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틸법 처리 지연…통상 압박 속 철강업계 ‘속수무책’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입력 2025.09.29 12:13  수정 2025.09.29 14:14

미 고율 관세·파생 제품 확대 조치로 피해 본격화

정부, 대응 나섰지만 국회 문턱에 막힌 ‘K-스틸법’

업계 “단기 처방으론 역부족...제도적 대안 시급”

미국의 철강 관세 고유관세로 국내 철강업계의 피해가 본격화한 가운데 업계가 제도적 대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미국발 고율 관세와 저가 수입재 공세로 국내 철강업계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정부 지원책은 속속 나오고 있지만 중장기 경쟁력 강화를 위한 ‘K-스틸법’은 국회 문턱에서 발이 묶여 있다. 업계는 단기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며 제도적 대안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이 철강 관세를 50%까지 높이고 이를 파생제품까지 확대하면서 국내 철강업계의 수출길이 막히고 있다. 단기적으로 수익성 악화와 가동률 하락을 겪고 있는 가운데 중소 철강사와 협력업체, 지역경제 전반까지 파장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1~8월 대미 철강 수출액은 25억2214만 달러(약 3조5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6% 감소했다. 전체 철강 수출액 감소율(6.8%)의 두 배를 넘어서는 수치다.


정부는 긴급 대응에 나섰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3일부터 통상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중국산 열연강판에 최대 33.57%의 잠정 덤핑 방지 관세를 부과했다. 내년 1월 22일까지 4개월간 부과할 예정이다. 이는 지난해 12월 현대제철이 저가 수입재로 인한 시장 왜곡을 문제 삼아 제소한 데 따른 조치다.


이와 함께 산업부는 철강사와 금융권, 정책금융기관이 함께 4000억원 규모의 보증상품을 신설해 업계 유동성을 보완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시장 왜곡 완화나 단기 자금 지원 효과는 있더라도 실질적인 경쟁력 확보와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철강업계가 기대를 거는 것은 ‘K-스틸법(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기술 전환을 위한 특별법안)’이다. 해당 법안은 ▲산업 구조 재편 ▲수요 기반 확충 ▲녹색 철강기술 개발·전환 지원 ▲규제 혁신 등을 골자로 한다.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5년 단위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조항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여야가 공동 발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쟁으로 정기국회 통과가 지연되고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둘러싼 여야 갈등과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 국면 속에서 K-스틸법도 처리 동력이 떨어진 상태다.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한 수정안'이 가결되고 있다.ⓒ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포항상공회의소는 지난 24일 임시의원총회에서 K-스틸법의 조속한 통과와 한시적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 등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포항상의는 철강산업 위기가 지역산업과 일자리, 상권 전반의 침체로 이어지고 있다며 정부와 국회의 적극적 대응을 촉구했다.


해외 분석기관도 K-스틸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 철강정보업체 마이스틸(Mysteel) 분석에 따르면 K-스틸법이 통과될 경우 한국의 철강 수입 규제가 강화되면서 중국산 철강 수출에 타격이 예상된다.


중국은 지난해 한국에 819만톤의 철강을 수출했는데 이 중 열연강판(161만톤)과 후판(147만톤)이 전체의 33.7%를 차지한다. 마이스틸은 만약 평균 30%의 반덤핑 관세율이 유지될 경우 중국산 중후판 가격 경쟁력이 하락하면서 수출이 80만톤 이하로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베트남도 최근 중국산 열연에 대해 최대 27.83%의 반덤핑 임시 관세를 부과하면서 이러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차원에서 중국 철강에 대한 견제가 강화되는 추세가 한국 철강업계에도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박성봉 하나증권 연구원은 “K-스틸법의 핵심은 한국의 철강 수입 통제를 강화하는 것인데 중국산 철강에 대한 반덤핑 조치를 보완하는 측면이 크다”면서 “최근 베트남 또한 중국산 열연에 대해 반덤핑 임시 관세를 부과한 상황으로, 마이스틸은 이런 추세가 다른 국가들까지로 확산되면서 중국 수출 감소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업계에선 법안 처리가 늦어질 경우 통상 압박과 구조적 위기 속에서 정책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덤핑 관세나 금융 지원으로 단기 처방을 내놓고 있지만 글로벌 공급 과잉과 고율 관세, 전방 산업 부진까지 겹친 구조적 위기를 풀기엔 역부족”이라며 “중장기 산업 경쟁력을 위한 법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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