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키운 우량 자산의 인바운드 상장을 단순 '물적 분할'로 봐선 안돼
글로벌 1위 기업의 경쟁력 강화는 국가 경쟁력과도 직결
에식스솔루션즈 상장…단순 비판 아닌 본질 판단이 필요한 시점
에식스솔루션즈 상장 핵심요약ⓒ데일리안 박진희 디자이너
▲ 시장은 때로 현상의 본질보다 프레임에 더 먼저 반응하곤 합니다. 최근 LS그룹이 추진 중인 에식스솔루션즈 상장을 둘러싼 논란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시장에 상장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또 쪼개기 상장(물적 분할 후 재상장)이냐"는 반응이 나오는 게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례를 기존의 논쟁적 상장들과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은 기업 성장의 맥락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18년 전 불모지였던 미국 시장에 1조원을 투입해 키워온 해외 자산을 국내 증시로 들여오는 인바운드 상장마저 '쪼개기'로 규정하는 것은 과도한 일반화입니다.
▲ 실제 이 논란의 본질을 짚으려면, 이번 상장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 권선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인 에식스솔루션즈는 지주사 LS로부터 네 단계 아래에 위치한 해외 증손회사(LS→LS아이앤디→슈페리어에식스→에식스솔루션즈)입니다. LS가 2008년 미국 나스닥 상장사였던 슈페리어에식스(SPSX)를 인수한 뒤 공개매수로 지분 전량을 확보하고 자발적으로 상장폐지를 단행했습니다. 생산 공장과 판매처는 모두 해외에 있으며, 국내 사업 비중은 사실상 '제로' 입니다.
지금 LS가 추진하는 것은 해외에서 키워온 이 자산을 한국 자본시장으로 다시 불러들여 그 가치를 평가받겠다는 시도입니다. 성격상 중복 상장이 아니라 인바운드에 가깝습니다. 에식스솔루션즈가 북미 시장에서 독보적 지위를 굳히면 그 수혜는 지배주주인 LS로 돌아옵니다. 모기업의 기업가치가 훼손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프리미엄'이 더해지는 과정으로 해석해야 마땅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제사절단이 지난해 8월 미국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제조업 르네상스 파트너십'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맨 왼쪽이 구자은 LS 회장. 이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직접 LS그룹을 적시해 2030년까지 미국 전력망 인프라에 30억 달러(약 4조3000억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한경협
▲ 이렇듯 명확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기업이 처한 '시간의 절박함'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LS의 에식스솔루션즈 상장은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거점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적 승부수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글로벌 전력 시장은 인공지능(AI) 혁명이 촉발한 에너지 패권 경쟁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변압기 권선 하나가 없어 전력망 구축이 멈추는 시대에, 시장 1위 기업이 적기에 자본을 조달해 공급 능력을 확충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자칫 자금 조달이 지연되면 북미 1위(점유율 19%)·유럽 1위(28%) 수성조차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에식스솔루션즈 경영진은 미국내 생산설비 확충을 위해 오는 2029년까지 6000억원 이상의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에식스솔루션즈 북미 공장 내에 있는 변압기용 특수 권선 설비ⓒLS
물론 시장의 우려는 이해합니다. 한때 시장을 달궜던 쪼개기 상장은 한국 증시의 고질적인 악습으로 통했습니다. LS는 이를 의식해 자사주 100만주 소각과 배당 확대 등 구체적인 주주환원책을 제시했습니다. 이미 50만주를 소각했고 1분기 안에 추가로 50만주를 더 없앨 계획입니다. 배당은 2030년까지 30% 이상, 자기자본이익률(ROE)는 지금의 5%에서 8%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도 내놨습니다.
▲ 그럼에도 이를 쪼개기 상장이라는 단순 프레임으로 재단한다면, 이는 건전한 시장 감시가 아니라 감정적 거부에 불과합니다. 에식스솔루션즈 상장은 국내 사업을 쪼개는 선택이 아니라, 해외에서 이미 경쟁력을 입증한 기업에 성장의 연료를 공급하는 결정입니다. 특히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초격차를 벌리느냐, 아니면 낡은 프레임에 갇혀 도태되느냐는 국가 경쟁력과도 직결된 문제입니다. 프레임이 아닌 본질을 꿰뚫는 시장의 혜안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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