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 이행 의지 약화보다도 큰 문제는 도대체 안걷히는 세금
FIU법 등 지하경제 양성화 법안들, 번번히 야당이 발목잡기
정부가 기초노령연금 지급 대상을 축소키로 결정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공약 후퇴의 책임을 둘러싼 모든 비판의 화살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쏠리고 있다. 부족한 세수로 모든 복지공약의 원안 추진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야권은 박 대통령의 핵심 대선공약 후퇴를 빌미 삼아 공세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공약 후퇴의 모든 책임을 정부에 전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4대 중증질환 진료비 100% 지원, 65세 이상 국민에 대한 기초노령연금 지급 등 박 대통령의 핵심 복지공약이 축소된 배경에는 정부의 공약 추진 의지보다 부족한 세수와 야당의 비협조적 태도가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재원이다. 정부는 지난 5월 31일 새 정부의 청사진을 담은 공약 가계부를 발표했다. 복지공약을 포함한 140개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향후 5년간 134조8000억원을 마련한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지하경제 양성화와 조세체제 개편을 통해 5년간 50조7000억원의 세입을 늘리고,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여 84조1000억원의 예산을 절감할 계획이다. 가계부대로라면 당장 올해에만 2조9000억원의 세수를 추가로 확보하고, 4조5000억원의 세출을 절감해 모두 7조4000억원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올 상반기에만 10조원의 세수 결손과 46조원의 재정적자가 발생했다. 주택시장을 비롯한 내수침체, 취득세율 인하로 인한 세수 부족으로 후반기 재정여건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이처럼 세수규모가 축소된 데에는 정부가 세수 확보를 위해 추진한 입법들이 잇달아 불발된 점이 크게 작용했다. 후반기 입법을 통한 정부의 세수 확보 방안은 크게 두 방향이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탈루 세금을 잡고,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통해 법인세와 소득세 과세표준을 늘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한 대부분의 법안은 내용이 대폭 수정되거나 야당의 반대로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대표적인 법안이 FIU법(특정금융거래정보 보고 및 이용법 개정안)이다. 여야는 법안 처리 과정에서 국세청이 계좌추적 당사자에게 해당 사실을 통보할 의무를 추가해 탈세자에게 비상구를 마련해줬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국무회의에서 “지난번 국회에서 어렵게 간신히 통과된 FIU법과 같이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데 중요한 법이 여러 가지로 수정이 돼버리는 바람에 당초 예상했던 세수확보목표에 차질이 전망돼 안타깝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경제 활성화 법안도 상황은 비슷하다. 국내 기업에 대한 외국 기업의 투자를 늘려 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정부가 제출한 외국인투자촉진법은 지난 6월 국회 임시회에서 ‘대기업 편들기’라는 민주당의 반발에 부딪혀 통과가 무산된 데 이어 9월 국회 정기회에서도 처리가 불투명하다.
또 고용창출력이 큰 서비스산업을 키우는 서비스산업 발전기본법, 코넥스(중소기업 전용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한 조세특례제한법 등 다른 법안들도 연내 처리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잇따른 경제 활성화 관련 법안 사장으로 기업의 투자 심리와 고용이 위축돼 하반기 세수가 더욱 축소될 소지도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법안은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세법 개정안이다. 소득공제를 세액공제 방식으로 바꾸고, 부가가치세 감면 대상을 축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은 근본적 부자감세 철회를 촉구하는 야당에 막혀 처리가 불투명하다. 개정안 연내 처리가 무산될 경우, 2014년도 세수 확보에도 차질이 생긴다.
해당 법안들은 박 대통령의 대선 복지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사실상의 전제조건이다. 하지만 현재 야당은 박 대통령의 공약 이행은 촉구하면서도 조건을 마련하는 데에는 비협조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오히려 공약을 이행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놓고, 공약을 뒤집는다고 비판하는 형국이다.
한편, 박 대통령은 오는 26일 국무회의에서 기초노령연금을 비롯한 복지공약과 관련해 직접 입장을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은 지난 23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주 목요일에 내년도 예산안이 국무회의에 상정되고, 박 대통령이 직접 국무회의를 주재하게 된다”면서 “이 자리에서 기초연금 문제 및 4대 중증질환의 국고지원에 대한 박 대통령의 발언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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