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전 해수부서 '생중계 업무보고' 마무리
6개월 뒤 '업무보고 시즌2'…공직사회 변화될까
공개 질타, 자칫 '모욕·낙인'으로 변질될 지적도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부산 동구 해양수산부 청사에서 열린 해수부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 실시된 부처별 업무보고가 23일 해양수산부를 끝으로 모두 마무리됐다. 이번 업무보고는 사상 처음으로 전 과정을 생중계하는 방식을 택하며 대통령과 각 부처 고위 공직자 간 문답이 그대로 국민에게 공개되는 장면을 연출했다.
국민을 대신한다는 명분 아래 이 대통령은 주요 현안에 대해 반복적으로 질문을 던지며 정책의 타당성과 집행 과정의 문제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즉석에서 보완이나 개선을 요구하는 등 행정 경험이 축적된 국정 운영자의 면모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대통령의 즉흥적 발언이나 개별 사안 중심의 논의가 여과 없이 노출되면서 향후 업무보고가 어떤 기준과 절차에 따라 운영돼야 할지에 대한 문제 제기도 뒤따른다. 보여주기식 공개를 넘어 국정 조율 기능을 유지하려면, 업무보고 방식 전반에 대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부산 동구 해양수산부 임시청사에서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을 상대로 올해 마지막 부처별 업무보고를 주재했다. 국민주권 정부를 내세운 이번 업무보고는 역대 정부 가운데 처음으로 전 과정이 생중계 방식으로 진행돼 이목을 끌었다.
대통령실은 이번 생중계가 국정 운영의 방향과 구상을 국민에게 직접 설명하고, 부처들의 정책 이행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취지에서 이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업무보고는 정부 출범 이후 6개월간의 주요 성과와 한계를 점검하고 향후 추진 과제와 부처별 중점 사업을 중심으로 발제가 이뤄진 뒤 자유 토론으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대통령은 업무보고 도중 업무보고를 공개적으로 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며 "공무라는 게 관심을 받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이어 "국민의 관심을 끌기 위해 방식에 변화를 주다 보니 대통령으로서 권위나 품격이 없다는 비판도 있지만,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도 유사한 방식의 업무보고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6개월 뒤에 다시 업무보고를 받으려고 한다"며 "국민 여러분도 그때 공직사회가 얼마나 변해있을지 봐달라"라고 말했다. 또 "보고회라는 자리가 긴장감을 줄 수 있지만 다음에는 보다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진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업무보고에서 각 부처 장·차관과 실무자들이 대통령과 정책을 두고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장면이 7일간 생중계되면서 이른바 '잼플릭스(이재명+넷플릭스)'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공개 행정의 실험이 하나의 정치적 콘텐츠로 소비되는 양상이다.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일 잘하는 대통령'이라는 반응이 나왔으며 이 대통령 스스로도 업무보고가 넷플릭스보다 재밌다고도 했다. 실제 대통령 공식 유튜브 채널에 게시된 생중계 업무보고 영상들은 대부분 조회 수 10만회를 넘겼고, 국방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업무보고 영상은 최대 24만회까지 기록했다.
이번 업무보고가 화제를 모은 배경에는 대통령의 직설적인 화법과 즉각적인 반응이 자리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왜곡되거나 부정확한 보고에 대해 공개적으로 경고하는 한편 성과를 낸 공직자에 대해서는 즉석에서 이름을 언급하며 평가하는 등 채찍과 당근을 병행했다.
이 대통령은 "모르면 모른다고 말해야 한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면 판단이 왜곡된다"고 강조하며 보고 과정에서의 투명성과 정직성을 거듭 주문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당시 국민신문고를 신속히 개설한 식품의약품안전처 직원을 공개적으로 치하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국민 생활과 직결된 사안도 직접 테이블에 올렸다. 이 대통령은 복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는 탈모 문제를 언급하며 과거에는 미용의 문제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있다고 말하며 탈모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 가능성을 거론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에서는 생리대를 사례로 들며 "우리나라 생리대 가격이 다른 나라보다 약 39% 비싸다는 지적이 있다"며 시장 구조와 담합 여부에 대한 점검을 지시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부산 동구 해양수산부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30시간을 넘긴 생중계 업무보고가 모두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발언과 즉흥적 판단이 그대로 노출되면서, 이른바 '즉흥 행정'의 위험성도 함께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탈모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 검토 지시는 정부의 추가 지원을 기다려 온 중증·희귀질환 환자들과 가족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제한된 재정 여건 속에서 정책 우선순위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던져진 메시지가 사회적 갈등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주류 사학계가 '유사역사학'으로 분류하는 '환단고기'를 공개 석상에서 언급한 것도 불필요한 논쟁을 촉발시켰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특히 책갈피에 달러를 끼워 반출했을 가능성을 거론하며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을 공개적으로 질타한 대목은 정치권의 즉각적인 반발을 샀다. 야당은 이를 "정치적 탄압"이라고 규정하며 공세에 나섰다.
이와 함께 생중계라는 형식을 통한 공개 질책이 자칫 공직자에 대한 '모욕 주기'나 '낙인찍기'로 비쳐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정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가 오히려 공직 사회의 위축과 방어적 행정을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공개 행정의 방식과 수위에 대한 정교한 조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밖에도 이 대통령이 '툭' 던진 말 한마디의 영향이 사회 전 분야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약 2년 가까이 표류해 온 한국형 차기 이지스 구축함(KDDX) 도입 사업이 22일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간 경쟁 입찰 방식으로 최종 사업자를 선정하기로 결정됐다. 장기간 답보 상태에 놓였던 사업이 일단 방향을 잡았지만, 실제 결론에 이르기까지는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동안 KDDX 사업을 둘러싸고 두 기업은 설계 주도권과 책임 범위를 놓고 첨예하게 맞서 왔고, 방위사업청의 평가 과정에서도 가점·감점 적용 기준을 두고 혼선이 반복돼 왔다. 이 과정에서 사업 추진 일정은 수차례 지연됐고, 방산 업계 안팎에서는 정책 판단이 늦어지면서 사업 불확실성만 키웠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논란은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특히 최종 결정 약 2주 전인 지난 5일, 이재명 대통령이 KDDX 사업과 관련해 특정 업체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하면서 논쟁은 다시 불붙었다. 정치권과 업계 일각에서는 대통령 발언이 사업자 선정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불투명하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같은 논란이 여론에 일부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소폭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의 의뢰로 지난 15~19일 무선 100% ARS 방식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53.4%로 직전 조사보다 0.9%p 하락했다. 반면 부정평가는 42.2%로 0.7%p 상승했다.
리얼미터는 이 대통령의 생중계 업무보고가 신선한 소통 방식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았지만 이학재 인천공항공사 사장에 대한 공개 질책이 낙인찍기나 정치 보복 비판으로 이어져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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