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온실가스 감축목표, 신차 전부 전기차로 팔아야
미래차 특별법 만들고 전기차 전환 '급가속'?
제조사 뿐 아니라 중소·중견 부품업체까지 줄영향
車 종사자 150만명 시대, 고용안정 우선돼야
"우리가 제일 많이 알고 있는데… 미팅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수치가 어떻게 나왔을까, 그게 지금 가장 궁금합니다."
지난 13일 자동차 부품산업계 기자회견에서 만난 이택성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생각도 못했던 대답을 내놨다. 정부가 최근 제시한 '2035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국내 부품업체를 대표하는 곳에서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오는 2035년 수송부문에서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률과 무공해차 보급대수 목표치를 최소 48%(840만대)에서 65%(980만대)까지 4개 안으로 나눠 제시한 바 있다. 퍼센티지가 높을수록 2035년까지 감축해야 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구조다.
쉽게 설명하면, 자동차 분야에서 현재보다 온실 가스를 48% 감축하기 위해서는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모두 제외하고 전기차·수소차 등 '무공해차'를 향후 10년간 840만대 보급해야한다는 의미다. 가장 높은 수준의 목표안인 65%를 감축하려면 무려 980만대를 보급해야한다.
문제는 한국의 누적 전기차 등록대수가 올해 8월 기준 82만여대에 그친다는 점이다. 지난 2020년 10만대를 돌파한 이후 5년 만에 80만대를 겨우 넘어섰다. 업계에서 바라보는 2035년 현실적인 목표치는 550만~650만대다. 48% 감축안의 턱끝도 닿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한 셈이다.
가뜩이나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차 인기가 치솟고 있는 판에 정부가 내놓은 목표치가 가장 당혹스러운 건 업계 종사자들이다. 제조사들은 팔리지도 않는 전기차를 수십배는 더 팔아야하고, 내연기관 부품 개발에 매진해온 부품업체들은 하루아침에 전기차 부품을 뚝딱 생산해야하는 처지에 놓였다.
기존 감축안을 밀어붙이겠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내연기관차를 팔아 낸 수익으로 전기차와 미래 기술에 투자하던 제조사들은 어쩌면 전기차마저 팔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지 모른다. 국내 완성차 업체에 내연기관 부품을 납품하며 버텨온 1만여개의 중소, 중견 부품업체들은 생존조차 장담하기 어렵다.
정부가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의 미래차 전환 속도가 너무 늦다며 '미래차 특별법(미래자동차 부품산업의 전환 촉진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을 통과시킨 것이 불과 2년이 채 안됐다. 작년 7월부터 정식으로 시행돼 예산 확보와 구체적인 지원책 마련에 돌입한 상태다.
당시 여야는 전기차, 수소차 등 미래차로 자동차 산업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국내 자동차 부품사가 자금·기술·정보 부족 등의 사유로 미래차 전환 계획을 전혀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뜻을 모았다.
국내 자동차 산업계는 미래차 특별법과 NDC 감축목표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살라는 걸까, 죽으라는 걸까. 적어도 내연기관차를 당장 팔지 말아야할 정도의 급진적인 전기차 보급목표를 내놓으려면 이 법안이 잘 정착돼 국내 부품업계의 숨통이 트일 때까지는 기다려줘야하는 것이 아닐까.
정부의 목표는 더이상 미래차를 향한 진취적 자세라고만 바라보기 어렵다. 업계 현장의 목소리 한 번 듣지 않고, 10년 사이 760만대의 전기차를 보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얻은 것일까. 근거 없는 과욕은 언제나 씻을 수 없는 흠집을 동반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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