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디즈니+ 드라마 '북극성'에 출연한 전지현이 곤욕을 치렀다. 중국에서 논란이 터졌기 때문이다. '북극성' 4회에서 전지현이 연기한 유엔대사 출신 대통령 후보 서문주가 “중국은 왜 전쟁을 선호할까요. 핵폭탄이 접경지대에 떨어질 수도 있는데”라고 말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여기에 중국 누리꾼들이 강력히 반발했다.
"중국의 이미지에 오명을 씌웠다",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 "중국인은 전쟁을 좋아하지 않으며 평화를 추구한다. 이건 중상모략", 이런 식의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중국 매체 차이나닷컴은 “이는 중국을 침략을 즐기는 국가로, 이웃 국가들을 피해자로 묘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극중에서 중국 다롄이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홍콩의 낡은 판자촌으로 보인다는 비난도 나왔다. 다롄은 발전된 도시인데도 드라마가 낙후된 곳으로 찍어 도시 이미지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또 바닥에 깔린 카펫에 별 이미지가 있었는데 그게 중국을 상징하는 별처럼 보인다는 지적이나, 전지현이 중국 고대 시인 이백(李白·이태백·701~762)의 시구를 읊으며 발음을 이상하게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마디로 중국의 이미지를 왜곡하고 폄하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중국 최대 SNS 웨이보 등에선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을 풀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심지어 전지현을 중국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전지현이 광고하는 상품의 불매 사태가 벌어졌고 그러자 일부 브랜드에서 전지현을 내세운 중국내 광고 게시물을 삭제했다고 알려졌다. 또 예정됐던 중국 의류 브랜드 광고 촬영도 취소됐다고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전지현의 소속사는 "전지현 배우의 중국 광고들이 취소됐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광고 촬영은 다른 사유 때문에 연기됐다는 것이다.
전지현이 업계에서 정말 실질적으로 불이익을 당했는지는 불분명한데, 그것과 별개로 중국 누리꾼들에게 비난의 표적이 된 것만큼은 사실로 보인다. 중국 매체 차이나닷컴도 전지현을 비판했다.
우리도 해외 작품이 한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면 반발하고 비판한다. 과거 ‘어벤져스’에 서울이 나왔을 때, 발전된 모습이 아닌 뒷골목의 어두운 풍경이 등장했다는 비판이 제기됐었다.
그런 식으로 비판은 할 수 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그 칼끝이 특정 배우에게 향하는 일은 없다. 대사와 상황 설정은 감독과 작가 등 제작진의 몫이다. 작품이 마음에 안 든다고 배우의 머리채를 잡는 것은 너무 과도하다. 이런 것을 대국의 태도라고 할 수 있을까?
보통 약한 나라가 다른 나라 작품의 묘사에 민감하다. 특히 강대국이 약소국을 부정적으로 그리면 비판이 쏟아진다. 반면에 작은 나라 콘텐츠에서 강대국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가 나와도 보통은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과거 천만 영화 ‘괴물’에서 미국이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등 우리나라 콘텐츠에서 미국에 대한 안 좋은 시각이 그려질 때가 있었다. 그렇다고 미국인들이 분노해서 불매운동에 나서지 않는다. 만약 미국과 같은 대국이 다른 나라 콘텐츠의 표현 하나하나를 문제 삼으면서 불매운동 같은 것으로 겁박한다면 다른 나라들이 매우 위협감을 느낄 것이다.
당연히 미국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데, 일부 중국인들은 엄청난 강대국이면서도 타국 콘텐츠 속 표현 하나하나를 다 문제 삼으며 매우 공격적으로 반응한다. 일반적인 대국의 태도가 아니다. 예를 들어, 다른 나라 콘텐츠에서 성조기를 연상케 하는 별 이미지가 바닥에 있다거나 자국 빈민가 풍경이 비쳤다고 미국인들이 분노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중국은 자신들이 세계 제일의 대국이라면서 중화제국의 위세를 복원하려고 하지만 지금처럼 타국에 너그러움이 없는 태도로 일관한다면 대국의 위상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일부 중국 누리꾼들이 중국의 영광을 인정하라고 윽박지르지만 그럴수록 거꾸로 중국의 위세만 깎일 뿐이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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