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까지 참전한 '론스타 치적' 공방…전·현 정부 신경전 이유는

김주훈 기자 (jhkim@dailian.co.kr)

입력 2025.11.21 00:05  수정 2025.11.21 00:05

'尹 지우기·한동훈 견제' 의도 담긴 듯

김민석, 정쟁화 조짐에 논란 진화 총력

"코미디 아니냐"…정치권 '자중' 목소리

김민석 국무총리(가운데)가 지난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론스타국제투자분쟁(ISDS) 취소 신청'과 관련해 긴급 브리핑하고 있다. 김 총리 오른쪽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벌인 국제 투자 분쟁 소송에서 13년 만에 최종적으로 승소했다. 배상금 지급 의무에서 벗어난 것을 떠나, 외국계 사모펀드의 부당한 소송에서 승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그러다 보니 여야는 물론 대통령실까지 모두 치적을 가로채기 위한 신경전이 과열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공방 이면에는 여권의 전임 정부 견제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20일 페이스북을 통해 "언제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을 만나면 취소신청 잘했다고 말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론스타와의 외환은행 매각 관련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취소 신청 사건에서 승소했지만, 취소 신청을 주도한 한 전 장관의 "숟가락 얹으려 하지 말라"라는 반발을 시작으로 여당과 충돌하자 진화에 나선 것이다.


이 사건은 론스타가 지난 2012년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금융당국이 고의로 승인을 지연시켰다며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총 46억8000만 달러(약 6조원) 규모의 배상금을 물어줘야 하는 초유의 사태였지만, 이보다도 우리 정부의 금융 감독 주권을 침해당했다는 점에서 국가 위상이 달린 문제로 평가됐다.


그러나 2022년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중재판정부는 론스타 측 주장을 일부 수용했고, 한국 정부가 2억1650억 달러와 2011년 12월 3일부터 완제일까지 한 달 만기 미국 국채 금리에 따른 이자를 배상하라고 판정한 것이다. 사실상 우리 정부의 패배였고 거액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지만, 당시 법무부를 이끌던 한 전 장관은 "내부적 판단으론 충분히 우리에게 승산이 있다"며 정치권 우려에도 불구하고 취소 신청을 제기했다.


문제는 여당이 이번 '론스타 승소'를 온전히 이재명 정부 성과로 내세우면서 갈등의 불씨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승소 결과를 발표한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향후 논란을 예상한 듯 "일각에선 새 정부 출범 전부터 된 것 아니냐고 말하겠지만, 어느 정부의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지난해 12·3 내란 이후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부재한 상황에서 법무부 국제법무국장 등 직원이 혼신의 힘을 다한 성과가 모여 좋은 결과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론스타 승소' 문제가 정쟁화로 치달을 조짐을 보이자, 김 총리와 정 장관은 진화에 나섰다. 야권을 중심으로 "여당이 성과를 훔쳤다"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여당은 "한 전 장관은 재판에 참여하지도 않지 않았느냐"라고 맞받아치면서 충돌했기 때문이다. 이에 김 총리는 여야를 향해 "어떤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이유 삼아 한쪽을 다 매도할 필요도 없고, 의례적 검찰 항소처럼 취소신청한 것 외에 뭐가 있냐 폄하할 필요도 없다"며 "정치적으로 시비할 일이 아니다"라고 당부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론스타 승소'를 두고 신경전이 벌어지는 배경엔 단순히 국제 분쟁에서 승리했다는 의미 외에도 국가 자존심을 지킨 상징성을 지녔다는 평가를 지녔기 때문이다. 정부·여당 입장에선 한미 관세 합의를 비롯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성공 개최, 중일 관계 발전 등 경제·외교에서 성과가 두드러진 상황에서 미국계 사모펀드를 상대로 '금융 감독 주권'까지 지켰다는 성과까지 더해진다면 정부 위상이 높아질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보니 여야는 어느 정부 공적인지를 두고 이틀 동안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당시 윤석열 정부의 항소 결정을 두고 민주당이 승소 가능성이 작고 결국 국고만 소비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며 '경제라인 책임론'을 제기했음에도 이재명 정부 성과라고 평가하는 것은 "황당함을 넘어 '철없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반면 민주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 국면까지 정부가 정지된 상황에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구두 변론이 진행됐는데, 지난 9월 17일 구두 변론이 종결된 만큼 재판 막바지 핵심 역할을 한 것은 이재명 정부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한 전 장관 발언을 맞받아쳐 "숟가락 얹고 있는 것은 한 전 장관"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건태 민주당 의원은 이날 YTN라디오 '더인터뷰'에 출연해 "한 전 장관이 법무부 장관을 그만둔 이후 소송이 본격화된 것은 2024년이며, 올해 윤석열 정부가 사실상 정지된 상태에서 구두 변론이 시작된 것"이라면서 "지난 9월 구두 변론이 종결됐고 재판 막바지가 제일 중요한 만큼, 6월부터는 민주당 정부의 역할이 컸다"고 말했다.


반면 대통령실은 승소 발표에 "정부는 지금까지 국가 차원의 대응 체계를 구성해 사건 대응에 최선을 다해왔다"고 밝혔다. '이재명 정부' 명칭을 사용하지도 탄핵 국면 당시 국정 공백 사태를 언급하지도 않았다. 온전히 이재명 정부 공으로 평가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에 따라 건조하게 입장을 밝힌 것으로 풀이됐다.


그러나 현재 대통령실 역시 '이재명 정부 치적 쌓기' 공방에 참전한 상황이다. 여야 신경전만으로 논란이 과열된 상황에서 대통령실까지 불을 지피자, 정치권 전방으로 확장된 '론스타 공방'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이규연 홍보소통수석은 전날 MBC라디오 '뉴스하이킥'에서 "국제 기구를 통해 승소한 것은 한국이 최초로 기념비적인 사건"이라면서 "탄핵심판 과정에 계속 벌어지던 혼란기에서 이재명 정부가 집권하기 전까지 (법무부가) 방향을 못 잡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우리가 들어와 추스르고 일괄적으로 관리해 범부처적인 공무원들이 모여 막아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여당의 '론스타 승소' 성과 강조를 두고 "국정자원관리원 화재는 윤석열 정부 탓, 집값 폭등도 윤석열 정부 탓이라고 하더니, 론스타 승소만 이재명 정부 덕이냐"라면서 "'잘 되면 내 탓, 잘못되면 남 탓'의 자세로는 국정을 온전히 이끌 수 없는 만큼, 국정을 책임지는 정부·여당이라면 '국정의 연속성'이라는 말의 의미를 보다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호남발전과제 보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정치권 일부에선 이번 '론스타 승소'를 둘러싼 공방 이면에 한 전 대표에 대한 견제와 '윤석열 정부 지우기' 의도가 포함됐다고 분석한다. 정부·여당 입장에선 특정 성과를 내세워 국민 지지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 성과가 '내란'으로 규정한 윤석열 정부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인정할 경우 '내란 프레임'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김현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브리핑을 통해 '론스타 승소'에 윤석열 정부가 일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이는 공직자의 성과이지 12·3 비상계엄을 일으킨 윤 전 대통령 공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김 원내대변인은 "론스타 승소는 흔들림 없이 국익만을 위해 일해 온 공직자들의 성과"라면서 "윤석열 내란에서 헌법이 아니라 정권의 눈치를 보며 침묵과 방조를 선택한 일부의 공직자가 있는데, 론스타 사건이 사명에 충실한 공직자가 나라를 지킨 사례라면 내란 사태는 권력에 충성했던 공직자들이 헌정질서 훼손에 동조한 사례"라고 꼬집었다.


정치권 일부에선 대통령실은 물론 여야가 '론스타 승소'를 두고 다투는 모습이 "코미디"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가적 성과임에도 정쟁화해 공방을 벌이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특정 정권이 잘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인데, 한마디로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누가 숟가락을 얹었다고 다툴 일이 아니고, 국민 관점으로 잘된 일이라면 모두 축하하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공동 대응할 것이 있다면 돕자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낫지 않느냐"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윤 전 대통령이나 한 전 장관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지만, '남 탓' 정치의 끝은 윤 전 대통령 탄핵 아니었느냐"라면서 "여야는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지니는 것이 중요하고, 민주당은 여당답게 여유를 가지고 대응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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