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에 노조 상대 손배 철회?…산업계, '친노동 정부' 눈치보기 심화

고수정 기자 (ko0726@dailian.co.kr)

입력 2025.10.03 06:00  수정 2025.10.03 06:00

'노란봉투법 시초' 쌍용차 손배소, 16년 만에 종결

KG모빌리티, 노동조합에 손배 40억 집행 않기로

與 압박에 현대차·현대제철도 취하한 바 있어

경기도 평택시 KG모빌리티 정문 ⓒ뉴시스

내년 3월 10일 효력이 발생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의 영향일까. 산업계 전반에서 노동조합을 상대로 제기했던 손해배상 소송을 철회하거나 집행을 중단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기업이 선제적으로 부담을 줄이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KG모빌리티(옛 쌍용자동차)가 2009년 회사의 정리해고에 반대해 옥쇄파업을 벌인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에 대한 손해배상 채권 40억원을 집행하지 않기로 했다. 황기영 KG모빌리티 대표는 부집행확약서에서 "KG모빌리티 주식회사는 금속노조를 상대방으로 한 대법원 2025다20손해배상 사건과 관련된 손해배상채권을 집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손해배상은 쌍용차 노조가 2009년 당시 77일간 공장 점거 파업을 벌인 데 따른 것이다. 쌍용차 노조는 파업을 벌이면서 공장을 불법적으로 점검하고 폭력을 행사했다. 비노조원 근로자의 공장 출입을 막고, 사측의 공장 진입 시도는 쇠파이프와 새총, 지게차 등을 동원해 막았다. 공장 방화도 시도했다.


이에 대법원은 지난 5월 총 20억922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노조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지연손해금(18억원)까지 약 40억원에 달했다.


이 사건은 지난 8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내년 3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노란봉투법' 제정의 발단이 됐다. '노란봉투법은 하도급 노동자에 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고 쟁의행위 범위를 넓히는 것을 골자로 한다. 특히 사용자 범위를 근로 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 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의 자로 확대해 원청의 하청과의 노사 교섭 의무를 규정했다.


경제계에서는 수백개의 하청업체 노조가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면 극단적으로 1년 내내 교섭을 할 수 있고, '파업 공화국'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해왔다.


노란봉투법의 시초 쌍용차 손배소가 16년 만에 마침표를 찍자 KG모빌리티 측은 "노란봉투법과 무관한 대승적 차원의 결정"이라고 강조했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노란봉투법과 맞물린 조치라는 해석이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내년 3월부터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파업 관련 손해배상 청구 자체가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기업 입장에서도 법 취지와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해 굳이 채권을 끝까지 집행하기보다는 부담을 덜고 노사관계를 재정비하는 쪽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실제 노란봉투법 입법 전후로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소송을 철회하는 움직임이 확산됐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8월 21일 2010·2013·2023년 파업에 참여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제기한 3억6800만원 상당의 손배소 3건을 취하했다.


현대제철도 같은 달 2021년 파업을 벌인 비정규직 461명을 상대로 제기했던 46억대 손배소를 취하했다. 두 기업 모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노란봉투법 강행 처리를 앞두고 소송 취하 압박을 받은 바 있다. CJ대한통운과 제일제당 역시 같은 달 택배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24억원 상당의 손배소 2건을 취하했다.


민주노총은 KG모빌리티 손배소 종결에 입장문을 내고 "이번 합의는 '손해배상 보복의 시대를 이제 끝내야 한다'는 이정표"라며 "현대차, 현대제철, 한화오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등 손배 청구를 유지하고 있는 기업들은 이제 대승적인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 끝까지 소송을 이어가더라도 실익이 크지 않고 사회적 비난만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며 "기업들의 자발적 소송 철회 움직임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불가피하게 내려진 결정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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