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겨냥에서 여권으로…뒤집힌 '통일교 정국'
경찰·공수처·검찰 모두 불신…남은 카드 '특검'
지방선거 반년 앞두고 여권 악재…정치 변수로
김건희 여사의 각종 의혹들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통일교시설과 관계자를 대상으로 압수수색에 나선 18일 오전 경기도 가평군 통일교 본부에 비구름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통일교를 둘러싼 금품 수수·로비 의혹이 여권의 심장부로 확산하며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통일교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아온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이 사퇴하면서 파장은 한층 커졌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장관 낙마다. 여권 내부에서도 이제는 사건을 관리할 수 있는 단계가 지났다는 말이 나온다.
14일 정치권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6·3 지방선거를 반년 앞두고 부각된 '통일교 리스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에 휩싸인 전 해수부 장관의 면직안을 재가하면서 그간 야권을 겨냥해 전개되던 통일교 수사의 화살이 여권으로 향하는 양상이다. 민주당 전·현직 의원들까지 의혹에 연루되면서, 정국에서는 여야 공수가 사실상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 전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3선 의원 출신으로, 내년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유력한 부산시장 후보로 거론돼 왔다. 현역 장관이자 차기 지방권력 후보군으로 분류되던 인사의 중도 낙마는 정치적 타격이 작지 않다.
의혹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이종석 국가정보원장,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정진상 전 민주당 국무조정실장 등이 통일교 측 인사와 접촉했다는 언론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단순한 개인 비위 차원을 넘어, 특정 종교 단체와 권력 핵심의 구조적 유착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배경이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이미 지난 8월 통일교 관련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그동안 수사는 주로 국민의힘 인사들에 집중됐고, 민주당 관련 의혹은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여권 인사 연루 정황이 외부로 알려지기 시작하자, 이재명 대통령이 돌연 '통일교 해산' 검토를 지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된다.
대통령실은 종교의 자유와는 별개로 불법 행위는 엄정히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정치권에서는 수사 흐름을 바꾸기 위한 고강도 메시지 아니냐는 시각도 적지 않다. 실제로 통일교 측은 이후 관련 재판과 수사 과정에서 발언을 극도로 자제하며 침묵 기조로 돌아섰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정교분리는 정말 중요한 원칙인데 이를 어기고 종교재단이 조직적·체계적으로 정치에 개입한 사례가 있다"며 "이는 헌법위반 행위이자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누가 수사하느냐다. 현재 사건을 넘겨받은 경찰에 대해 정치권 안팎에서는 회의적인 시선이 우세하다. 경찰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중립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인식이 이미 굳어졌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야당 관련 사건은 사안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경찰청이나 국가수사본부로 상향 보고되는 반면, 여당 관련 사건은 일선 경찰서에서 장기간 묶이는 사례가 반복돼 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경찰 수사가 아니라 사건 관리로 보일 때가 많다"고 밝혔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구조적 한계도 거론된다. 국수본은 일선 수사 조직을 단순 통합한 기구로 대형 정치 스캔들을 총괄 지휘하고 조정할 전문성과 독립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구나 계엄 사태 여파로 경찰청장이 구속된 이후 1년 가까이 청장 대행 체제가 이어지며 조직 전체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역시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현실적 제약이 뚜렷하다. 공수처는 출범 이후 여러 정치적 사건을 다루며 수사 역량과 독립성 논란을 반복해 왔다. 검찰은 내년 조직 폐지가 예정돼 있음에도 여전히 부패·경제 범죄 수사 권한을 갖고 있지만 정권 교체 이후 수뇌부가 대거 교체되면서 정권 친화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최보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경찰이 이 사건을 공정하게 수사할 수 있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없다"며 "대장동 항소 포기 논란과 좌천·강등 인사로 검찰의 독립성마저 흔들린 상황에서 이 사건을 기존 수사 체계에 맡기자는 것은 사실상 진실을 덮자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꼬집기도 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여권 인사의 통일교 금품수수 연루 의혹과 관련한 경찰 수사가 시작된 만큼 야당이 요구하는 특별검사(특검) 도입은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경찰 수사가 시작된 현시점에서 야당의 특검 수사 요구는 판을 키우려는 정치공세 불과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이같은 통일교 관련 혼란 속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결국 답은 특검'이라는 말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통일교 의혹 전반은 물론 민중기 특검의 수사 편향 논란까지 함께 들여다볼 수 있는 독립적 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여야 모두 연루 가능성이 거론되는 사안인 만큼 특검 도입 여부는 단순한 수사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정권 신뢰와 직결된 정치적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통일교 의혹은 이제 특정 인사의 거취 문제를 넘어섰다. 권력과 종교, 수사 기관의 중립성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한꺼번에 얽혀 있다. 이 사안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이재명 정부의 공정성, 그리고 향후 정국의 방향이 가늠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선 통일교 특검이 정치권의 화두도 떠오른 가운데 보수 진영에선 내년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특검 공조가 선거 연대의 디딤돌이 될 것이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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