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캐릭터 ‘다나카’로 인기를 끈 개그맨 김경욱이 중국 음원 업체에 의해 자신이 발표한 곡 ‘잘자요 아가씨’에 대한 음원 도용 피해를 봤다고 밝혔다. 이를 계기로 K-콘텐츠 저작권 보호 시스템의 심각한 허점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저작권 침해 해프닝이 아니라, 글로벌 플랫폼의 구조적 허점을 노린 조직적인 ‘음원 훔치기’ 시도로 읽힌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중국 업체가 원곡을 무단으로 편곡한 뒤, 이를 마치 새로운 창작물인 것처럼 메타(인스타그램) 등 글로벌 플랫폼에 신규 음원으로 등록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원저작자의 권리를 사실상 강탈하는 방식을 사용한 것이 확인됐다. 이는 케이팝의 글로벌 확산이라는 성과 뒤에 가려진 저작권 보호 체계의 민낯을 드러낸 사례다.
‘다나카 사태’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이를 글로벌 플랫폼의 허술한 음원 관리 시스템을 악용한 조직적 범죄로 보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음원 훔치기’ 피해는 김경욱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중국 음반사들이 유튜브에 이승철의 ‘서쪽 하늘’, 아이유의 ‘아침 눈물’, 지오디(god)의 ‘길’, 프리스타일의 ‘와이(Y)’, 토이의 ‘좋은 사람’, 다비치의 ‘난 너에게’, 브라운아이즈의 ‘벌써 일 년’, 윤하의 ‘기다리다’ 등 국내 다수 음원을 무단으로 변형해 원곡으로 등록한 점이 확인됐다.
이러한 신종 저작권 도용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등 숏폼 플랫폼의 허술한 음원 등록 및 검증 시스템이 지목된다. 숏폼 콘텐츠는 그 특성상 수많은 음원이 빠르게 등록되고 소비된다. 플랫폼들은 이 방대한 양의 음원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자동화된 검증 시스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문제는 이 자동화 시스템이 원곡과 도용 음원을 정교하게 구별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도용 업체들의 간단한 무단 편곡만으로도, 자동화 시스템은 이를 별다른 제재 없이 신규 창작물로 등록 처리한다. 플랫폼은 저작권 식별 기술(Content ID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 역시 등록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도용 업체가 원저작자보다 먼저 변형된 음원을 등록해버리면, 시스템은 오히려 도용 음원을 ‘원본’으로 오인하는 심각한 오류를 일으킨다.
시스템의 허점으로 인한 2차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가장 역설적인 상황은 원저작자가 오히려 저작권 침해 경고를 받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플랫폼의 자동화 시스템이 불법적으로 선점 등록된 도용 음원을 ‘정당한 권리자’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 경우, 원저작자가 자신의 원곡을 사용하여 릴스나 쇼츠 영상을 제작해 업로드하면, 플랫폼은 이 원저작자에게 저작권 침해 경고를 발송하게 된다. 원저작자가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는커녕, 불법 도용자에게 저작권 침해자로 몰리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원저작자의 창작 활동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원곡 사용으로 발생하는 광고 수익 등이 도용 업체에게 부당하게 돌아가는 금전적 피해로까지 이어진다.
케이팝의 세계적 위상과 달리, 이를 보호할 저작권 시스템은 매우 미흡하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최근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K-콘텐츠의 글로벌 영향력에 비해 저작권 보호 체계가 부실하다는 비판이 나온 바 있다.
신종 저작권 도용 실태가 명확히 드러난 만큼, 이에 대한 면밀한 사례 분석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책임 강화, 원저작자 식별 및 권리 보호를 위한 보다 정교한 기술적·정책적 보완책 마련, 음원 등록 시 원저작자임을 증명하는 절차 강화, 저작권 분쟁 발생 시 원저작자의 이의제기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시스템 구축 등도 필요하다.
플랫폼의 자정 노력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정부 차원의 실효성 있는 대응 방안 모색도 절실하다. K-콘텐츠가 핵심 수출 동력으로 자리 잡은 만큼, 해외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저작권 침해 문제에 대해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법적, 외교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아무리 한중 저작권 등록 방식에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원작자의 승인 없이 저작물을 리메이크하는 건 엄연한 도둑질”이라며 “케이팝이 전 세계에 더 널리 알려지려면 이런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우리 정부 부처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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