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설계 브랜드 '공여사들' 이슬기 대표 인터뷰
팔리는 상품을 넘어, 신뢰받는 브랜드를 만드는 시대. 브랜드 커머스의 중심에는 이제 자사몰이 있다. 자사몰을 기반으로 브랜드를 일군 창업자들의 여정을 들여다보았다. 성과보다 먼저 찾아온 망설임, 시행착오 속에서 내린 선택, 그리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쌓아올린 과정까지.
누군가에게는 그저 익숙한 방식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갖고 싶은 무언가로 보이는 순간이 있다. 잘 정리된 화면 하나, 설명 없이도 굴러가는 일의 흐름 같은 것들이 그렇다. 회사에서 하던 업무 방식을 유튜브 영상으로 옮겼을 뿐인데, 우연히 비친 노션 화면에 “똑같이 쓰고 싶다”는 댓글이 달렸다. 같은 건물의 인테리어 업체 대표는 불쑥 찾아와 “우리 회사도 그런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인의 일을 정리하던 방식은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사고 싶은 시스템’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지금 공여사들은 노션과 엑셀로 만든 템플릿을 판다. 하지만 이들이 실제로 파는 건 파일이 아니라, 설명하지 않아도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유튜브를 통해 신뢰를 쌓은 뒤 개인용에서 소규모 팀을 위한 업무 시스템으로 확장해왔고, 대표 혼자 운영하던 1인 기업은 이제 6명이 함께 일하는 팀이 됐다. 올해 목표 매출은 30억 원. 직장인 유튜버에서 1인 사업가로, 다시 시스템을 설계하는 기업가로 이동해온 이슬기 대표의 선택은 언제나 하나의 기준으로 수렴해왔다. 덜 설명하고, 덜 개입해도 이 시스템은 굴러가는가.
대기업 핵심 인재는 왜 시스템 밖으로 나왔을까
공여사들 이슬기 대표 ⓒ공여사들
이슬기 대표의 커리어는 처음부터 시스템과 맞닿아 있었다. 공대를 졸업한 뒤 LG유플러스에 엔지니어로 입사했고, 이후 기획팀으로 이동해 인터넷망 구축과 수익성 분석, 유선망 투자비 관리를 맡았다. 공지 하나, 프로세스 하나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해야 하는 자리였다. 그녀는 당시를 “공지하고, 프로세스를 짜고, 표준운영절차를 만드는 게 일상이었다”고 말한다.
여섯 명 남짓한 팀에서 유일한 여성이자 막내였던 그녀는 엑셀 데이터 가공과 보고서 정리를 도맡았다. 이 과정에서 같은 숫자를 줘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는 장면을 반복해서 마주했다. “동일한 표를 보고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수백 명이 같은 기준으로 움직여야 하는 환경에서, 상식은 상수가 아니라 변수에 가까웠다. 이때부터 이 대표는 사람을 설득하기보다, 해석의 여지를 줄이는 방식에 더 관심을 두게 됐다.
그 감각은 한 장의 보고서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본인만의 방식으로 시각화를 시도한 날이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공사비가 300만 원이라고 쓰는 대신, 그 위치에 점 하나를 찍었을 뿐이에요.” 당시 깐깐하기로 유명했던 팀장은 그 장표를 보고 처음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대표는 그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복잡한 내용을 단순한 형태로 바꾸는 방식이, 자신의 강점이라는 확신이 생긴 계기였다.
이 대표는 사내 구원투수처럼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핵심 인재’ 대우를 받았다. 회사에서의 입지는 빠르게 올라갔지만 동시에 연차가 쌓일수록 고민도 함께 깊어졌다. 회사에서는 이슬기 대표를 중간 리더로 키우려 했는데, 그 역할에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 “실무에 몰입하는 건 괜찮았는데, 제 생각과 다르더라도 조직의 입장을 대변해서 말해야 하는 순간들이 힘들어지기 시작했어요.” 결국 그녀는 더 늦기 전에 방향을 바꿨다. 잘 맞지 않는 시스템 안에서 버티는 대신,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이동하기로.
“쓰던 양식 다듬었을 뿐인데”…1달 만에 6천만 원
공여사들 공식 자사몰 ⓒ공여사들
이슬기 대표가 퇴사를 감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재직 시절부터 키워온 유튜브 채널이 있었다. 주식 투자 사기로 1억 원의 손실을 떠안은 뒤, 이를 회복하기 위한 현실적인 돌파구로 엑셀 꿀팁과 업무 노하우를 정리해 올리기 시작한 채널이었다. 회사에서 매일 하던 일을 그대로 옮겼을 뿐이었지만 반응은 빠르게 왔다. ‘공여사들’이라는 이름도, 이후의 비즈니스도 이 채널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첫 템플릿 <일과 삶, 돈> 역시 그 흐름 속에서 나왔다. 유튜브 영상에 잠깐 비친 노션 화면을 보고 “그대로 팔아주세요”, “똑같이 쓰고 싶어요”라는 댓글이 반복해서 달렸다. 당시만 해도 노션 템플릿이라는 개념이 낯설던 시기였다. “제가 실제로 쓰던 걸 조금만 다듬어서 올려보자고 생각했어요.” 결과는 예상보다 컸다. 출시 한 달 만에 2,000명이 구매했고, 매출은 6천만 원을 넘겼다.
공여사들 시스템을 관통하는 설계 태도는 이 시기부터 이미 분명했다. 이슬기 대표는 줄곧 ‘잘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만들지 않는 쪽을 택해왔다. 설명 없이도 이해되어야 하는데, 설명을 덧붙여야 하는 구조라면, 애초에 잘못 만든 시스템이라는 판단이었다. “노트를 샀다고 비닐 뜯는 법부터 배워야 하면 이상하잖아요.”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이해되고, 같은 방식으로 쓰일 수 있어야 한다는 기준은 공여사들 시스템의 출발점이었다.
그 기준이 완전히 다른 무게로 다가온 건, 개인의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업무’를 떠받치기 시작하면서였다. 시작은 이슬기 대표가 개인적으로 PT를 받던 경험이었다. 트레이너가 회원 관리를 종이 일지에 의존하고 있는 걸 보고, 함께 쓸 수 있는 기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회원별 수업 횟수와 진행 흐름, 누적 이력이 한눈에 보이는 구조였다. 이후 이 시스템이 알려지며 필라테스 강사 등 비슷한 요청이 이어졌다.
이 대표는 이 지점을 개인용과 전문가용 시스템의 결정적인 차이로 본다. “개인용은 쓰다 말아도 그만이지만, 전문가용은 달라요. 이 데이터가 곧 매출이고, 신뢰거든요.” 회원이 100회 수업을 등록했다면, 그 전 과정이 끊김 없이 이어져야 했다. 그래서 공여사들이 전문가용 시스템에서 가장 중시한 건 ‘지속 가능성’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상품이 늘고 활용 사례가 쌓일수록, 시스템은 예상보다 다양한 상황에 놓였다. 매출은 꾸준히 성장했지만, 동시에 더 많은 질문과 요청이 뒤따랐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 대표는 분명히 느꼈다. 이 일들을 혼자서 끝까지 감당하기엔, 이미 규모가 달라졌다는 것을.
1인 기업은 어떻게 6인 팀이 되었나
업무 중인 공여사들 팀 ⓒ공여사들
공여사들은 약 5년간 1인 기업으로 운영됐다. 그러다 이슬기 대표는 처음으로 ‘사람에게 일을 넘겨야 한다’는 결단을 내렸다. 템플릿 판매량이 늘면서 문의와 운영 업무가 동시에 쌓였고, 더 이상 모든 판단과 실행을 혼자 감당하는 방식으로는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이 시점을 두고 “이제는 혼자 잘하는 문제가 아니라, 일이 제대로 굴러가게 해야 하는 단계였다”고 말한다.
첫 채용은 그래서 확장을 위한 선택이 아니었다. ‘사람을 뽑아야겠다’기보다, ‘이 일들을 누군가에게 정확히 넘길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 대표는 대기업 시절 함께 일했던 비서를 떠올렸다. 행정과 운영을 맡길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만든 시스템을 신뢰하고 그대로 실행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제가 판단과 결정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이 필요했어요.” 돌이켜보면 이 선택이 공여사들이 개인 사업을 넘어, 조직처럼 굴러가기 시작한 첫 분기점이었다.
이후의 채용 역시 계획표를 따라 진행되지는 않았다. 기준은 늘 하나였다. 지금 가장 병목이 되는 지점이 어디인가. 매출을 만들어야 할 때는 마케터를, 주문과 문의가 감당되지 않을 때는 CS 매니저를 뽑았다. 운영이 안정되자, 그다음은 브랜드의 밀도였다. 유튜브 영상 완성도를 끌어올릴 PD, 상세페이지와 가이드 문장 하나까지 톤을 맞출 BX 라이터를 영입했다. 이 대표는 이를 두고 “사람 수를 늘린다기보다, 막힌 지점을 하나씩 풀다 보니 팀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채용 방식도 남달랐다. 이력서보다 그 사람이 평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태도로 일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봤다. 일반 채용 플랫폼 대신 스레드를 활용한 이유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이 일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거의 다 드러나요.” 덕분에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은 짧아졌고, 결이 맞지 않아 생길 마찰도 줄일 수 있었다. 효율을 중시하는 공여사들다운 선택이었다.
다만 팀이 생기자, 또 다른 차원의 무게가 따라왔다. 가장 크게 다가온 건 책임감이었다. “나를 믿고 온 이 사람들의 커리어가 나 때문에 꼬이면 안 되잖아요.” 실무보다 더 어려웠던 건 기준을 맞추는 일이었다. 자신에게는 너무 당연한 판단과 디테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매번 확인해야 했다. 이 대표가 ‘HR 타임’을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월 1~2회, 직원과 일대일로 마주 앉아 서로의 기준과 리듬을 조율하는 시간. 작은 팀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공여사들이 선택한 최소한의 운영 시스템이었다.
‘먼 미래’보다, ‘오늘’ 돌아가는 시스템
공여사들 '비즈노션' CX 기획 과정 ⓒ공여사들
이슬기 대표는 스스로를 “큰 그림을 잘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직원들이 다음 목표를 묻는 순간에도 그의 대답은 늘 비슷하다. “내일 아침에도 다들 잘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농담처럼 들리지만, 이 말에는 공여사들을 관통하는 분명한 기준이 담겨 있다. 지금 이 시스템이 무리 없이 돌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내일도 그대로 작동할 수 있는가. 이 대표에게 미래란, 오늘의 연장이 가능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공여사들의 확장은 늘 예고 없이 시작됐다. B2B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창한 시장 분석이나 사업 계획서가 아니라, 같은 건물에 있던 인테리어 업체 대표의 한마디가 출발점이었다. “우리 회사도 그런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요청이었다. 이후 비슷한 문의가 반복해서 들어왔고, 몇 차례는 회사별 맞춤 제작도 시도했다. 하지만 곧 한계가 분명해졌다. “작은 회사 대표님들은 너무 바빠서, 요구사항 정리나 추가 미팅 같은 과정을 끝까지 챙기기 어려워 하시더라고요.” 이 대표는 이 방식이 오래 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표가 편하려고 맡기는 건데, 그걸 맡기는 과정이 오히려 더 번거롭고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때 선택한 방향이 ‘비즈노션’이었다. 어디서든 바로 쓸 수 있는 표준화된 시스템. 대상은 10인 미만 팀으로 좁혔다. 이유는 명확했다. 시스템을 관리해 줄 전담 인력이 없는 규모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쓰는 로직은 가져오되, 기능은 과감히 덜어냈다. 컬럼 하나만 헷갈려도 데이터가 꼬이는 환경에서, 단순함은 취향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었다. 이 대표는 이 과정을 두고 “설명서가 필요해지는 순간, 이미 잘못 만든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이 철학은 운영 방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공여사들은 채널이 늘어날수록 사람이 개입할 지점이 많아지고, 그만큼 일이 느려진다고 봤다. 그래서 여러 판매 채널을 넓히기보다, 구조를 직접 관리할 수 있는 자사몰 중심의 운영을 택했다. 현재 매출의 약 80%가 자사몰에서 나오는 이유다. 이 대표가 노코드 기반의 아임웹을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개발자나 외부 인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구조를 직접 유지할 수 있어야 작은 팀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운영이 복잡해지는 순간, 가장 중요한 상품과 콘텐츠부터 무너진다는 경험에서 나온 선택이다.
개인용 템플릿에서 출발해 팀을 위한 시스템, 그리고 소규모 조직을 위한 업무 시스템으로 확장됐지만 공여사들의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더 많은 기능을 말하기보다, 덜 설명해도 굴러가는 구조를 택하는 것. 더 큰 비전을 약속하기보다, 오늘의 시스템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 공여사들은 먼 미래를 이야기하는 대신, 내일도 그대로 작동할 수 있는 하루를 설계해왔다. 그리고 그 반복이 지금의 공여사들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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