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온상승·적조에 흔들리는 김 양식산업
고령화 심화로 인력 수급난 지속 문제도
규제·시설 부담에 생산 여건 악화 ‘심각’
“등급제 부재로 낮은 부가가치 고착”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김을 구매하고 있다.ⓒ뉴시스
김 수출이 사상 첫 10억달러를 넘기며 K-푸드 핵심 품목으로 자리 굳혔지만, 생산 현장은 여전히 60대 어민들이 지탱하는 고령 산업에 머물고 있다.
해수온 상승 등 기후변화 리스크 마저 커지면서 학계에서는 “이 호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경고도 나온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올해 김 수출액은 지난 20일 기준 10억1500만달러(약 1조5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3.2% 증가했다.
미국과 일본 시장에서 각각 15.3%, 13.8% 늘며 수출 확대를 이끌었다. 품질 경쟁력 강화와 K-푸드 확산이 맞물린 결과라는 평가다.
글로벌 콘텐츠로 자리 잡은 우리나라 영화나 TV 예능 등에서 김이 자주 노출되며 세계인들에게 친숙한 음식으로 관심이 높아졌다. 김밥이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김’ 수출 증가를 견인했고, 국내 식품사들의 노력도 한 몫 거들었다.
하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정작 위기는 지금부터’라는 경고가 나온다.
해수온 상승과 해양 산성화가 김의 생장(生長) 환경을 바꾸고 병해충과 적조 피해 가능성이 커지는 등 양식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이에 해양환경 변화로 해조류 양식이 어려워질 수 있어 선제적으로 대응할 예측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연구가 제기되고 있다.
학계는 “해조류 양식업은 해양환경 변화에 취약하다”며 품종 전환, 생산지 조정, 병해 대응 기술과 모니터링 체계 강화가 필요하다고 바라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25년 10월 한국기후변화학회지에 실린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해조류 양식업의 위험 평가’ 논문은 “우리나라 연근해 수온 상승 속도가 전 세계 평균보다 빠르게 나타나고 있어 해조류 양식업이 상당한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김을 구매하고 있다.ⓒ뉴시스
김 양식어가에서는 노동력 부족 문제도 심상치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관계자에 따르면 코로나19 장기화와 어촌의 인구감소 및 고령화로 인력난을 겪고 있다. 과거에는 김 양식을 마을단위 품앗이로 진행됐던 반면, 현재는 어민들의 고령화로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불가한 상태다.
통계청 어가조사에 따르면 전체 어가(양식 포함) 경영주 평균 연령은 60대 후반에 이르며, 어가 인구의 절반 이상이 고령층으로 집계된다. 김 양식어가도 이러한 고령화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한 정부도 완도군, 진도군, 군산시 등을 해면양식 시범지역으로 선정해 외국인 계절근로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다만 시범지역 사례를 토대로 김 양식어가에 필요한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수급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지역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대안도 필요하다.
이와 함께 양식농가들을 중심으로 생산량 확대를 위해 김 산업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김 생산에 필요한 폐수정화시설, 세척용수공급시설 등 관련 인프라 투자도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양식농가들은 ‘폐수처리시설 의무 설치’ 규제를 가장 높은 장벽으로 꼽는다.
시중에 판매되는 마른김은 양식한 물김을 지하수 등의 민물로 깨끗이 세척한 뒤 말리는 가공과정을 거친다. 물김을 세척하는 과정에서 폐수가 발생하는데, 물환경보전법에서는 이를 정화할 처리시설을 반드시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업계 관게자는 “규제 필요성에는 현장도 공감하지만 영세 어가가 설치비와 운영비를 감당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며 “규제를 유지하되 시설 설치비 지원, 공동처리시설 확대, 절차 간소화 같은 현실적 대안에 대해 검토해야 지속 가능한 산업 구조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김 산업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선 정부 차원의 인프라 투자가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예컨대 개별 농가의 설치 부담을 덜기 위한 공공폐수처리시설이나 세척용수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급수시설 설치 등이다.
업계에서는 김의 부가가치를 끌어올릴 체계도 갖춰지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산 김은, 고무적인 수출 규모와 생산량 대비 제품의 부가가치가 다른 국가보다 현저히 낮은 편이다. 김 품질 등급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김은 김밥용, 스낵용 등 다양한데, 이런 제품 분류시 품질 등급에 따른 제품 세분화 기준이 부재하다.
국내 김은 여러 업체에서 대량으로 양식한 물김을 경매사로부터 구매한 후, 제품 분류시 일정한 등급없이 경매사 경험과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해 분류한다.
경쟁국인 일본이 반찬용 김과 초밥용 김, 간식용 김 등 종류를 세분화하고 품질 등급 관리에 힘을 쏟는 것과 대조적이다.
일본과 중국의 등급제는 김의 단백질 함량, 빛깔 등 김의 맛과 품질을 결정하는 기준에 따라 감별사가 점수를 매겨 등급을 부여한다.
일본은 마른김 상태의 김에 감별사가 측정한 등급을 붙여놓고 그 등급에 따른 가격으로 마른김을 구매하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바다에서 따온 원초 상태에서 오랫동안 김 사업을 지속해 온 업자들의 직관에 따라 경매가 이뤄진다.
원초를 상온에 내놓고 경매가 이뤄지다보니 경매를 하는 도중에 김의 품질이 떨어질 수 있고 이물이 혼입될 수도 있는 환경에 노출돼 있다.
일정한 등급에 따른 분류 기준이 없다 보니 해외에서 바이어가 와도 구체적으로 품질에 대해 입증하거나 설명할 방법 역시 부재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등급제의 여부에 대한 문제와 효과는 결국 김의 부가가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식품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를 전파하고, 일반화 시키기엔 어려운 점이 뒤따른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등급을 체계화시켜 공식화 한 것이 아닌 기업이 자체적으로 규정한 것이어서 바이어 입장에선 공신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수출은 계속 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인력난과 규제 부담, 품질 기준 부재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많다”며 “김 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하려면 양식부터 가공·수출까지 이어지는 체계를 정비하고, 정부도 인프라와 제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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