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의 문법을 넘어 보편적 언어로…케이팝 서사의 ‘지속 가능한’ 설계법 [케이팝 시네마틱 유니버스③]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2.09 08:15  수정 2026.02.09 20:48

반복되는 실패의 경로...업계도 인식

"케이팝, 아이돌 외형만 차용하면 오래가기 어려워"

세계적 팬덤을 보유한 케이팝(K-POP) 아이돌 시장은 다양한 분야에서 여전히 매력적인 IP로 평가된다. 해외에서 제작되는 케이팝 기반 영화와 드라마를 향한 기대감이 꾸준히 이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만 국내 업계에서는 “아이돌이 등장한다”는 사실 자체가 더 이상 흥행의 보증수표가 되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국내에서 반복된 아이돌 소재 콘텐츠의 실패는, 팬덤의 존재가 곧바로 콘텐츠 경쟁력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미 여러 차례 확인시켰다. 특히 주목되는 변화는 팬덤의 소비 기준이다.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과거에는 단순한 미디어 노출 자체가 이벤트로 기능했다면, 현재 팬들은 이미 아이돌이 직접 제작·기획한 유튜브 콘텐츠, 다큐멘터리, 세계관 영상까지 일상적으로 소비한다. 자체 콘텐츠의 완성도가 빠르게 고도화되면서, 드라마나 영화가 이보다 낮은 완성도를 보일 경우 “굳이 극 형식으로 볼 이유가 없다”는 냉소적 반응이 팬덤 내부에서 먼저 나온다.


팬덤은 여전히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장르 콘텐츠로서의 설득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영화나 애니메이션처럼 제작비와 시간이 많이 투입되는 매체일수록, 팬을 넘어선 관객을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지에 대한 설계가 전제되지 않으면 지속성을 담보하기 힘들다.


업계 관계자들은 현재의 흐름을 “흥행 공식을 확보한 시장이라기보다, 가능성과 리스크를 동시에 시험하는 단계”로 본다. 케이팝 IP가 음악 산업의 성과와 분리된 독립 콘텐츠로 기능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 구조가 일회성 화제에 그칠지, 혹은 영화·애니메이션 시장 안에서 하나의 장르로 정착할 수 있을지는 아직 검증 중이라는 평가다.


특히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후 이어지고 있는 글로벌 프로젝트들 역시, 성공 가능성과 함께 동일한 질문을 안고 있다. 케이팝이라는 이름이 흥미를 유발하는 데는 분명 효과적이지만, 그 다음 단계에서 무엇으로 관객을 붙잡을 수 있는지는 각 프로젝트의 서사 설계와 장르 완성도에 달려 있다. 단순히 아이돌을 등장시키거나, 케이팝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이는 방식으로는 반복된 실패의 경로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을 업계 역시 인식하고 있다.


‘퍼펙트걸’ 연출을 맡은 쟈니브로스의 홍원기 감독은 “지금 세계가 케이팝과 K콘텐츠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단순히 한국이라는 국가적 배경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의 힘’ 때문이다. 이 흐름이 일회성 트렌드를 넘어 지속 가능한 움직임이 되기 위해서는 진정성과 장르의 다양성이 필요하다”라며 “케이팝을 그린다고 해서 반드시 음악 영화라는 틀에 갇힐 필요는 없다. 한국적 소재를 다양한 장르로 새롭게 해석하고 글로벌한 공감대로 확장해 나갈 때 비로소 이 흐름이 지속될 수 있다”고 전했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케이팝 기반 콘텐츠의 지속성을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짚는다. 그는 “케이팝이 흥미로운 이유는 스타 시스템 때문이 아니라, 청춘 서사를 집단적 감정으로 확장해 온 방식에 있다”며 “이 에너지를 제대로 옮기지 못한 채 아이돌이라는 외형만 차용한다면, 어떤 매체에서도 오래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케이팝 콘텐츠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특정 팬덤의 소비를 전제로 한 이야기가 아니라, 청춘의 불안과 욕망, 성장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장르 안에서 보편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먼저 와야 한다”며 “그 지점이 설계되지 않는 한, 케이팝 IP의 확장은 계속해서 같은 질문 앞에서 멈추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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