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각시’ 거부한 안현수, 그리고 빅토르 최
그릇된 조직 논리에 휘말리지 않고 가시밭길 택해
실력과 소신에 많은 팬들 '황제'로 추종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주인공 ‘빅토르 안’ 안현수(29)가 러시아로 귀화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코치의 ‘편애’가 빚은 비극이다. 파벌로 얼룩진 가운데 ‘출신 성분’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따돌림을 당했다. 안현수는 졸지에 ‘이복 아들’ 처지가 됐다. 한국 대표 시절 형제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오히려 여동생들과 스케이트 탔다. 여자대표팀 선수들과 훈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던 안현수는 단지 순수하게 쇼트트랙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지난 2011년 12월 러시아로 귀화, 2012년 2월부터 러시아 대표로 활약하게 됐다.
러시아 쇼트트랙 협회는 한국 쇼트트랙 환경과 전혀 달랐다. 러시아는 이방인도 내 가족처럼 애지중지했다. 우크라이나 출신 블라디미르 그리고레프(32)를 영입했고 뒤이어 비운의 천재 안현수마저 품었다. 둘은 소치 올림픽 쇼트트랙 1000m에서 나란히 금, 은을 따내 양부모(러사아)에 보답했다.
안현수는 이미 러시아에 완벽히 적응했다. 유창한 러시아어 구사는 물론, 러시아 연방 국가도 시상식에서 완벽하게 따라 불렀다.
또 러시아인에게 친숙한 ‘빅토르 안’으로 개명했다. 안현수는 빅토르 안으로 바꾼 이유에 대해 “두 가지 배경이 있다”며 “승리를 뜻하는 영어 빅토리와 발음이 유사하고, 러시아에서 전설이 된 ‘고 빅토르 최’를 기리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안현수가 언급한 빅토르 최(1962~1990)는 누구인가. 구소련 시절 국민 록 가수다. 지난 1990년 교통사고로 요절한 그는 ‘자유’를 갈망한 러시아 젊은이들의 문화대통령이었다. 이 가운데에는 지난 2002년 빅토르 최 묘비에 ‘석조 비’를 세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있다.
한국인 2세와 우크라이나 출신 러시안 사이에서 태어난 ‘고려인 3세’ 빅토르 최는 세기의 천재였다. 미술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고 글재주도 뛰어났다. 1982년 키노라는 록그룹을 결성, 신이 준 재능을 음악에 쏟아 부었다. 전설이 된 곡 ‘혈액형’을 비롯해 발표한 앨범마다 100만 장 이상 팔려나갔다.
“록은 악마의 속삭임”이라던 러시아 고위층의 탄압 속에서도 빅토르 최는 굳세게 자신의 록을 이야기했다. 1970~80년대 함부로 내뱉었다간 목숨이 위험한 공산주의 체제 모순까지 가사에 담아 ‘제약 없는’ 예술 활동을 요구했다. 꼭두각시 연예인 노릇을 거부한 진정 맑은 영혼이었다.
철학적이고 의미심장한 가사에 매료된 러시아 젊은이들이 빅토르 최를 추종하기 시작했다. 거리엔 유색인종 혐오세력과 신나치가 활개 쳤지만, 그들조차 ‘고려인 3세’ 빅토르 최에 경의를 표했다. 덕분에 러시아에서 구박받던 고려 한국 피를 깔보던 시선도 많이 줄었다. 러시아 한류의 시초였던 셈이다.
빅토르 최가 1990년 8월 15일 의문의 교통사고로 숨지자 러시아 전역 수천만 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울분을 토했다. 10대 여학생 5명은 일주일 간격으로 “빅토르 최와 하늘서 교감을 나누겠다”며 몸을 내던졌다. 러시아에서 빅토르 최의 존엄과 명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비극’이다. 모스크바 예술광장 아르바트에는 10여 년에 걸쳐 완성한 빅토르 최 통곡의 벽도 있다.
안현수는 생전 빅토르 최의 이념에 큰 감명을 받았고 ‘빅토르 안’으로 개명하기에 이른다.
빅토르 안과 빅토르 최의 정신은 닮았다. 검열 없는 자유 음악을 외친 빅토르 최처럼, 안현수 또한 ‘자신의 전부’인 쇼트트랙의 자유를 갈구했다. 그러나 안현수에게 조국 대한민국은 통곡의 벽이었다.
한국 쇼트트랙 코치의 제자 사랑(자녀에 대한 애정)이 조금만 객관적이고 균등하면 쇼트트랙에 얽힌 모든 잡음은 순식간에 사그라지지 않을까. 대회를 거듭할수록 ‘웃프다(웃고 있지만 슬프다)’를 연발케 하는 안현수와 한국 쇼트트랙이다.
한편,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의 귀화 원인이 과거 대한빙상연맹과의 갈등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많은 네티즌들은 빙상연맹에 비난을 퍼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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