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에서 아티스트로…서기준의 기념비적 도전, 니엘과 피워낸 ‘플라워’ [D:인터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12.31 08:30  수정 2025.12.31 08:30

2012년 일본 톱 가수 코다쿠미의 곡으로 데뷔해 악동뮤지션의 '오랜 날 오랜 밤', 케이윌의 '내게 와줘서' 등 수많은 곡에 참여한 서기준 프로듀서가 본인의 음악적 정체성을 담은 싱글 '플라워'(flower)를 30일 오후 6시에 발표한다. 강남인디레코드 설립 이후 제작자로서도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이번 신곡에서 작사, 작곡, 편곡은 물론 직접 가창까지 참여하며 아티스트로서의 확장을 꾀했다.


전문 보컬리스트가 아님에도 직접 노래를 부르는 도전에 나선 서기준은, 평소 두터운 친분을 자랑하는 틴탑 니엘과 손을 잡았다. 그는 니엘과 함께한 섬세한 보컬과 밴드 세션 편곡으로 어우러진 '플라워'로 음악 본연의 따뜻한 정서와 아날로그적 가치를 찾는 이들의 귀를 사로잡겠다는 목표다.


이 곡은 서기준에게 오랜 시간 이어온 작곡가 커리어의 연장선이자, 그동안 뒤에서 음악을 만들어온 위치를 벗어나 스스로를 전면에 세운 선택이기도 하다.


"작곡가로 활동한 지 한 15년차가 됐어요. 성향 자체는 외향적인 편인데, 직업은 늘 누군가를 서포트하는 역할이었죠. 그렇게 오래 일을 하다 보니까, 이제는 좀 제대로 작전을 짜서 내 이름으로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올해 초부터 준비를 했는데, 혼자 하기엔 버거울 것 같아서 함께 도와줄 사람을 찾게 됐고, 니엘이 함께 하게 됐어요. 결과적으로는 오랫동안 해온 음악 인생을 정리하는, 기념 같은 작업이 된 것 같아요."


니엘과의 인연은 음악 현장에서의 반복된 만남 속에서 자연스럽게 쌓였다. 과거 음악 방송 무대를 계기로 처음 호흡을 맞춘 이후, 다수의 작업을 거치며 작업실과 무대를 오가는 시간이 쌓였고, 음악을 대하는 두 사람의 진중한 태도는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처음 만난 건 KBS2 '불후의 명곡'에서 제가 편곡을 하면서 알게 됐어요. 그때 제가 틴탑 곡을 많이 했거든요. 대기실에 같이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친해졌죠. 이후 니엘의 앨범 작업도 같이 하면서 작업실에서도 자주 봤고요. 니엘은 음악하는 걸 제일 좋아하는 친구라, 그 지점에서도 잘 맞았어요. '멋있는거 한번 해보자'라며 곡을 들려줬을 때도 되게 흔쾌히 좋다고 했고요. 니엘에게 정말 고마워요."


음악 시장의 유행 주기는 갈수록 짧아지고 있지만, 서기준은 오히려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길을 택했다. 그는 시대의 흐름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음악의 생명력을 믿기로 했다.


"제가 늘 하는 말이 있는데, 나이 든 사람이 억지로 트렌디함을 따라가는 것만큼 보기 안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 트렌드를 쫓는 음악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대신 시간이 지나도 들을 수 있는, 스테디한 음악을 하고 싶었죠. 마침 브루노 마스가 가장 트렌디한 아티스트이면서도 레트로한 음악을 하고 있기도 했고요. 거기서 영감을 받아서 옛날 스타일의 음악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가 직접 불러야 하니까, 제 목소리에 맞는 음악이어야 했고요. 그래서 음악도 꽉 찬 느낌의, 풀 밴드 기반 사운드가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니엘도 그런 스타일에 거부감이 없는 친구라서 지금의 올드한 감성 발라드가 나온 것 같아요. 앞으로 음악을 계속 한다면, 저는 오랜 시간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타인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움직여왔던 이전의 역할과 달리, 이 곡에서는 전 과정의 중심이 명확히 개인에게로 옮겨졌다. 그 변화는 곡을 만드는 방식 뿐 아니라, 작업 전반을 바라보는 태도에도 차이를 만들어냈다.


"프로듀싱이나 작곡은 결국 다른 사람의 의중을 생각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돈을 받고 하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이건 제 음악이라 훨씬 자유로웠어요. 예를 들면 이번 녹음에서 원래 쓰던 마이크보다 음역대를 일부러 더 높여서 녹음했어요. 사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건데, 그냥 그게 더 좋다고 느꼈어요. 이런 중요한 결정을 전부 제 판단으로 할 수 있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였어."


이번 싱글에는 음악을 만들어온 환경 자체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인식도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기술의 발전이 창작 과정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흐름 속에서, 서기준은 지금 이 시점에 음악가가 어떤 위치에 서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배경이 됐다.


"요즘 AI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잖아요. 영상 AI는 사람들이 보면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또 AI로 만든 영상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음악 AI는 달라요. 듣고 구분하기도 어렵고, 사람들이 싫어하지도 않아요. 오히려 음악 쪽이 창작자에게 더 불리하다고 느껴요.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의 뒤에서 묵묵히 서포트하는 직업들은 점점 자리를 잃게 되는 시대인 것 같아요. 작곡가든, 창작자든 자기 IP를 가지고 브랜딩된 아티스트가 되는 게 AI가 대체할 수 없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작곡 AI는 이미 너무 뛰어나서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에요. 마음먹고 쓰면 절대 티가 안 나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많을 거예요."


레이블을 이끌며 제작과 운영 전반을 경험해온 시간 역시 이번 작업의 밑바탕이 됐다. 뮤직비디오도 직접 만들며 음악 외적인 영역까지 직접 관여해온 과정은, 결과물을 구현하는 방식과 준비 과정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데 대한 경험이 많아지다 보니까,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었고요. 아티스트들을 홍보하면서 쌓아온 창구들도 있어서 활용할 수 있었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하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했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카메라를 많이 다뤄본 게 지금 와서 다 도움이 됐어요."


음악의 기획 단계부터 서기준이 내세운 기준은 명확했다. 유행의 최전선에서 소비되는 음악이 아닌, 시간이 흘러도 다시 꺼내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편리한 프로그래밍 사운드 대신, 공력이 많이 드는 정공법을 택했다.


"'플라워'의 키워드는 '클래식' 입니다. 트렌드의 반대편에 있는 음악이죠. 시간이 지나도 계속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음악도 철저하게 리얼 악기 위주로 만들었고, 실제 밴드로 연주할 수 있는 소리만 사용했어요."


음악의 외형을 고전적인 사운드로 채웠다면,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사랑의 가장 순수한 본질을 향한다. 이번 곡의 가사는 서기준이 출강 중인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케이팝학과의 제자이자 호주 출신인 제시카가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


"내가 너를 사랑하겠다, 지켜주겠다. 너도 내 곁을 지켜달라. 내게는 너 하나면 충분하다. 세상의 어떤 꽃도 너만큼 예쁠 수 없다"는 메시지예요. 요즘 감성적인 가사가 많지 않다 보니까, 오히려 사람들이 옛날 노래를 찾아 듣잖아요. 이 곡을 듣는 분들이 연말을 조금이라도 따뜻한 감성으로 보냈으면 좋겠어요."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온 베테랑 프로듀서에게도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가창자로 전면에 나서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이러한 망설임을 확신으로 바꾼 것은 곁을 지켜준 동료들의 지지였다. 특히 이번 곡에 함께 참여한 니엘의 격려는 결정적인 동력이 됐다.


"음악 인생에서 기념비적인 앨범이에요. 올해 초부터 팀원들에게도 강조해왔죠. 이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 용기를 얻게 됐어요. 노래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까, '이걸 해도 되나' 고민했는데, 주변에서 괜찮다는 말을 많이 해줬고 특히 니엘의 응원이 큰 힘이 됐죠. 솔직히 말하면, 니엘이 없었으면 이 앨범은 안 나왔을 것 같아요."


스스로를 새로운 시험대에 올렸던 지난 과정은,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도전을 발판 삼아, 각자의 삶에서 변화를 주저하는 이들에게 '플라워'가 용기가 되길 바란다.


"요즘 음악을 듣는 분들도 각자 상황이 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용기를 가지고 한번 해봤으면 좋겠어요. 저도 했고, 해보니까 열심히 하면 정말로 뭔가는 일어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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