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한·중·일 협력 전면에…정치 넘어선 실용 연대 주도

고수정 기자 (ko0726@dailian.co.kr)

입력 2026.01.15 14:27  수정 2026.01.15 14:28

중·일 갈등 속 각국 재계와 경제 협력 강화


ⓒAI 생성 이미지


미·중 갈등, 중·일 갈등의 국면 속 재계가 한·일, 한·중 경제 협력의 전면에 나서며 '민간 외교'의 필요성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통상·투자·공급망을 축으로 한 재계의 실용적 행보가 동북아 경제 관계의 완충지대로 기능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논의가 부상하면서, 한·일 경제 연대 구상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CPTPP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 통합을 목표로 관세 철폐는 물론 정부 조달, 지식재산권, 노동 규제, 금융 등 비관세 장벽 전반을 포괄하는 초대형 자유무역협정으로, 일본이 주도하고 있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3%, 무역의 15%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정부는 이재명 대통령 지시에 따라 CPTPP 가입 추진을 공식화한 상태다.


재계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구조상, 글로벌 보호무역 기조 확산으로 높아지는 무역 장벽을 우회하기 위해서라도 CPTPP 가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CPTPP 가입은 한·일 FTA 논의로도 이어질 수 있어, 단순한 양국 협력을 넘어 연대와 경제공동체 형성의 정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에 맞춰 재계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오는 16일 일본 경제단체연합회와 함께 지역 협력과 민생 연대를 주제로 공동 세미나를 열고 인구 구조 변화와 산업 재편, 공급망 안정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는 한경협이 최근 매출 상위 1000대 비금융 기업 가운데 101개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와도 맞닿아있어 보인다. 한경협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62.4%가 향후 한·일 경제협력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양국이 협력했을 때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는 산업으로는 ▲반도체 ▲AI ▲자동차 ▲바이오·헬스케어 ▲조선 및 배터리 순으로 나타났다. 한일 경제협력의 방식으로는 보호무역주의 등 글로벌 통상 이슈 공동 대응이 가장 많았다.


중소기업들의 인식도 유사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수출 중소기업 400개사를 대상으로 지난해 11월 실시한 '한일 경제협력 중소기업 인식조사' 결과에서 응답 기업의 50.3%는 일본과의 교류 확대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일본과의 교류 확대를 희망하는 중소기업의 기대 분야는 ▲수출 확대 ▲원·부자재 수입확대 및 공급안정 ▲대일투자 확대 ▲인적·기술교류 확대 순으로 집계됐다.


대한상공회의소 역시 일본과의 중·장기적 파트너십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한상의 회장을 맡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두 나라가 단순한 협력을 넘어 이제는 연대와 공조를 통해 미래를 함께 설계해야 할 시점"이라며 한·일 경제연대를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최 회장은 에너지, 의료, 스타트업, 관광 등 주요 협력 분야로 제시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계기로 한·일 기업 간의 협력이 한층 더 강화돼야 한다는 인식이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지난해 12월 주한일본대사 초청 경총 회장단 간담회에서 "주요국 간 패권 경쟁 심화, 공급망 재편, 기후변화, 저출산·고령화 등 한일 양국이 공통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며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공조를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는 반도체, 배터리, AI, 소재, 정밀기계 등 차세대 산업이 협력 강화 분야로 거론됐다.


중·일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서도 재계는 한·중 경제 협력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그룹 총수를 비롯한 재계가 경제 사절단으로 6년여 만에 방중했다.


재계에서는 이번 방중을 계기로 한·중 경제협력이 다시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비즈니스 포럼에서 양국 재계는 ▲제조업 혁신·공급망 ▲소비재 신시장 창출 ▲서비스·콘텐츠 협력을 중심으로 새로운 협력모델 발굴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최태원 회장은 포럼 개회사에서 "흔히 한중관계의 방향을 논할 때 '구동존이'(求同存異·차이점을 인정하고 공통점을 찾는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며 "두 나라 대표 경제인들이 서로 차이를 넘어 좋은 성장의 실마리를 함께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서 각각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과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는 우시에 D램 공장과 충칭에 낸드 패키징 공장, 다롄에 낸드 공장을 가동 중이다. 현대차와 기아도 각각 베이징과 옌청에 생산 거점을 두고 있고, LG에너지솔루션은 난징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미·중, 중·일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정부 외교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기업 간 신뢰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실무형 협력이야말로 동북아 경제 관계를 지탱하는 현실적인 외교 자산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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