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증자 약속' 깬 루닛, 2500억원 '유증 폭탄'…'1대 1 무증'으로 주주 반발 잠재울까

이소영 기자 (sy@dailian.co.kr)

입력 2026.02.02 11:27  수정 2026.02.02 11:48

전환사채 풋옵션 리스크 현실화에 루닛 유증 계획 번복

경영진 재무 리스크 해소 목표, 주주는 지분가치 희석 우려

서범석 루닛 대표가 2일 서울 강남구 루닛 본사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유상증자 진행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루닛

국내 의료 AI 대장주로 꼽히는 루닛이 “증자 계획이 없다”던 그간의 입장을 번복하고 2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나선다. 2024년 미국 볼파라 인수 당시 발행했던 전환사채(CB)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 리스크가 현실화되자 대규모 자금 확보에 나선 것이다.


루닛은 2일 서울 강남구 본사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를 통해 유상증자 계획을 구체화했다. 신주 790만6816주를 주당 3만1650원(예정가)에 발행한다. 할인율은 지난주 금요일 종가 기준 25%를 적용했으며, 기존 주주에게는 1주당 0.27주를 배정한다.


유상증자로 조달된 2500억원 중 약 40%에 달하는 985억원은 CB 상환 등의 채무에 투입하며, 1125억원은 R&D 및 글로벌 확장 등 투자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서범석 루닛 대표는 이날 간담회에서 “이번 증자는 풋옵션 리스크라는 그늘을 완전히 걷어내고 회사를 지속가능한 성장 궤도에 올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유증 자금이 자본으로 인식됨에 따라 루닛을 따라다녔던 법차손(법인세차감전손실) 리스크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다”고 말했다.


루닛은 지난해 5월 1715억원 규모 CB를 발행, 볼파라를 인수하며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당시 발행한 CB 풋옵션 행사 시점이 다가오면서 재무적 리스크가 커지기 시작했다. 최근 주가가 전환가액을 하회함에 따라 투자자들이 주식 전환 대신 현금 상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를 감당할 내부 유동성이 부족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논란의 핵심은 주주가치 훼손에 있다. 유상증자에 따른 주식 가치 하락과 지분 희석에 대한 리스크를 기존 주주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상증자 소식이 전해진 직후 루닛 주가는 19% 가량 하락하며 시장의 우려를 반영했다.


최대주주와 경영진의 소극적인 증자 참여율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최대주주인 백승욱 이사회 의장과 서범석 대표 등 특수관계인은 이번 유상증자에서 자신들에게 배정된 물량의 15% 수준을 청약하겠다고 밝혔다. 나머지 특수관계인들의 청약 의사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는 대주주가 보유한 우선 구매권의 85%를 포기하는 것으로, 향후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보수적인 가정을 토대로 이번 증자가 완료되면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기존 17.6%에서 14.11%로 3.49%p 하락하게 된다. 기존에 발행된 CB 및 스톡옵션 물량이 전량 행사될 경우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은 최대 12.18%까지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루닛 측은 증권신고서를 통해 “최대주주를 제외하고 5% 이상의 주주가 없어 경영권 분쟁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접어두더라도 대주주의 낮은 참여율이 기업 가치에 대한 확신 부족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은 또 다른 논란거리다.


루닛은 유상증자로 인한 주주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1대1 무상증자를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자본 항목 간 이동에 불과해 기업의 내재 가치를 높이는 실질적인 대책으로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예정 발행가가 현재 주가보다 낮은 수준에 형성돼 있어, 일반 주주들이 입게 될 실질적 자산 손실을 무상증자 만으로 상쇄하기엔 역부족이다.


이에 루닛은 실질적인 기업 가치 회복을 위해 수익성 중심의 경영 변화를 도모하겠다고 강조했다. 루닛은 올해 연말 현금영업이익(EBITDA) 기준 손익분기점(BEP) 달성을 목표로, 지난해부터 전체 인력의 15%를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비용 효율화를 통해 올해 운영비를 전년 대비 20% 가량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사업 부문별로는 볼파라와의 시너지 효과를 통한 미국 매출 급성장을 전망했다. 암 치료 사업 부문인 ‘루닛 스코프’의 경우 지난해 처음으로 매출 100억원을 돌파, 올해는 전년 대비 2~3배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서범석 대표는 “회사가 목표하는 비용 감소와 매출 증가 (약속을) 반드시 지켜 연말 무렵에는 현금영업이익 기준 흑자를 달성하겠다”며 “이번 유상증자는 루닛의 마지막 자본 조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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