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더 견고해진 ‘노트르담 드 파리’, 시대 관통하는 명작의 힘 [D:헬로스테이지]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5.09.22 08:32  수정 2025.09.22 08:32

9월 2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때는 서기 1482년, 욕망과 사랑의 이야기…”


음유시인 그랭구와르의 ‘대성당의 시대’(Le Temps des Cathédrales)를 선포하는 순간 객석이 압도된다. 한국어 가사로 익숙했던 멜로디 위로 프랑스어 특유의 유려한 음률과 시적인 뉘앙스가 얹히자, 노래는 단순한 가사 전달을 넘어 하나의 장엄한 시가 된다. 배우들의 발음 하나하나에 실린 언어의 질감은 원작이 가진 고유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한다.


ⓒ마스트인터내셔널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성스루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2005년 초연 당시 30회 공연으로만 8만 관객을 동원해 세종문화회관 역대 최단 기간, 최다 관객을 기록한 바 있다. 이후 누적 관객을 167만명을 넘어섰다. 그리고 지난 3일, 한국 투어 20주년을 맞아 프렌치 오리지널 팀이 다시 세종문화회관을 찾았다. 이번 공연은 단순한 재공연을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된 작품의 근원을 직접 마주하는 순례와도 같다.


지난 20년간 수많은 배우들이 거쳐 가며 한국의 ‘노트르담 드 파리'를 만들어왔지만, 그 모든 역사의 시작점에는 바로 이 오리지널 무대가 있었다. 특히 프롤로 주교 역으로 무대에 선 다니엘 라부아는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역사다.


1998년 프랑스 초연 당시부터 프롤로를 연기해 온 그의 깊은 눈빛과 목소리에는 20여 년의 세월 동안 캐릭터와 함께 쌓아 올린 고뇌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의 무대는 단순히 한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을 넘어, 작품의 탄생과 성장을 지켜본 거장과의 조우라는 경외심마저 불러일으킨다.


ⓒ마스트인터내셔널

작품의 생명력은 단지 감미로운 음악과 화려한 볼거리에만 있지 않다. 빅토르 위고의 원작이 그러했듯, 이 작품은 15세기 파리의 혼란한 사회상을 배경으로 인간의 숙명, 사랑과 질투, 신앙과 욕망, 사회적 편견과 정의 등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주제들을 끊임없이 질문한다.


추악한 외모 뒤에 가장 순수한 사랑을 간직한 콰지모도,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하지만 끝내 운명의 희생양이 되는 에스메랄다는 사회가 규정한 아름다음과 추함에 대한 기준과 맹목적인 신념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성직자의 신분과 인간적 욕망 사이에서 파멸해가는 프롤로의 모습은 인간 내면의 선과 악, 이성과 본능의 영원한 갈등을 상징하며 관객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무대 위를 끊임없이 뒹굴고 기어오르는 무용수들은 당대 사회의 이방인이자 소외계층이었던 이들을 형상화하며, 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마주한 난민, 이주민, 소수자 문제와도 맞닿아 깊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고뇌를 다시금 성찰하게 하는 무대는, 20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더욱 견고해진 명작의 가치를 증명한다. 공연이 끝난 이후 긴 시간 동안 이어진 기립박수와 작품의 메시지를 관통하는 ’대성당의 시대‘를 떼창하는 진풍경도 펼쳐진다. 공연은 9월 2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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