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혀둔 M&A 엔진 다시 켠 삼성, 반도체 너머 새 대들보 세운다 [리셋 삼성④]

임채현 기자 (hyun0796@dailian.co.kr)

입력 2025.11.17 06:00  수정 2025.11.17 06:00

8년 만에 사업지원TF → '사업지원실' 승격… 본격 M&A 가동

하만 이후 8년… 글로벌 유망 기술 기업 '사냥' 다시 시작

AI·바이오·로봇·헬스·공조... 비(非)반도체 성장축 확장 사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전기 필리핀법인을 찾아 제품 생산현장을 점검하는 모습. ⓒ삼성전자

삼성이 '포스트 반도체' 전략의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최근 사업지원TF를 8년 만에 '사업지원실'로 격상시키고, 동시에 그 안에 인수·합병(M&A) 전담 조직까지 신설했다. 이는 단순한 조직 개편을 넘어, 이재용 회장이 직접 미래 성장판의 질서를 다시 짜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읽히는 대목이다.


업계에서는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10년 만에 완전히 해소된 시점, 그리고 AI·헬스·모빌리티 등으로 산업질서가 재편되는 전환기가 맞물린 결과로 보고 있다. 즉, 이번 개편은 단순한 정비가 아니라 '지금이 적기'라는 판단이 작용한 전략적 행위로 추측된다. 삼성이 반도체 단일 성장 모델을 넘어, 미래 10년의 큰 판을 짜는 첫 신호라는 평가다.

M&A 전담조직 신설… 8년 만에 다시 적극 뛰어든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새롭게 출범한 사업지원실은 기존 전략팀·경영진단팀·피플팀에 그룹 M&A 기능을 더하며 사실상 차세대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는다. 삼성은 2016년 전장기업 하만을 약 9조3000억 원에 인수한 이후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로 인해 사실상 대형 M&A를 중단해왔지만, 올해 들어 대형 인수·투자 재개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올해에만 하만의 미국 마시모 오디오 사업(약 5000억 원), 독일 공조기업 플랙트그룹(약 2조4000억 원), 미국 디지털 헬스 플랫폼 젤스(Xealth), 미국 암 조기진단 기업 그레일(Grail) 투자 등 굵직한 딜이 연이어 발표됐다. 수년간의 반도체 부진을 털고 회복세를 되찾은 만큼, 비(非)반도체 성장판을 적극적으로 확장하겠다는 이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AI부터 헬스·로봇·HVAC까지… 로드맵 본격화

삼성의 미래 전략은 크게 AI·헬스케어·바이오·로봇·HVAC(공조)로 다각화되고 있다. 이 가운데 AI 분야에서는 메모리·파운드리를 기반으로 AI 인프라·데이터센터·차세대 컴퓨팅 아키텍처까지 외연을 확장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고성능 패키지·후공정 기술 확보에 주력하면서 테슬라·애플 등 주요 고객사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오픈AI와의 AI 인프라 협력 논의도 지속되고 있다.


헬스는 이 회장 체제 이후 가장 빠르게 비중이 커진 분야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웨어러블 기반 건강관리 플랫폼에서 병원·보험·기업을 연결하는 젤스의 의료 데이터 통합 플랫폼으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 여기에 그레일 투자를 통해 AI 기반 조기진단 기술을 선제 확보하며 ‘헬스케어 밸류체인’을 구축하는 중이다. 자회사 삼성메디슨은 AI 기반 초음파 솔루션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글로벌 의료기기 투자 역시 확대되고 있다.


아울러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 확대로 본격적인 로봇 플랫폼 구축에도 착수했다. 삼성전자는 그룹 기술 역량인 AI, 센서, 배터리, 반도체 등을 결합해 가정용·산업용 로봇 모두를 겨냥한 로봇 생태계 확보에 나서고 있다. 전장사업은 하만 중심의 디지털 콕핏·IVI·오디오 솔루션 고도화를 비롯해 삼성SDI 배터리, 삼성디스플레이 차량용 OLED 공급 확대 등 계열사 전체가 유기적으로 확장 중이다.


HVAC(공조·빌딩) 분야도 데이터센터 시장의 폭발적 성장과 맞물리며 핵심 성장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플랙트그룹 인수는 단순한 공조 사업 확장이 아니라, 데이터센터·스마트빌딩 등 글로벌 시장에서 급증하는 고효율 공조 솔루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포석이다. 이는 시스템에어컨·냉난방 기술에 플랙트의 유럽 사업 인프라를 결합해 건물·산업·데이터센터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 공조 플랫폼’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회장과 레이 쥔 샤오미 회장이 올해 초 샤오미 전기차 공장에서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중국 샤오미 웨이보 캡처
글로벌 현장경영과 맞물린 '뉴삼성' 청사진

이 회장의 잇단 해외 행보도 전략 재편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 중국·일본·미국을 잇달아 방문하며 반도체 장비·완성차·테크·바이오 기업 CEO들과 연쇄 회동을 진행했고, APEC 등 글로벌 다자무대에도 꾸준히 참석하며 글로벌 공급망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삼성은 2인자 교체와 M&A팀 신설로 조직 구조를 정비하면서 사실상 ‘뉴삼성’ 로드맵을 공식화한 상태다.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 컨퍼런스콜에서 "AI·로봇·공조·메디테크 등 신성장 분야의 기술 리더십 확보를 위해 M&A 후보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미래는 여전히 반도체가 중심이지만, 이재용 체제에서는 반도체를 넘어 로봇·헬스케어·HVAC·전장 등이 결합한 차세대 제조 플랫폼 기업으로의 전환이 본격화될 것"이라며 "사업지원실 승격과 M&A 조직 신설은 이를 실행하기 위한 조직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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