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츠, 릴스 등 짧은 길이의 영상물들만 소비되는 현재 가수가 곡 안에 담아낸 상징과 그들의 세계관, 서사를 곱씹어 볼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아티스트가 담아낸 ‘작은 영화’인 뮤직비디오를 충분히 음미해보려 합니다. 뮤직비디오 속 이야기의 연출, 상징과 메시지를 논하는 이 코너를 통해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하고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재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엔시티 위시 '베이비 블루' 뮤직비디오
엔시티 위시(NCT WISH)는 8월 26일 미니 3집 '컬러'(COLOR)의 2번 트랙 '베이비 블루'(Baby Blue)의 뮤직비디오를 선공개했다. 엔시티 위시는 '베이비 블루' 뮤직비디오를 통해 조금 다른 결의 청춘 서사를 꺼내 들었다. 타이틀곡 '컬러'보다 덜 화려하고 수줍은 멜로디와 어딘가 불안정한 코드 진행, 그리고 멤버들이 무언가를 하나씩 떠나보내는 장면들이 겹치며 누구나 한 번은 겪고 지나가는 10대의 우울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줄거리
뮤직비디오는 학교·버스·운동장·바닷가 등, 누구에게나 익숙한 10대의 공간을 한 명씩 거쳐 가는 옴니버스 구조다. 각 장면에는 멤버별로 단어들이 하나씩 자막처럼 깔린다. 맨 처음 나오는 유우시는 '이별'을 표현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유우시가 상대방에게 책을 건넨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지만 등 뒤에서 크로스핑거 제스쳐를 취하며 사실 이별하기 싫다는 모습을 나타낸다. 버스는 떠나고, 유우시는 홀로 남아 걷다가 갓길에 피어난 들꽃을 바라본다.
재희의 키워드는 '소망'이다. 과거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 던져버린 시계를 찾는 재희는 진흙 속에서 시계를 발견하지만 이미 흙에 더럽혀져 고장난 모습이다. 리쿠는 '청춘'을 대표한다. 옥상 난간에 걸린 흰 하복 셔츠, 아무도 없는 학교. 리쿠는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교정을 서성인다. 그때의 웃음소리는 사라지고 빈 공간만 남아 리쿠는 쓸쓸하게 옥상에서 허공을 응시한다.
시온은 '사랑'을 담아냈다. 바닷가에서 사진을 정리하다가 혼자 사진을 찍으려던 시온은 카메라 렌즈에 앉은 나비를 발견하고 날아가는 나비를 따라 해변을 달린다. 그러나 파도에 휩쓸려 넘어지는 사이 나비는 사라지고 시온만 물속에 잠겼다가 다시 걸어나온다. 료는 '꿈'을 표현했다. 깜깜한 밤 학교 운동장에 간 료는 혼자 축구를 하는 시늉을 하다가 텅 빈 교실에 들어가 예전에 책 속에 끼워 두었던 편지를 발견한다. 잠시 읽다가 결국 편지를 다시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고 교실을 떠난다.
사쿠야는 '기억'을 떠나보냈다. 들판에서 연에 '청춘'과 같은 단어를 적어 날리는 사쿠야의 얼굴은 어딘지 쓸쓸하다. 마지막 장면에선 '미래'라는 단어가 나온다. 멤버들은 바닷가에 모여 나뭇가지를 모아 뗏목을 만든다. 유우시는 들꽃을, 재희는 시계를, 리쿠는 셔츠를 하나씩 올려놓고 뗏목을 바다로 떠나보낸다.
해석
뮤직비디오는 10대에 처음 맛보는 작은 슬픔(베이비 블루)을 보여준다. 멤버들은 각각 떠나보내고 싶지 않지만 이별하게 되며, 그토록 찾고 싶었던 소망을 찾지만 기억 속의 모습과 다른 현실을 마주한다. 보고 싶은 사람들과 사랑은 뜻대로 만날 수 없고 좋은 기억들을 떠나보낸다. 어른이 되면 '그땐 그랬지'라고 말할 수 있게 되지만 그 소용돌이 속에 있는 당사자에게는 자아를 뒤흔드는 사건들이다.
그룹의 막내들인 료와 사쿠야가 내년 20살이 돼 그룹 전원이 성인이 된다. 소년의 끝자락에서 멤버들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10대를 상징하는 물건들을 뗏목에 올리고 바다에 떠나보내는데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마지막으로 한 번 바라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보내는 행동이 성장의 의식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 뮤직비디오는 '청춘은 흘러 사라져도 결국 미래가 온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한다.
특히 시온의 키워드가 인상적이다. 시온이 나비를 잡으려 물에 빠졌다가 다시 걸어나오는 장면은 그리스로마신화의 '에로스와 프시케' 이야기로도 해석된다. 에로스는 신화 속에서 프시케를 만나기 전 사랑의 어두운 면을 몰랐으나 그녀를 만나고 복합적인 사랑을 깨닫게 된다. 고전 그리스어인 '프시케'에는 나비라는 뜻도 있어 나비를 잡으려 노력하다 결국 물에 빠진 시온의 모습으로 사랑의 이면을 깨닫는 청춘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또한 이 부분은 엔시티 위시가 데뷔 때부터 콘셉트로 잡아온 상징이 큐피드, 즉 에로스기에 그룹 전체의 성장으로도 해석된다.
ⓒ엔시티 위시 '베이비 블루' 뮤직비디오
총평
'수록곡임에도 뮤직비디오를 찍은 이유를 알겠다'는 팬들의 말처럼, 노래와 영상이 서로를 완성시켜준다. 곡의 불안정한 멜로디와 서늘한 분위기가 영상 속 상징들과 만나면서 비로소 완성된다.
그룹이 데뷔 때부터 설정한 큐피드라는 세계관을 단편적으로 이용하기보다는 실제 신화의 내용처럼 사랑을 깨닫고 성장하며 겪는 아픔까지 담아 성장 서사를 완성했다. 소년미를 강조한 기존 콘셉트에서 연차가 차고 나이가 들어 다크하고 어른스러운 느낌으로 바꿔 곡을 내더라도 어색하지 않게끔 복선을 자연스럽게 넣었다고도 볼 수 있다.
멤버들이 불안한 청춘의 느낌을 과하게 연기하지 않고 실제 10대 소년들처럼 담담하게 표현하는 점도 인상적이다. 오바스러운 감정 대신 멍하니 서 있다가 물건을 쥐거나 잠시 고민하다가 바다에 던져 넣는 몸짓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줄평
어른이 될 준비를 마친 6명의 큐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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