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 한 장면이 커리어를 뒤흔든다…친근함도 리스크가 된 아이돌 산업 [기자수첩 - 연예]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5.11.27 10:44  수정 2025.11.27 10:57

틱톡 챌린지, 라이브 방송 한 편이 아이돌 커리어의 방향을 바꾸는 시대다. 음악방송·예능처럼 편집과 검수를 거치던 전통적인 무대 대신 팬들의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콘텐츠가 일상이 되면서 아이돌을 둘러싼 논란의 양상도 함께 달라지고 있다.


ⓒ장동우 공식 인스타그램(왼쪽), 키키 베리즈 계정(오른쪽)

최근 보이그룹 엔시티드림 천러가 2세대 아이돌 인피니트 동우와 함께 한 춤 챌린지 영상으로 태도 논란에 휩싸였다. 영상 속에서 동우는 신곡 안무를 밝은 표정으로 소화하는 반면, 천러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과 힘 빠진 동작을 보여 엔시티드림과 인피니트 양쪽 팬 모두에게 실망감을 안긴 것은 물론, 대선배를 대하는 태도가 지나치게 무성의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스타쉽 소속 신인 걸그룹 키키도 말실수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달 29일 멤버 지유, 수이, 하음이 우동을 먹으며 라이브 방송을 하던 중 하음이 수이에게 "머리에 우동사리가 들어 있어요"라는 표현을 썼다. 지유는 "머리가 아니라 뱃속에 우동사리가 들어있다"라며 상황을 수습하려 했지만 하음은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 듯 "바보니까"라며 말을 이어가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번 사건들의 공통점은 모두 팬들과의 소통 플랫폼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천러의 논란은 선배와 함께한 챌린지 영상이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에 올라오면서 불거졌고, 하음의 비하성 발언은 베리즈 라이브 방송 도중 그대로 생중계됐다. 한때 아이돌의 주 무대가 음악방송과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 스튜디오였다면 이제는 틱톡과 위버스, 베리즈, 버블, 플러스챗 등 팬과 직접 소통하는 플랫폼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이들 플랫폼의 특징은 편집되지 않은 순간이 콘텐츠가 된다는 점이다. 짧은 챌린지 영상, 실시간 라이브, 1:1 채팅 형식의 소통은 아이돌과 팬 사이 거리를 좁히는 데는 최적화돼 있지만 동시에 말과 표정 하나까지 그대로 기록·전파되는 구조를 만든다. 예능 녹화처럼 제작진이 위험한 발언을 잘라내거나 방송 전에 콘셉트와 멘트를 조율하는 과정이 거의 없다 보니 사적인 농담과 피곤한 표정, 장난 섞인 말투가 그대로 공론장으로 유출된다.


엔하이픈 멤버 제이는 2023년 라이브 방송에서 한국사 공부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국사는 정보량이 많지 않다. 몇 주 훑어보면 빨리 끝난다. 단편소설 같다. 다른 나라들은 끝도 없는데 한국사는 발해 전에 한번 지나갔다가 삼국시대 돼서야 조금 있는 것 같다”고 발언했다. 제이는 미국 이중국적 멤버로 외국인 멤버가 뭘 아냐, 미국 역사가 더 짧다는 반응이 이어졌고 팬 커뮤니티를 통해 “이유가 어찌 됐든 팬 여러분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 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사과문을 올렸으나 '이유가 어찌 됐든'이라는 사과문의 문장을 두고 2차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이 밖에도 엔하이픈 리더 정원이 2021년 팬미팅을 앞두고 진행한 라이브 방송에서 "내일 오시는 분들 중 수능 보고 오신 분들도 있겠다. 수능 다음날이니 수능 잘 보고 나서 오시면 되겠다"는 다른 멤버에게 "수능 다음날 팬미팅 오시는 거면 잘 보시지 못하시지 않았겠냐"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이에 정원도 팬 커뮤니티에 "수험생 분들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지 못한 말에 대해 사과드린다"는 사과문을 올렸다. 르세라핌 홍은채는 2023년 라이브 방송 중 "한참 학교 다니시죠 여러분?"이라고 한 발언이 1년 뒤 화제가 돼 비난 여론이 거셌다. 이에 미니 4집 '크레이지'(CRAZY) 쇼케이스에서 "성숙하지 못한 모습으로 실망감을 드려 죄송하다. 스스로도 신중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아이돌의 친근함은 더 이상 장점이라고만 보기엔 무리가 있다. 팬 입장에서는 친구와 대화하듯 솔직하게 소통하는 느낌을 받지만 이 장면이 캡처돼 플랫폼 밖으로 퍼져나가는 순간, 그 친근함은 '프로 의식 부족'으로 읽히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논란의 속도와 규모가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는 점이다. 라이브 방송 중 나온 한 문장이 곧바로 커뮤니티와 SNS로 옮겨지고 30초 남짓 챌린지 영상 한 편이 여러 번 재가공돼 퍼지는, 플랫폼 시대 특유의 구조적 리스크다. 하음의 '우동사리' 발언 역시 다시보기 영상에는 편집됐지만 이미 라이브 당시 녹화한 사람들이 2차 가공해 X(구 트위터)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으로 퍼지며 뒤늦게 논란이 된 케이스다.


대형 기획사들을 중심으로 데뷔 전·후 연습생과 아티스트를 대상으로 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교육이 이뤄지고 있긴 하다. 라이브 방송에서 지양해야 할 표현과 팬 플랫폼에서의 기본 매너, 인터넷 밈을 사용할 때 생길 수 있는 오해, 혐오·비하 표현에 대한 사례 교육, 선후배·동료를 부를 때의 호칭과 농담 수위 등을 외부 강사나, 회사 직원들이 알려주는 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도·발언 논란이 끊이지 않는 건 몇 차례의 교육 만으로는 말투와 생활 습관, 팀 특유의 분위기를 완전히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연습실이나 대기실에서 쓰던 농담과 말투가 자연스럽게 라이브 방송으로 이어지는 순간, 머리로는 알고 있는 원칙보다 평소 몸에 밴 언어가 먼저 튀어나온다. 플랫폼 특성상 매뉴얼에 없는 상황이 쏟아지는 것도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실시간으로 노출되는 수많은 콘텐츠 속에서 어디까지를 개인의 개성과 솔직함으로 두고 어디부터는 회사와 팀이 함께 책임져야 할 영역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여전히 모호하다. 지금의 잦은 태도·발언 논란은 아이돌의 인성 문제라기보다는 이 모호한 경계 위에 서 있는 케이팝 산업 전체의 과제가 드러난 결과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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