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가 쏘아올린 '혁신당 합당론'
커지는 '반대' 여론, 중단 요구까지 분출
鄭 리더십 흔들리자 목소리 내는 金
'합당 사태' 이면엔 당권 투쟁 관측도
김민석 국무총리(왼쪽)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의 빈소에서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정청래 대표의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간 합당 제안의 여진이 만만치 않은 분위기다. 당내 일부 반발은 물론 혁신당과의 관계도 경색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김민석 국무총리까지 당권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등 전방위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합당 문제가 정 대표 리더십의 최대 고비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일 민주당에 따르면, 당은 고(故) 이해찬 전 국무총리 장례로 중단된 혁신당과의 합당 관련 내부 논의에 착수할 예정이다. 우선 소속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정책 의원총회가 조만간 개최될 방침이다. 이후 17개 시도당별 당원 의견 수렴 절차, 최고위원회의 결정, 전당원 투표·전당원대회 등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당은 6·3 지방선거 후보 등록이 5월 중순이라는 점을 감안해 3월까진 합당 절차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사실상 첫 단추인 정책 의원총회부터 난관으로 보인다. 이 전 총리 애도 기간에도 정 대표의 합당 제안에 대한 찬성과 반대 측의 신경전이 벌어졌던 만큼, 의원들의 총의를 모아 본격적인 합당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이 정 대표의 과제가 됐다. 당장 대통령 제1호 감사패를 받은 한준호 의원은 지난 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충분한 숙의 없는 통합은 또 다른 분열의 시작이 될 수 있다"며 "혁신당과의 합당 제안은 여기에서 멈춰달라"고 포문을 다시 연 상황이다.
혁신당과의 합당 제안은 정 대표 리더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동안 1인1표제와 당·청 엇박자 문제에 대한 지적은 간간이 나왔지만, 일부 인사의 반발에만 그쳤지 확산되진 않았다. 당대표 연임용이라는 의심이 제기돼도 1인1표제에 대한 당원 찬성 여론이 높고, 청와대와의 갈등설도 사실상 이재명 대통령에 부담을 주는 상황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차적 문제가 명확해진 합당 문제만큼은 당원의 비판이 높아지자, 이를 등에 업고 정 대표 리더십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초선 의원 28명은 지난 23일 입장문을 통해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합당이 필요하다는 정 대표 주장에 선거 연대와 정책 공조 등 방법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굳이 무리하게 합당을 추진해 혼란을 자초하는 배경에 대해 당원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절차상 문제를 제기했다. 나아가 이언주·황명선·강득구 최고위원 등 지도부 일부는 이번 사태를 "정청래식 독단"이라고 규정하며 당 운영 방식을 지적하고 있다.
당내에선 혁신당과의 합당은 언젠가 이뤄질 사안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다만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합당이 필요하다는 정 대표의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은 명분과 지도부 패싱이라는 절차적인 문제점이 부정적인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당내 일부에선 정 대표가 당대표 연임을 위해 친문(친문재인)계로 구성된 혁신당 세력을 규합하려는 의도라는 의심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박홍근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정 대표가 개인의 정치적 유불리로 당초 합당을 제안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면서도 "트리플 호재에 찬물을 끼얹은 제안의 시점, 당내 소통 없는 일방적 통보 그리고 대통령실 조율을 거론한 것은 그 진의를 떠나 매우 부적절한 만큼, 합당해야 한다면 지방선거 이후 당내 숙의를 거쳐 다시 판단하자"고 밝혔다.
여권 관계자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합당 여부를 떠나 정치공학적으로 혁신당은 친문계 측에서 배출된 정당이기 때문에 정 대표가 친문계를 끌어들어 세력을 규합해 친명(친이재명)계를 이기겠다는 의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사실상 김 총리와의 대결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의 빈소가 마련된 가운데 김민석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혁신당과의 합당이 정 대표의 당대표 연임 전략으로 의심받으면서, 현재 이 문제는 단순히 진보 진영의 확장 문제를 넘어선 상황이다. 정 대표 책임론이 확인되자 조직적으로 반대 여론이 형성 중이고, 이 틈을 노려 김 총리가 당권에 대한 전향적인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여권에선 사실상 합당 사태 이면에는 당권 투쟁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김 총리와 정 대표는 각각 정부와 민주당을 대표해 이 전 총리 장례식에서 상주(喪主) 역할을 했는데, 당권을 향한 물밑 경쟁으로 보는 분위기다.
김 총리는 그동안 당권 도전에 대해 "자의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선을 그어왔다. 이재명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서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오세훈 서울시장과 각을 세우거나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을 여러 차례 방문하는 등 당권을 염두에 둔 행보에 나선 바 있다. 그러다 돌연 한 유튜브 방송에서 "민주당의 당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밝혔다. 김 총리가 당권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드러낸 시점은 정 대표의 합당 제안을 두고 논란이 불거진 직후다.
특히 김 총리는 이번 합당 사태의 핵심 문제 두 가지를 지적하며 정 대표를 견제했다. 절차·시기상 문제와 이 대통령과의 교감설이다. 김 총리는 "그날 그런 방식으로 발표될 것이라는 점은 몰랐다"고 밝혔다. 사실상 정 대표 측에서 합당 명분 중 하나로 내세우고 있는 청와대 교감설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김 총리가 갑작스럽게 합당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배경엔 정 대표에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 국무위원과 민주당 의원 간 주고받은 양당 합당 '밀약설'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두 사람의 텔레그램 대화가 지난달 29일 언론 카메라에 포착됐는데, 해당 국무위원은 혁신당이 공동대표 등을 논의하지 않았다는 입장문을 전달하며 "밀약? 타격 소재. 밀약 여부 밝혀야"라고 했다. 정 대표가 혁신당과의 합당을 통해 조국 대표를 공동대표로 내세울 수 있다는 의심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밀약설을 두고 정 대표 측과 혁신당은 '음모론'이라며 일축하고 있지만, 친명계에선 더 큰 의심을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친명계 관계자는 "이번 합당 문제를 보면 예정된 시나리오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계속 든다"며 "친문계 측에선 이번에 합당이 이뤄질 것이라고 보는 분위기인 것 같은데,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에선 이 전 총리 애도가 마무리된 이번 주부터 갈등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 대표는 애도 기간인 만큼 합당 문제에 침묵했는데, 그러다 보니 합당 반대파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결집까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 대표 입장에선 논란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당원 85%가 찬성한 1인1표제와 마찬가지로 당원 의견 수렴을 통해 반격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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