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 촬영소의 기억을 품고 새 문화 공간으로 [공간을 기억하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10.10 14:13  수정 2025.10.10 14:19

[작은 영화관 탐방기㉗]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

1960년대 한국 영화 산업의 심장부였던 답십리종합촬영소의 자리에 다시 불이 켜졌다.


홍상수 감독의 부모인 홍의선·전옥숙 대표가 사재를 들여 세운 이곳은, 1964년부터 5년간 약 80편의 영화를 탄생시킨 국내 최초의 민간 종합촬영소였다. 김진규·김보애 주연의 '부부전쟁'을 시작으로 '이수일과 심순애' '청사초롱' 등이 이 스튜디오에서 제작되며 1960년대 한국 영화 전성기를 이끌었다.


ⓒ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 제공

그 유산 위에 세워진 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는 동대문구가 2019년부터 추진한 '영화의 거리 조성 사업'의 결실로, 2022년 6월 문을 열었다. 이곳은 촬영소의 역사적 상징성을 보존함과 동시에 영화·미디어 교육과 제작, 전시, 상영을 아우르는 복합문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1960년대 영화계는 아직 시스템이 자리 잡지 못해 제작 여건이 열악했지만, 김성희 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장은 이곳만큼은 달랐다고 소개했다.


"그 시절에는 영화 촬영 환경이 열악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제작사가 세트를 빌려 쓰거나 야외 촬영에 의존했죠. 하지만 이곳은 민간이 자체 세트장을 만들어 약국, 만화방, 샤워시설까지 갖춘, 말 그대로 영화인들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촬영소 사거리' '촬영소 고개'라는 지명이 남아 있습니다."


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는 단순히 옛 촬영소의 흔적을 복원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과거 영화의 터전을 계승해, 지금은 창작과 교육, 관람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1층은 상설전시와 기획전시, 77석 규모의 상영관과 휴게 카페로 구성되어 있으며, 2층에는 영화 세트와 가상 스튜디오가 마련돼 실제 촬영이 가능하다.


3층은 인문·영화 관련 도서를 열람하거나 공연과 포럼을 열 수 있는 스페이스 라운지, 1인 미디어실과 라디오 스튜디오 등 미디어 전문 교육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지하에는 편집실과 녹음실, 교육장이 갖춰져 있어 영화 제작의 전 과정을 한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다.


공간에 맞춰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 제작, 연기, 폴리사운드(소리 제작) 교육뿐 아니라 시니어 배우반, AI 활용 자막 제작, 로블록스 코딩 같은 트렌디한 프로그램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개방형 구조는 시민이 영화와 미디어를 일상의 언어로 체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수업료는 대부분 2만 원 내외로, 사설 학원의 10분의 1 수준이에요. 동대문구민은 20%, 장애인은 50% 할인됩니다. 하지만 저렴하다고 내용이 약한 건 아니에요. 강사 대부분은 현업 전문가들이고, 매년 새로운 트렌드에 맞춰 강사 풀을 갱신하고 있습니다. 센터의 가장 큰 특징은 영화·미디어·예술 교육이 한곳에서 가능한 원스톱 구조라는 점이에요. 대부분의 기관이 미디어 센터나 상영관, 혹은 아트센터 중 하나의 기능만 하지만 우리는 그 세 가지를 모두 아우르고 있습니다."


ⓒ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 제공

상영 프로그램은 지역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는 상시 상영을 통해 주민들이 언제든 영화를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매일 오후 2시에 무료 영화를 상영하고, 한 달에 두세 차례는 인디서울과 협력해 독립영화 상영과 GV도 진행합니다. 주민들은 물론이고, 멀리 천안이나 김포, 고천 청소년센터에서도 단체로 상영과 더불어 교육을 위해 오기도 하죠."


평일 낮에는 가까운 지역의 어르신들이, 주말이면 아이 손을 잡은 가족들이 찾아와 자리를 채운다.


"특히 평일에는 시니어 관객들이, 주말에는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습니다. 영화를 보기 어렵거나 접하기 힘든 분들에게 이곳이 작은 영화관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관 3년 차를 맞은 지금, 센터는 지역의 대표 문화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김 센터장은 답십리 일대에 영화·미디어에 특화된 복합 예술 공간이 많지 않은 만큼, 주민들에게는 특별한 공간으로 느껴질 때면 기쁨을 느낀다.


"'동대문구에도 이런 문화공간이 있었냐'는 반응을 가장 많이 들어요. 영화·미디어에 특화된 복합 예술공간이 이 구에는 드물었기 때문에 주민들의 자부심도 큽니다."


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가 하반기 세대별 특화 프로그램을 이어간다. 10월부터는 영화·미디어 산업의 현장을 배우는 '영화 미디어 백스테이지' 특강 시리즈가, 11월에는 청년 세대를 위한 '미디어 포럼'이 열린다. 이어 10월부터 12월까지는 '키즈 클래식 영화음악 공연'이 세 차례 진행되며, 12월에는 가족이 함께 즐기는 '키즈 데이·패밀리 데이'가 마련된다.


"시즌이 바뀔 때마다 커리큘럼을 완전히 새로 짜요. 기존 프로그램과 한번도 겹치게 만든 적이 없어요. 청년부터 시니어까지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했으니 다들 많이 와주셨으면 해요."


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는 과거와 현재의 다리 역할을 하며 새로운 세대의 예술가들이 성장하는 발판이 되고자 한다.


“과거 답십리 촬영소의 역사를 보존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세대의 창작자들을 키워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실제로 이곳에서 영화나 미디어 수업을 들은 청소년들이 단편영화를 제작해 출품하기도 했고, 시니어분들은 배우나 모델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결국 이곳은 세대와 경험을 아우르는 인큐베이터이자 플랫폼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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