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450원대 재돌파…원재료값 급등
식량 위기 불확실…인건비 물류비도 부담
“버티기 돌입”…내년 식품가격 도미노 인상 우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자체 브랜드 제품(PB)과자가 판매되고 있다.ⓒ뉴시스
원·달러 환율이 최근 다시 1460원대를 돌파하며 ‘환율 공포’를 부추기고 있는 가운데, 식품업계를중심으로 비상이 걸렸다. 가뜩이나 경기침체 여파와 동시에 원부자재 가격이 폭등한 상황에서 원화 약세가 지속될 경우 기업 부담이 더욱 커지며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11일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5.0원 오른 1456.4원에 개장했다. 이후 오름세를 이어가며 1460원을 넘어섰다.
역대 최장인 40일째 이어지고 있는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부 기능정지)이 조만간 종료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위험 회피 심리가 약해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달러화 가치가 급등할 시, 식품의 경우 같은 양의 원재료를 사도 지불 원화금액이 더 커진다.
환율 상승에 식품업계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더욱 그렇다. 달러-원 환율이 상승하면 곡물 등 수입 비용이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식품의 경우 필수적인 밀, 대두, 옥수수 등의 곡물 매입 가격이 높아진다.
통상 식품업계는 3개월 미리 원·부자재를 비축해두기 때문에 상반기는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원부자재 비용 부담은 갈수록 커지게 된다. 기업들은 수입 원자재 구매 타이밍을 늦추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식량 위기 불확실성에 대응하기엔 부족하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우리나라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토가 한정적이라 공급량이 한 없이 부족한 데다, 기업들이 제품에 바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상품성이 뒷받침돼지 못한다는 이유 등이 장벽으로 작용한다.
특히 인건비, 물류비 등이 모두 치솟은 상황이란 점에서 어깨가 더욱 무겁다. 관계자에 따르면 구매 시기를 늦춰도 환율이 지속적으로 오르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 원자재를 들여와야 한다는 점에서 우려가 더욱 깊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환율과 곡물 가격이 오를 때를 대비해 대금을 선지급하는 방식도 활용하고 있고 현재로서는 환율상승의 피해가 막대하지는 않다”면서도 “업계 특성상 원자재를 구입 후 장기 보관할 수 없어 환율 급등 시기에 원가 압박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내년 상반기 안엔 식품 가격 도미노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분석된다. 사료용 곡물 수입 단가 상승은 돼지고기를 비롯해 닭고기, 소고기 등의 가격 인상 요인이 될 수 있다. 육류 가격 상승은 또 다시 햄·소시지 등 가공식품 가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들이 과자 등을 고르고 있다.ⓒ뉴시스
대한제분과 CJ제일제당, 삼양사 등 밀가루 제조사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국내 제분업계는 밀가루 주원료가 되는 소맥을 미국과 호주에서 구매하는데 최근 국제 밀 가격과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며 구입비 부담이 크게 늘고 있다.
밀가루를 많이 사용하는 과자, 빵, 라면 등 주요 가공 식품을 생산하는 식품기업들의 부담 역시 말도 못할 지경이다. 이들 업체들은 3개월 이상 재고분을 확보했기 때문에 단기 영향은 거의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지만 최근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특히 카카오 가격도 지속 상승세다. 카카오가 지난해 말, 올초와 비교해 최고점 대비 하락했지만, 여전히 3년 전의 세 배 정도로 높은 수준이라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업계에서는 병충해에 걸린 나무가 많아 이를 제거하고 새로운 묘목을 심어야 하는 데다 기후 리스크(위험)도 여전해 코코아 가격이 몇 년 전 수준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제과업계 관계자는 “주요 원재료인 카카오 시세가 내려가긴 했지만, 여전히 부담이 남아 있다”며 “평소 톤당 2000달러 수준이던 가격이 지난해 말~올 초에는 1만2000달러까지 치솟았다가, 현재는 6000달러대에서 형성돼 있다”며 “연초와 비교하면 부담이 완화된 건 사실이지만, 환율이 높게 유지돼 체감상 여전히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초 고점 구간에서 원료를 들여온 탓에 실제 비용 부담은 컸다”며 “그래도 카카오 가격이 추세적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향후엔 조금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 때문에 업계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물가상승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서민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소비재라는 점을 의식한 탓이다. 여론의 싸늘한 반응은 물론, 정부의 눈치로 인해 추가 인상도 쉽지 않다는 반응이다.
특히 정부의 압박으로 인해 당분간은 기업들이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정부가 ‘생활물가 안정 대책’의 일환으로 주요 식품·외식 브랜드의 가격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는 데다,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사실상 가격 동결을 유도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기획재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슈링크플레이션(내용량 축소형 물가)’ 문제까지 들여다보겠다고 밝히며 업계 긴장감이 높아졌다. 소비자 체감 물가를 왜곡할 수 있는 행위로 판단될 경우 제재나 공개 경고 조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가격을 상향 조정하고 싶어도 최근 반값 제품들이 주목을 받고 있는 데다, 정부가 물가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조정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면서 “기업들도 원가 부담을 오래 버티진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