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하면 생명까지 위협한다…'노년기 우울증'의 경고 [119시그널]

김효경 기자 (hyogg33@dailian.co.kr)

입력 2026.01.12 11:51  수정 2026.01.12 11:52

노화로 오인되는 마음의 병 ‘우울증’

우울증·치매 위험 겹치는 노년기…조기 발견이 관건



급격한 기온 변화, 사회적 스트레스, 감염병 확산 등 우리 곁에 존재하는 위기 신호를 분석하고 현장에서 들려오는 ‘119 시그널’을 통해, 사회가 놓치고 있는 건강의 최전선을 기록합니다. 현장의 목소리와 전문가 분석으로 ‘응급상황’이 되기 전 건강의 위험 신호를 알려드립니다.



ⓒ데일리안 AI 포토그래피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고 있지만, 65세 이상 노년층의 우울증은 여전히 발견과 치료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신체질환이나 노화 과정으로 오인되기 쉬운 탓에 증상이 상당히 악화된 뒤에야 병원을 찾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노년기 우울증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자살 예방과 직결된 사회적·공중보건 과제라며, 조기 발견과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은퇴·상실·고립 속에서 커지는 ‘노년기 우울’


12일 국가정신건강포털에 따르면 일반 노인 인구에서 주요우울장애 유병률은 1~4%, 경미한 우울증은 4~13% 수준이다. 특히 만성질환을 가진 노인에서는 이 비율이 두 배 이상 높아진다. 전체 성인 인구(만 18세 이상)에서 주요 또는 경미 우울증의 유병률이 약 7.8%인 것과 비교하면, 노년기가 우울증이 가장 흔한 연령대임을 보여준다.


노년기 정신질환은 조기에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정신질환이 청·장년기에 발병해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기 때문에, 노년기에 처음 나타나는 증상은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자녀의 독립과 사회적 관계 축소로 인해 주변에서 변화를 제때 알아채지 못하는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변기환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식욕이 떨어지고 기력이 없을 때 이를 신체 질환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결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며 “노년기에는 다양한 신체질환과 인지 저하가 동반되면서 정신과적 증상이 가려지는 현상도 자주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노년기 정신질환 가운데 가장 흔하고 삶의 질을 크게 저해하는 질환은 기분장애, 그중에서도 우울증이다. 우울 증상이 심한 경우 ‘주요우울장애’로 진단한다. DSM-5(미국정신의학회 진단통계편람 제5판)에 따르면, 2주 이상 지속되는 우울한 기분 또는 흥미·즐거움의 상실이 있으면서 9가지 증상 중 5가지 이상이 2주 이상 지속될 때 주요우울장애로 진단한다.


주요 증상으로는 거의 하루 종일 지속되는 우울한 기분, 흥미나 즐거움의 현저한 감소, 체중이나 식욕 변화, 불면 또는 과수면, 정신운동성 초조 또는 지체, 피로감, 무가치감이나 과도한 죄책감, 집중력 저하, 반복적인 죽음에 대한 생각이나 자살사고 등이 있다.


변 교수는 “중요한 것은 이전과 비교해 우울 증상으로 인해 뚜렷한 기능 저하가 발생했는지 여부”라며 “직업, 가사, 대인관계 등 일상생활 전반에 제약이 생기고, 그 영향이 가족의 삶에까지 미친다”고 말했다. 이어 “증상이 이 기준에 미치지 않더라도 일상 기능에 지장을 초래하면 ‘지속성 우울장애’나 ‘기타 명시된 우울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노년기 우울증, 가족이 알아야 할 ‘신호’
노년기 우울증에는 가족들과 적극적으로 치료에 나서는 게 중요하다. ⓒAI 제작

노년기 우울증의 가장 심각한 결과는 자살이다. 2021년 전체 인구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6명이었으나, 2023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40.6명으로 훨씬 높았다.


변 교수는 “노년기는 우울증이 가장 흔하면서 동시에 자살 위험이 가장 높은 시기”라며 “노년기 우울증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개입해야 할 공중보건 과제”라고 강조했다.


노년기 우울증은 다른 연령대와 구별되는 특징을 보인다. 우선 신체 증상 중심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젊은 층이 우울감이나 무기력을 직접 호소하는 반면, 노년층은 두통, 어지러움, 가슴 두근거림, 소화불량, 통증 등 불특정 신체 증상을 주로 호소한다. 이 때문에 여러 진료과를 거친 뒤에야 정신건강의학과로 의뢰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또 다른 특징은 인생 주기의 변화와 상실이다. 은퇴, 자녀 독립, 배우자나 친구의 사망은 노년기에 흔히 겪는 사건이다. 이러한 상실이 반복되면 무력감과 무가치감이 깊어질 수 있다.


인지 저하와 치매와의 중첩도 중요한 문제다. 65세 이상에서는 약 5.8년마다 치매 유병률이 두 배로 증가하며, 2023년 기준 치매 유병률은 약 9.25%, 경도인지장애는 28.4%로 보고된다. 인지 저하가 있으면 활동 참여가 줄고 무감동증이 나타나 우울증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치매 환자의 30~80%에서 우울 증상이 동반되는 만큼 이에 대한 치료가 함께 고려돼야 한다.


변 교수는 “노년기 우울증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개인의 삶의 질을 지키는 것을 넘어 사회의 소중한 인적 자원을 지키는 일”이라며 “우울감을 느끼는 당사자와 가족, 주변인 모두가 치료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함께 나설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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