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이 가진 비극의 무게를 가려버린 '도파민' 가득 연출
에밀리 브론테의 불멸의 고전 '폭풍의 언덕'이 에메랄드 페넬 감독의 손을 거쳐 완전히 다른 옷을 입고 돌아왔다. 하지만 이 옷은 너무 화려한 나머지 원작이 가진 비극의 무게를 가려버렸고, 그 빈자리는 15세 관람가가 의심스러운 자극적인 장면들로 채워졌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시각적 완성도는 압도적이다. '라라랜드'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거머쥔 리누스 산드그렌 촬영감독과 미술팀은 요크셔의 황야를 감각적으로 구현했다. 특히 여주인공 캐시(마고 로비 분)의 의상과 분장은 이 영화의 백미다. 초반 화려한 드레스부터 히스클리프(제이콥 엘로디 분) 재등장 이후 점차 광기에 빠져들며 마치 마녀처럼 변해가는 헤어스타일은 인물의 파멸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전달한다.
문제는 서사의 개연성이다. 방대한 원작을 축약하는 과정에서 인물들의 감정선은 맥락 없이 널을 뛴다. 인물 관계의 균형이 무너지는 지점에서 보여주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갑작스러운 태도 돌변은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인물이 왜 그런 극단적인 감정에 이르게 되었는지 설득하기보다는, 그저 폭발하는 광기의 결과물에만 집중한 연출이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마고 로비가 최근 인터뷰에서 "원작엔 없던 키스신이 어디에나 있다"고 밝혔듯 영화는 원작 특유의 서늘한 복수극보다는 육체적인 탐닉에 치중한다. 성(性)에 눈뜨는 과정부터 시작해 15세 관람가라고 믿기 힘든 수위 높은 장면들이 반복되는데 이는 고전의 깊이를 더하기보다 관객을 자극과 찝찝함 사이에 갇히게 만든다.
제작진의 화려한 커리어와 마고 로비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이번 영화는 고전의 재해석보다는 '자극적인 현대판 막장극'에 가깝다. 원작 속 히스클리프의 처절한 복수와 계급적 울분은 휘발됐고 그저 잘생긴 배우와의 원초적인 로맨스만 남았다.
'원작과 같을 필요는 없다'는 감독의 선언은 대담했으나 결과물은 비극적 서사의 감동보다는 자극적인 연출의 잔상만 남기는 아쉬움을 자아낸다. 다만 화려한 영상미를 즐기고 싶은 관객이라면 만족할 작품이다. 11일 개봉, 러닝타임 136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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