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고소 막히면 진실도 막힌다"…환자단체의 경고 [의료사고 그 후②]

김효경 기자 (hyogg33@dailian.co.kr)

입력 2026.03.11 06:00  수정 2026.03.11 06:00

국회 의료사고 형사특례 법안 논의 본격화

환자단체 "공소제기 불가 특례 위헌 소지"

"사법리스크가 필수의료 붕괴 원인? 근거 부족"



의료사고를 둘러싼 제도와 책임 문제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환자단체는 사고 이후 진실 규명과 피해 회복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반면, 의료계는 과도한 사법 리스크가 의료현장의 위축과 특정 진료 분야 기피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의료사고 이후 대응 과정의 현실을 짚어보고, 환자 보호와 의료현장 안정의 제도적 쟁점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연합뉴스

최근 국회에서 의료사고 발생 시 환자와 의료진을 함께 보호하겠다는 취지의 법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되는 가운데, 환자단체는 법안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일부 조항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공소 제기 불가’ 특례와 중대한 과실의 범위, 필수의료 행위 적용 범위 등을 둘러싸고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지적이다.


‘공소제기 불가’ 논란…중대한 과실 기준도 쟁점

11일 의료계에 따르면 김윤·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은 각각 의료사고 수사 특례와 형사 특례 규정을 담은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료사고 발생 시 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필수의료 의료진의 법적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환자단체는 법안의 세부 내용에 대해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최근 기자와 만나 “발의된 법안의 취지와 방향에는 동의한다”면서도 “필수의료 행위의 범위와 중대한 과실의 기준, 형사 처벌 특례 적용 방식 등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안 대표는 특히 ‘공소 제기 불가’ 조항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정부안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필수의료 행위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손해배상만 하면 형사고소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손해배상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 수사가 사실상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안기종 대표

현재 발의된 법안들은 필수의료 행위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의 경우 의료인이 손해배상금을 전액 지급하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는 특례를 담고 있다. 김윤 의원안은 여기에 더해 사고 경위 설명과 책임보험 가입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공소제기 불가 특례를 적용하도록 했다.


환자단체는 ‘중대한 과실’의 범위 역시 보다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정안에 포함된 설명·동의 위반, 오수술, 투약 오류, 혈액형 불일치 수혈뿐 아니라 진료기록 허위 작성, 영상정보 변조·훼손, 기록 열람 거부 등도 중대한 과실에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필수의료 행위 범위를 확대하는 것에도 우려를 표했다. 현재 김윤 의원안은 필수의료 행위를 중증·소아·응급·분만·외상으로, 한지아·박희승 의원안은 응급환자에 대한 의료행위와 중증질환, 심혈관·뇌혈관 질환, 분만, 소아 의료행위로 규정했다. 환자단체는 “적용 범위를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한다”며 “중증질환까지 포함할 경우 암, 희귀질환, 중증난치질환 등까지 포함돼 사실상 대부분의 의료사고가 수사·형사 특례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법리스크로 필수의료 기피? 사실아냐”

의료계가 필수의료 붕괴의 원인으로 ‘과도한 사법 리스크’를 지목하는 것과 관련해 환자단체는 근거가 부족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의료계는 연평균 754건의 의사 기소가 이뤄진다고 주장하지만, 정부 연구에 따르면 실제 1심 형사재판에 회부된 의사 기소 건수는 연평균 34.4건에 그친다는 것이다.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사법 리스크로 설명하는 것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환자단체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의료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응급의학과(4.7%), 소아청소년과(3.6%), 산부인과(5.7%), 흉부외과(1.0%)의 기소율은 이른바 인기과로 불리는 정형외과(15.6%)와 성형외과(15.1%)보다 오히려 낮았다. 환자단체는 이러한 통계를 근거로 필수의료 기피의 원인을 사법 리스크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환자단체는 형사고소 제한 규정에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의료사고의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절차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안 대표는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진으로부터 사과와 설명을 듣지 못하고 공감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형사고소 없이는 입증이 어려워 증거 확보가 쉽지 않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형사처벌 특례만 도입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실은 실제 의료사고 피해자들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이다. 2020년 응급실 뺑뺑이로 안타까운 사고를 당한 고(故) 김동희 군의 어머니 김소희씨는 “병원에 아이가 왜 이런 상태가 됐는지, 응급실에서는 왜 받아주지 않았는지 물었지만 돌아온 답변은 ‘법대로 하라’는 말뿐이었다”며 “아들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형사 고소를 할 수밖에 없었고,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하는 과정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았다”고 말했다.


다른 의료사고 피해자의 어머니 류선 씨는 “직장인들도 회사에서 일하다 잘못을 하면 시말서를 쓰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지 않느냐”며 “사람이 죽는 일까지 벌어졌다면 법적 절차를 통해 그 이유를 밝히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환자 입장에서 가질 수 있는 권리 중 하나가 형사고소를 통해 진실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사고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 에너지를 들여 형사고소를 하는 이유가 따로 있겠느냐”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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