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묶인 금산분리, AI·반도체 성장 명분으로 다시 부상
산업자본·금융자본 협력 허용폭 확대 논의 본격화
이재명 대통령이 AI·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대해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금융과 산업계는 규제 완화가 어디까지 가능할지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금융계는 그간 ‘이자장사’라는 정치권의 질타에서 벗어나 기업 투자로의 길이 열릴 수 있을지 주목하고, 산업계는 자금 조달에 새로운 길이 열리길 기대하고 있다.
12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금산분리의 핵심은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규제 완화다. 대기업이 직접 펀드를 운용하는 기업 펀드 운용사(GP) 허용 등도 거론되고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일반지주회사는 금융 자회사를 둘 수 없으나, 2021년부터 제한적으로 허용됐다. 100% 자회사 형태로 지주사 산하 CVC를 만들고, 투자 재원은 외부에서 최대 40%까지만 조달할 수 있게 했다.
이 조달 비중 제한 폭을 풀어 자금 운용을 더 폭넓게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1982년 도입된 금산분리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서로의 지분을 일정기준 이상 보유할 수 없게 한 규제다. 과거 대기업이 금융기관을 사들여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데 금융자본을 활용하는 등 ‘사금고’로 전락할 우려가 제기돼 도입됐다.
이 규제에 따라 산업자본은 은행 지분을 4%만 보유 가능하며, 은행도 비금융 분야 기업의 자본을 15%이상 소유할 수 없다. 금융지주회사는 비금융회사 지분을 5% 이상 보유할 수 없다.
산업계 성장과 투자 활성화 필요성을 이유로 규제 완화 논의가 계속돼 왔지만 번번히 ‘재벌 사금고’ 논란으로 인해 무산됐다.
하지만 지난 1일 이 대통령은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를 만난 직후 AI와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필요한 대규모 투자 재원 마련을 강조하면서 ‘금산분리 규제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고 언급해 해당 논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독점 폐해를 차단할 안전장치를 전제로 금산분리 완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금산분리로 우려되는 지점은 최소화하고, 이익만 극대화할 방안을 마련하라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이번에 금융당국에서 12월에 출범을 준비하고 있는 150조 ‘국민성장펀드’의 메가 프로젝트도 AI나 반도체 등 중요 전략산업에 함께 투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산업계에선 규제 완화 시 해당 산업군에 전문성을 가진 대기업이 GP 역할을 맡아 선도 유망한 벤처기업을 골라 자본을 투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융권도 그간 정치권으로부터 ‘이자장사’, ‘이자놀이’ 등에 매몰돼 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 자본력을 기업 투자 쪽으로 선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산분리 규제 완화의 범위가 어디까지 가능할지 주목하고 있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산업 동향을 가장 잘 아는 것은 결국 기업이기 때문에 금산분리 규제 완화가 국민성장펀드를 포함한 AI 성장 투자에 미치는 효과를 상당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은행권 관계자는 “금산분리 규정이 워낙 오래된 법이다 보니 급진적으로 규제 완화가 진전되기 어렵다. 사실 그간 규제 완화 시도가 몇차례 있었으나 실제 시행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며 “30년 넘은 법률이다보니 규제 완화 시 파급효과를 쉽게 예상하기 어려워 굉장히 보수적인 관점으로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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