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서버 신·증설이 메모리반도체 호황을 이끌고 있다
D램 등 범용제품에서 역대급 가격상승으로 업체들의 영업이익 증가
메모리에 치우친 슈퍼사이클이므로 불황을 대비한 노력 게을리 말아야
반도체, 특히 메모리반도체는 주기적으로 시장 상황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올라갈 때 너무 자만하지 않으면서 불황을 대비하고, 내려갈 때 지나치게 비관하지 말고 내실을 다져야 한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 2018년 이후 7년 만에 ‘슈퍼사이클(Super Cycle·강력하고 지속적인 호황 국면)’이 왔다고 난리다. 우리나라의 9월 반도체 수출은 작년 9월보다 22% 증가한 166억1000만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물론, 관련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의 주가도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대부분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슈퍼사이클이 2027년, 길게는 2030년까지 간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동안 ‘반도체 겨울이 온다’면서 까칠한 리포트를 자주 내던 모건스탠리도 돌아섰다. 모건스탠리는 지난 9월 21일 발간한 ‘메모리 슈퍼사이클’ 보고서에서 반도체산업 투자 의견을 ‘시장평균’에서 ‘매력적’으로 상향했다.
이번 슈퍼사이클의 배경은 간단하다. AI(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데이터센터의 서버 등에서 메모리반도체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거기에 걸맞은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세계 빅테크들은 지금 경쟁적으로 AI 데이터센터를 신설 또는 증설하고 있다. 특히 AI 데이터에 대한 초점이 ‘학습’에서 ‘추론’으로 넘어가면서 더욱 방대한 처리 용량이 필요한 상태다. 그래서 고부가제품인 HBM(고대역폭메모리)은 물론이고, 전통적인 범용(汎用) 제품인 D램과 관련 저장장치까지 온기가 확산되고 있다. AI 덕분에 반도체산업 전체가 들썩거리고 있다.
D램의 고정거래 가격은 사상 처음으로 6개월 연속 두 자릿수 상승세를 이어 갔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제품(DDR4 8Gb 1Gx8)의 9월 평균 고정거래 가격은 8월보다 10.53% 오른 6.30달러를 기록했다. DDR4 고정거래 가격이 6달러를 넘어선 것은 2019년 1월 이후 6년 8개월 만이다. 데이터센터 등에 탑재되는 서버용 DDR5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주요 메모리 업체들이 구형 제품인 DDR4 공급을 줄였는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가격상승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지난해부터 재고를 줄이기 위해 DDR4 등 구형 제품 생산을 단계적으로 축소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3분기 말 세계 D램 제조업체들의 평균 재고는 3.3주 분량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라고 밝혔다. 2018년 슈퍼사이클 당시의 평균 재고 3~4주 분량 수준과 비슷하다. 통상적으로 평균 재고는 6~8주 분량 안팎이다. 재고가 적어진다는 말은 그만큼 가격상승의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트렌드포스는 “3분기 PC용 D램 모듈 가격은 2분기보다 8~13% 상승했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재고 감소 - 공급 축소- AI 수요 확대’로 이어지는 프로세스가 일시적이고 반짝하는 회복이 아니라 구조적인 상승으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여 삼성전자는 최근 고객사에게 4분기 D램 가격을 최대 30%, 낸드플래시는 10% 올리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다른 업체들도 삼성전자를 뒤따를 전망이다.
그동안 ‘미운 오리새끼’ 취급받던 삼성전자 반도체는 요즘 얼굴빛이 환해졌다. 2분기 4000억원에 불과했던 DS(반도체)부문 영업이익은 3분기에 6조 1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골칫거리였던 파운드리 사업의 적자가 2분기 2조원 대에서 3분기에는 1조원 이하로 크게 감소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퀄컴이 모바일용 칩셋 등을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맡기면서 회사 측은 크게 고무되었다. HBM 출하량도 직전 분기보다 2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추정되고, 범용 메모리 평균판매가격(ASP)도 직전 분기보다 10% 안팎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2027년까지 반도체 수급 개선은 지속되며, 메모리 신규 공급은 평택 P5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가동이 본격화되는 2028년부터 가능할 것”이라며 “범용 메모리에 대한 수요가 기존 AI 중심에서 일반서버, 그래픽, 모바일 등 메모리 전 분야로 확대되면서 내년부터 범용 D램은 공급부족과 가격상승으로 HBM과 수익성 격차가 좁혀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이미 엔비디아와 HBM으로 맺어진 친분을 HBM4로 계속 발전시켜 나가면서 사상 최대 수익을 기대하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의 3분기 영업이익이 11조3000억원으로 시장 컨센서스(10조7000억원)을 훨씬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아무리 슈퍼사이클이 온다 해도 늘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우선 트럼프의 반도체 관세 부과에 대해서는 업계가 크게 우려하지 않는 분위기이긴 하다. 슈퍼사이클 시기에 D램 등의 공급부족으로 가격이 오르는 상황인데 여기에 반도체 관세까지 더해지면 미국 빅테크들은 더 어려운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산업연구원 김양팽 선임연구원은 “반도체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반도체를 구매하는 미국 기업들에게 전가되기 때문에 미국에 도움 되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반도체 관세가 계속 거론되지만, 실제 부과는 함부로 못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게다가 AI 패권을 두고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격화되는데 관세를 부과하면 그냥 중국만 좋아질 상황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트럼프가 반도체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 고민이다.
또 과거에 슈퍼사이클이 끝난 직후 과잉 공급이 초래한 수급 불균형으로 심각한 ‘반도체의 겨울’을 겪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이번에도 큰 변수가 없는 한, 슈퍼사이클이 끝나면 다시 고난의 시기가 닥치리라는 걸 경험에서 알고 있다. 실제 지난번 슈퍼사이클이 끝날 무렵인 2018년부터 글로벌 업체들이 증산(增産)에 나서면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급락했다. 고정거래든 현물시장이든 가격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그러면서 고통의 시간이 다가왔고, 특히 HBM 대비가 소홀했던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보다 더 심각한 아픔을 겪었다.
이와 함께 지금 미국 일각에서 나오는 ‘AI 거품론’의 주장처럼 AI에 대한 수요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면 큰 문제다. 미국 월가(街)에서 재점화되고 있는 ‘AI 거품론’의 경우, 미국 엔비디아가 오픈 AI에 최대 10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지만, 내용을 보면 엔비디아가 자금을 대고 오픈 AI는 그 돈으로 다시 엔비디아 칩을 구매하는 이른바 ‘벤더 파이낸싱’ 형태를 띤다는 지적이 대표적 사례다. 만일 여기에 글로벌 경기둔화가 시작된다면 글로벌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짓고 있는 데이터센터에 대한 투자도 위축될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의 반도체 기술력 격차가 줄어드는 점도 고민이다. 한국 업체들이 주도했던 낸드플래시는 미국 마이크론, 중국 YMTC 등의 추격으로 기술 격차가 크게 줄었다. D램에서는 만년 3위였던 미국 마이크론이 회로선폭(回路線幅)을 대폭 줄인 10㎚(나노미터)급 6세대 D램(1c)을 SK하이닉스에 이어 개발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미국과 중국 업체들은 차세대 HBM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최근 “미국과 중국 간 반도체 부문 격차가 ‘몇 나노 초(10억분의 몇 초)’에 불과하다”고 말한 바 있다. 중국은 CXMT(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 등을 앞세워 내년이면 HBM3E를 양산하겠다고 분기탱천(憤氣撐天)하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HBM3E에 대한 ‘퀄(품질)’ 인증을 통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진짜 문제는 6세대 고부가제품인 HBM4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의 연결 고리’를 제대로 자르고 진입할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2분기 전세계 HBM 시장점유율(출하량 기준)을 보면, 삼성전자는 17%로 21%를 기록한 마이크론에도 뒤졌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쪽에서 테슬라로부터 대형 수주를 하긴 했으나, 대만 TSMC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어 속을 태우고 있다. 슈퍼사이클이 자칫 메모리반도체 쪽에만 치중되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모두가 “슈퍼사이클이 왔다”고 외칠 때, 업체들은 방만한 경영을 조심하면서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과연 슈퍼사이클이 얼마나 지속될지, 이 기간에 큰 수익이 나서 재무구조가 호전된다면 꼭 필요한 설비투자나 구조조정은 무엇인지 차근차근 체크할 필요가 있다. 기업인들은 호황 때나 불황 때나 늘 긴장하면서 사는 운명이다.
글/ 최홍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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