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원로' 이해찬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별세…향년 73세

김민석 기자 (kms101@dailian.co.kr)

입력 2026.01.25 17:47  수정 2026.01.25 17:47

민주당 소속으로 7선 의원 지내

교육부장관·국무총리도 역임해

베트남 출장 중 '심근경색' 진단

받고 이틀 만인 이날 오후 운명

고(故)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더불어민주당에서 7선을 지낸 원로 정치인인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전 국무총리)이 25일 별세했다.


민주평통 사무처는 이날 이해찬 수석부의장이 베트남 호치만 탐안병원에서 별세했다고 밝혔다. 사무처는 "이 수석부의장은 지난 22일 민주평통자문회의 아태지역회의 운영위원회 참석차 베트남 호치민에 도착했다"며 "고인은 다음날인 23일 아침 몸 상태가 좋지 않음을 느끼고 긴급 귀국절차를 밟았으나 베트남 공항 도착 후 호흡곤란으로 호치민 탐안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후 고인은 심근경색 진단을 받고 스텐트 시술 등 현지 의료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25일 오후 2시 48분 운명했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고, 유가족에 따뜻한 위로를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 수석부의장은 베트남 출장 중인 지난 23일 호흡이 약해지는 증상이 나타나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응급실로 이송됐다. 이후 심근경색 진단을 받고 스텐트 시술에 이어 에크모(ECMO·체외막산소공급장치) 치료를 받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 수석부의장의 위독 소식이 알려진 직후 조정식 대통령 정무특보를 베트남에 급파했지만 이 수석부의장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이날 오후 2시 48분 운명했다.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이 수석부의장은 서울대 사회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4년 민청학련 사건과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87년 평화민주통일연구회(평민련)를 거쳐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민주당에 함께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이 수석부의장은 1988년 13대 총선 때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서울 관악을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한 이후 관악을에서만 17대 총선까지 내리 5선을 지냈다.


1998년엔 김대중 정부의 초대 교육부 장관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엔 고건 전 총리에 이어 책임총리로 임명됐다. 총리로서 국정 전반을 총괄했으나, 2006년 '3·1절 골프' 파문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정동영 후보에게 패배한 후인 지난 2008년 1월 대통합민주신당의 손학규 대표 체제가 출범하자 탈당했고 2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기도 했다.


2012년 19대 총선 당시 세종시에서 당선되며 6선에 오른 이 수석부의장은 민주통합당 대표에 올랐다. 그러나 18대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사퇴 압박을 받은 끝에 중도 하차했다. 2016년 총선에선 공천 배제된 뒤 탈당, 무소속으로 당선돼 복당하기도 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낸 이 수석부의장은 대표직을 내려놓은 이후인 2020년 20대 대선 경선에서 이재명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다. 이에 이 수석부의장은 이 대통령의 정치 멘토로도 불린다.


지난 2024년 4·10 총선에선 선거대책위원회 공동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았고, 지난해 6·3 대선 이후 이 대통령에 의해 이 수석부의장은 지난해 10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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