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하정우, 어제는 앨런-오늘 채플린-내일은 다시 스콜세지 [홍종선의 감독탐구⑩]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입력 2025.12.09 17:45  수정 2025.12.09 17:45

영화 ‘윗집 사람들’의 감독이자 주연배우 하정우 ⓒ㈜바이포엠스튜디오

하정우는 언제부터 감독이 되고 싶었을까. 연기 하면서 연출도 한번 해봤다, 는 진즉에 넘어섰다.


첫 연출작 ‘롤러코스터’가 벌써 12년 전, 곧이어 두 번째 연출영화 ‘허삼관’(2015). 10년 숨을 고르더니 2025년 연달아 두 편의 연출작 ‘로비’와 ‘윗집 사람들’을 공개했다. 연출데뷔작을 제외하고 세 편의 영화에서는 허삼관, 윤창욱, 김범룡 역으로 주연도 겸했다.


4번째 연출작 ‘윗집 사람들’(감독 하정우, 제작 싸이더스·워크하우스컴퍼니㈜, 배급 ㈜바이포엠스튜디오)은 감독 하정우의 큰 걸음, 비약적 성장을 실감케 한다. 하정우에게 ‘감독’ 외 아무런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음을 확인시킨다.


감독이 누군지 모르고 본다면 긴장미 깃든 안정적 연출과 배우 하정우·공효진·김동욱·이하늬의 혀를 내두르는 연기로 꽉 찬 수작에 ‘감독 이름’을 검색하고 싶어질 것이다.


감독 하정우의 1st 연출작 ‘롤러코스터’ ⓒCJ ENM

초등생 김성훈(하정우의 본명)은 감독이 되고 싶었다. 커다란 가방에 VHS 테이프 가득 담아 출장 대여에 나선 동네 비디오가게 주인장이 열어 보이는 ‘세계 영화 도서관’에서 아빠(배우 김용건)와 엄마가 고르고 나면, 장남인 그도 또 동생(영화사 워크하우스컴퍼니 대표 김영훈)도 비디오테이프를 골랐다.


그렇게 각자 취향대로 영화 보는 집안 분위기 안에서 어린이 김성훈은 감독을 꿈꿨다.


“2012년부터 연출에 도전했어요. (2003년 영화 ‘마들렌’으로 데뷔한 10년 차 배우가 감독을 한다고 하니) 특별해 보일 수 있죠. 그런데, 저는 그런 게 없어요. 제게는 계획이 있었고, 생각이 있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감독 생각이 있었고, 그래서 감독작, 특별하지 않아요.”


감독 하정우의 2nd 연출작 ‘허삼관’ ⓒ㈜NEW

지난 2일 서울 삼청로 카페에서 만난 하정우의 말이다. 라운드 인터뷰 테이블에 둘러앉은 기자들은 주연배우 하정우보다는 감독 하정우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그런데 왜 배우를 먼저 하게 됐나요?


“대학 시절 연극 할 때도 연출하고 그랬는데, 배우 기회가 먼저 왔어요. 뜨거운 물, 찬물 가릴 처지가 아니었죠.”


당시 하정우는 후배 자취방에 얹혀 지내기도 하며 무명의 시간을 보낼 때였다. 지난날, 숱한 인터뷰에서 나이 들어서 ‘전원일기’ 같은 농촌드라마에 동네 아저씨로 나오면서라도 찬밥, 뜨신 밥 가리지 않고 대중문화예술인으로 살아가겠다고 말한 것에 비춰보면, 먼저 온 기회를 잡은 것도 같은 맥락일 테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첫 (연출)작품 하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렇게 ‘롤러코스터’ 하고, 바로 붙어서 ‘허삼관’. ‘허삼관’은 원래 배우로만 캐스팅된 거였는데, 연출 기회가 왔어요. 어떤 작품을 연기하는 것보다 연출이 하고 싶었어요,”


감독 하정우의 3rd 연출작 ‘로비’ⓒ㈜쇼박스

감독 하정우의 영화에는 언제나 ‘웃음’이 있다. 연출데뷔작 ‘롤러코스터’는 폭풍우에 휘말려 공항에 착륙하지 못하는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재치와 유머를 잃지 않는 센스가 빛나는 영화였다. 특히나 어느 감독과도 대별되는 감독 하정우만의 말맛이 최고조로 빛났다. 조금만 나중에 개봉했어도…시대를 앞선 수작이라는 평가가 시간이 갈수록 늘고 있다.


내 둥지에 뻐꾸기가 놓고 간 알인 줄 모르고, 제 새끼인 줄 알고 정성스레 키우는 오목눈이 신세가 된 아빠 허삼관의 애달픈 인생, 그래도 기른 정이라고 아픈 자식을 위해 피를 팔아 아들을 구하려는 아비의 슬픈 사연 속에서도 감독 하정우는 풍자와 해학, 한 시대 전 어른들의 눙치는 웃음을 놓치지 않았다.


10년 만에 내놓은 ‘로비’도 마찬가지다. 미래 주차장의 판도를 바꿀 신기술을 개발하고도 로비를 못 해 문 닫을 위기에 놓인 스타트업 대표의 눈물겨운 ‘생애 첫 로비’를 그려내면서도 포복절도할 웃음을 다양한 캐릭터 군상을 통해 뿜어냈다. 감독 하정우를 만난 김의성·강말금· 차주영·최시원의 에너지는 폭발했고, 연기파 박병은·박해수·곽선영·김종수·박경혜 등은 새로운 얼굴을 꺼냈고, 새 얼굴 엄하늘이 발견됐다.


감독 하정우의 4th 연출작 ‘윗집 사람들’ⓒ㈜바이포엠스튜디오

그리고, ‘윗집 사람들’은 속사정은 어떻건 간에 겉으로는 여전히 ‘유교 생활’ 영역 안에 있는 한국 사회에서 터부시하는 내밀한 소재를 꺼내 본격적으로 ‘어른들을 위한 토크’를 펼쳤는데. 심각하지 않고 보는 내내 웃음이 터지고 마지막엔 감동의 교감을 마주할 수 있다. 꽉 막힌 하수구는 뚫으면서도 잘 돌지 않는 혈관을 방치하다 사망에 이를 수 있듯, 사랑했던 마음을 기억 속으로 증발시켜 버린 연인과 부부와 그 누구라도 마음의 빗장을 열게 하는 열쇠를 감독 하정우가 준비했다.


쉽게 수면 위로 올리지 않는 민감한 이야기를 끄집어내 재치와 유머로 비트는 측면에서는 ‘악동이자 천재’로 불리는 감독 우디 앨런 같고. 어떠한 소재든 웃음으로 풀어내는 동시에 직접 화면 안으로 들어가 어느샌가 보는 이의 마음에 메시지마저 심어놓는 면에서는 찰리 채플린 같은 영화인 하정우다.


특히나 ‘윗집 사람들’에서는 연기하는 모습이나 연출의 결과물이 문득 채플린을 연상시킨다. 감독 하정우가 의도한 것이 아님에도 아랫집 거실 벽면에 걸린 ‘HOTEL’이라는 세로 글자 오른편에 서 있는 중절모 쓴 남자가 채플린으로 보이는 이유다.


“어릴 때부터 채플린 같은 영화인이 되고 싶었어요. 제게 연출은 특별한 일도, 이벤트도 아니에요. 배우 먼저 한 건 기회를 먼저 받았기 때문이었고, 지금 이 순간도 그런 (영화인의) 일을 하고 있는 여정이라고 생각해요.”


영화인 하정우 ⓒ㈜바이포엠스튜디오

“(중단 없는 연출), 중독이겠죠, DNA 있겠죠. 어릴 때 꿈을 이뤄가는 과정에 있다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대부’ 같은 영화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영화 ‘대부’ 너무 사랑하고, 제게 엄청난 영향 주었고. 스콜세지의 다른 작품도 그래요, 누가 ‘카지노’(1996)나 ‘좋은 친구들’(1991) 같은 영화 안 만드나? 누가 하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디 앨런식 영화만 찍고 싶지 않고, 이제 스콜세지 같은, 코엔 형제 같은 영화 하고 싶습니다.”


배우, 감독, 굳이 구분할 필요 없는 영화인 하정우. 그가 감독으로서, 영화 ‘윗집 사람들’을 기점으로 출사표를 냈다. 어제는 우디 앨런, 오늘은 찰리 채플린, 내일은 마틴 스콜세지…하정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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