실물 경기가 급랭하고 있는 탓이다. 경기둔화 우려가 커지며 중국 정부가 목표로 제시한 올 5% 안팎 성장이 위태롭다는 부정적인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두 달 동안 중국의 생산·소비·투자 등 실물 경제지표는 줄줄이 시장 전망치를 밑돌며 ‘트리플 쇼크’를 기록했다. 제조업 활력 지표인 생산자물가지수(PPI)가 마이너스로 떨어진지 오래됐다. 디플레이션(물가하락) 우려까지 제기되는 펀더멘털에서는 주가가 오를수록 지속 가능성에 의심이 생겨 결국 붕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8월 산업생산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5.2% 증가하는 데 그쳐 시장 전망치(5.7%)에 못 미쳤다. 지난해 8월(4.5%) 후 1년 만의 최저치다. 산업생산 증가폭은 지난 3월(7.7%) 이후 계속 둔화하고 있다. 내수 경기의 가늠자로 꼽히는 8월 소매판매도 전년 같은 기간보다 3.4% 늘어 시장 전망치(3.8%)와 전달 증가폭(3.7%)보다 낮았다. 지난해 11월(3%) 후 가장 낮다.


올해 1~8월(누적) 고정자산 투자도 전년 동기보다 0.5% 증가해 시장 전망치(1.5%)와 1~7월 고정자산 투자 증가폭(1.6%)을 크게 밑돌았다. 고정자산 투자는 공장과 도로, 전력망 등에 대한 투자를 뜻한다. 고정자산 투자는 올해 3월 4.2%에서 5월 3.7%, 6월 2.8%, 7월 1.6%로 빠르게 위축되더니 8월에는 0%대로 주저앉았다. 중국 정부가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자를 일정 부분 제한하면서 고정자산 투자가 위축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 자료: 중국 상하이증권거래소

물가는 하락하는 추세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2~5월 마이너스를 기록하다가 6월 0.1%로 상승했지만 7월 0%에 이어 8월 -0.4%로 다시 하락세로 전환했다. 경기 침체 속에 물가 하락이 지속되는 디플레이션 압력이 커졌다는 말이다. 지난달 25세 미만 청년 실업률도 18.9%로 집계돼 중국 정부가 새 기준을 적용해 발표를 시작한 2023년 12월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중국 경기의 가늠자 역할을 하는 부동산 투자는 침체 수준을 넘어 수렁에 빠진 모습이다. 올해 1~8월 부동산 개발 투자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12.9% 급락했다. 3000억 달러에 달하는 빚더미를 감당하지 못해 시장에서 퇴출되며 부동산 위기를 촉발한 2021년 ‘헝다(恒大) 사태’ 이후 최악의 성적표다.


린 쑹 네덜란드 은행 ING 이코노미스트는 "연초의 강한 출발 덕에 올해 성장목표는 여전히 달성 가능 범위에 있지만 올해를 강력히 마무리하려면 추가 경기부양책이 필요할 수 있다"며 "9월 시행될 대출보조금의 영향을 가늠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전반적으로 (경제가) 둔화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더 많은 정책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장에선 중국 정부가 보는 것보다 경기 상황을 더 심각하게 보고 있다. 7월 경기지표가 올해 들어 최악을 나타냈는데 8월에 개선되기는커녕 더 나빠졌기 때문이다. 8월 수출액도 1년 전보다 4.4% 늘어나는 데 그쳐 시장 전망치(5.0%)와 7월 수출 증가율(7.2%)을 밑돌았다.


ⓒ 자료: 중국 국가통계국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1·2위를 다투던 헝다 파산 사태 이후 장기화하는 부동산 침체가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는 데다 소비 위축과 기업실적 전망 악화로 고용시장까지 흔들린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내수 침체, 미국과의 관세전쟁에 따른 역풍, 장기적인 부동산 침체가 주요 경제지표에 영향을 미쳤다”며 “8월 중국 경제가 침체 조짐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미국과의 관세전쟁과 국내 경기 침체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 소매판매와 산업생산량이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다”며 “중국 경제에 전반적인 침체 양상이 나타난다”고 진단했다. 시장에서는 중국이 금리 인하 등 통화정책은 물론 재정을 투입하는 경기 부양책 카드를 내놓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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